하지 않을 자유

사진마을 2017. 11.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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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 있는 수필#16


서머싯 모음이 선정한 가장 위대한 소설 10선에는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스탕달의 <적과 흑>,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등이 들어있다. 허먼 멜빌의 <모비 딕>도 그 중의 하나다. 그 허먼 멜빌이 1853년에 짧은 소설을 하나 발표하는데 <필경사 바틀비>가 그것이다. 한 변호사가 새로운 필경사로 바틀비를 고용한다. 처음엔 일을 곧잘 했다. 어느 날 변호사가 바틀비에게 서류를 교정하는 작업을 도와달라고 부탁하자 “나는 하지 않는 쪽을 택하겠어요(I would prefer not to)”라면서 거절한다. 고용주인 변호사와 기존에 일하고 있던 다른 두 명의 필경사는 경악한다. 시키면 하는 것이 당연한데도 하지 않는 쪽을 택하겠다니….
  점차 일을 뜸하게 하다가 결국엔 일손을 놓아버린 바틀비에게 무슨 일을 시키든, 어떤 질문을 하든 대답은 한결같다. “하지 않는 쪽을 택하겠어요.” 바틀비의 기행은 무노동과 무반응에 그치지 않는다. 밤에도 퇴근하지 않고 휴일에도 사무실에 남아 아예 거주공간처럼 점거해버린다. 바틀비를 쫓아내지 못하는 변호사는 사무실을 다른 건물로 옮겼다. 그런데 변호사가 쓰던 사무실에 새로 입주한 다른 변호사도 바틀비를 사무실에서 완전히 내보내는데 애를 먹게 된다. 바틀비는 결국 감옥행.
 약간의 가책을 느낀 변호사는 감옥으로 면회를 가 간수에게 부탁해 바틀비가 제대로 된 음식을 먹을 수 있게 조치를 취한다. 그러나 바틀비는 “나는 먹지 않는 편을 택하겠어요”라고 말하면서 곡기를 끊는다. 바틀비는 세상을 떠난다.
 소설의 부제 <월 스트리트의 이야기>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자본주의와 미국과 월 스트리트에 대한 저항이기도 하고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한 묘사이기도 하다. 또한 정력적인 집필활동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관심을 별로 받지 못하고 있던 허먼 멜빌 자신의 처지를 반영했다는 분석도 있다.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은 2011년 뉴욕에서 처음 일어난 “월 가를 점거하라(Occupy Wall Street)”시위를 논평하며 <필경사 바틀비>를 인용했다. 일하지 않기, 학교 가지 않기, 집안일 하지 않기, 쇼핑하지 않기, 아무 일도 하지 않기. 현재 주어진 모든 상황을 받아들이지 않기쯤 될 것이다. 지젝은 이렇게 말했다. “지금은 활동할 때가 아니다. 생각할 때가 왔다.” 지난주 담양 죽녹원에 다녀왔다. 목적 없이 어슬렁거리기 좋은 날씨와 공간이었다.
 글 사진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이 글은 경제월간지 <이코노미 인사이트> 2017년11월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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