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씨는 "많이 심심한 이미지 이지만 ,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사진입니다. 주변부의 광량저하가 조금 많이 두드려져 보여서 아쉽기는 하지만 툭툭찍어서 그린 것 처럼 간결해서 좋아하는 사진입니다." 라고 소감을 밝혔다.
[생활사진가] 정은화/아보카도엔터테인먼트 그래픽디자이너
마음에 들 때까지 지우고 또 지우고
그의 직업은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생활사진가 정은화(33)씨는 게임에 들어가는 캐릭터를 비롯해 웹상에서 각종 그래픽을 그린다.


그는 중학교 2학년때 첨 카메라를 잡았는데 당시 그가 쓴 카메라는 니콘 FM2였다고 한다. 필자가 1989년에 사진기자 생활을 시작하면서 썼던 카메라와 같다. 우리는 거의 같은 시기에 같은 출발을 한 셈이다. 살짝 긴장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사진에 첨 입문한 이력을 따져보면 내공이 보통이 아닌 정씨는 요즘 들어 사진이 너무 어려워졌다면서 "1년에 한 장 찍기도 힘들다" 고 말한다.
사진관 아저씨 권유로 중학 2년때 입문
-그냥 카메라를 만져본 수준이 아니고 제대로 배우기 시작한 것이 중학교 2학년 때였다고 들었습니다.
=포항에 살았습니다. 용흥동으로 기억이 납니다만 동네에 사진관이 하나 있었는데 친하게 지냈어요. 사진관 아저씨가 어느날 "손님도 없고 장사도 잘 안되니 사진이나 가르쳐주겠다" 면서 카메라를 쥐어주었어요. 찍어오면 암실에서 현상도 해주고 인화도 해주면서 이런 저런 문제점들을 지적해주었습니다. 카메라의 메커니즘은 이 때 거의 깨우쳤습니다. 풍경이나 정물을 찍었습니다. 수도산, 탑산 등의 능선을 따라 다니면서 찍었던 것 같네요. 지금 남아있는 건 하나도 없어요. 생각해보면 사진이 좋았던 것 같진 않습니다. 아저씨는 본인의 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필름째 태워버렸어요.
-사진관 아저씨는 사진을 잘 찍는 사람이었나요?
=그 분이 찍었던 사진도 거의 기억나는 게 없습니다. 한 장이 딱 기억이 나긴 합니다. 고 1때 아저씨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실 무렵 단 한 장의 프린트만 유작처럼 남아 있었어요. 갈대밭이었습니다. 바람이 불고 안개가 퍼져나가는데 긴 노출을 줘서 갈대의 움직임을 잡은 사진이었습니다. 사모님이 그 사진을 태우던 모습이 아직 기억납니다. 아저씨가 유언으로 "그 사진도 내가 죽고 나면 태우시게. 다른 이의 사진을 모방한 것이니 독창성이 없어" 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아저씨한테 여러가지 배웠지만 가장 중요한 교훈이 이것입니다. 그 때부터 나도 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모두 태우거나 해서 없애버렸어요…. 디지털카메라를 쓸 때도 이 습관이 나서 수시로 지워버리는 게 습관처럼 되었습니다. 너무 많이 지웠든지 어느날 문득 보니 남는 게 없더군요. (웃음)
-그 후로도 사진을 했나요?
=아저씨가 돌아가시면서 사진관에 갈 일이 없어졌고 당연히 카메라도 없고 하니 중단했습니다. 방안에서 그림만 그렸습니다. 24살 때 형이 싱가포르에서 미놀타카메라를 하나 사왔는데 이 때 다시 사진을 시작했습니다.
찍힌 대상과 소통할 수 있는 '쓸모있는' 사진이 ‘좋은 사진’
-요즘은 어떤 사진을 찍습니까?
=한동안 길거리 스냅을 찍었는데 근래엔 풍경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풍경 중에서도 일출, 전원 등은 재미가 덜합니다. 화면에 라인이 나오는 사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능선이 두개 있는데 하나는 S자를 그리고 실루엣으로 강조된 형태입니다. 아무래도 제가 그림을 그리는 직업에 종사하다 보니 회화적 느낌이 강한, 완벽한 사진을 늘 (마음속에) 그리고 있나 봅니다. 그러면서도 인물을 작게라도 꼭 넣고 찍으려고 합니다. 이러다 보니 마음에 드는 사진이 1년에 한 두장 나오기가 어렵더군요.

"실루엣 만으로 톤을 이분화 시키는게 목적이긴 했는데 너무 심심해져 버린것 같다."고 사진가는 자평했지만 필자는 인물의 발을 주목했다. 미세함에도 불구하고 발걸음을 옮기는 동작 때문에 경쾌함이 묻어나서 사진 전체에 에너지를 불어넣고 있다. 두 다리가 모두 바닥에 붙었다면 180도 다른 사진이 되었을 터이니 생각만 해도 식은 땀이 난다.
-일반적인 의미에서 좋은 사진은 어떤 사진이라고 생각합니까?
=과거엔 기록에 충실한 사진이라 생각했는데 현재는 스스로에게 쓸모가 있는 사진이 좋다고 봅니다. 길거리에서 찍은 백 장의 사진보다 가족을 찍은 한 장의 사진이 더 쓸모가 있습니다. 가족 등 아는 사람을 찍을 때는 찍힌 사람에 대한 배려가 들어 있습니다. 사진을 찍으면서도 대화할 수 있고 찍고 난 다음에도 소통할 수 있죠. 길거리의 모르는 사람을 찍는 것은 초상권의 문제는 뒤로 돌린다고 하더라도 그 대상과 교감할 수가 없거든요.
듣고 보니 그럴 듯하다. 길거리에서 망원렌즈로 모르는 사람을 찍는 행위는 있는 그대로의 자연스러움을 담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그와 이야길 나눌 수 없다면 대화가 단절된 사진이란 이야기다. 어느 쪽이 더 옳은지 따지기에 앞서 가족 등 아는 사람을 찍자는 정씨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었다. 처음엔 가족부터 차츰 자신 주변의 아는 사람으로, 나중엔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나 근무처의 사람들까지 영역을 확대해나가는 것이 사진가의 능력이다. 동네 놀이터에서 사진을 찍는 것부터 시작하면 될 일이다. 다만 세상이 흉흉하니 보호자에게 꼭 허락을 받도록 하자.
-후보정은 얼마나 합니까?
=먼지는 반드시 지웁니다. 기본 색조는 가능한 안 만집니다. 풍경의 경우 콘트라스트와 크로핑 정도를 합니다. 흑백의 경우 농담조절을 합니다. 인물은 예외적입니다. 사진을 찍어서 보내주는 일이 잦은데 특히 여자분이라면 많이 보정을 하는 것이 좋겠죠. (웃음)
디지털은 너무 매끈해 필름으로 복귀
-필름에서 디지털로 갔다가 다시 필름으로 돌아왔다고 하던데?
=FM2에서 미놀타를 거쳐 펜탁스 istDs, 니콘 D200, 1Ds, F4 를 거쳐 지금은 핫셀 503CX 를 씁니다. 디지털로 갔던 이유는 필름값이 안들어 경제적이었던데다 ISO조절도 쉬웠기 때문이지요. 헌데디지털은 느낌이 ’너무 매끈’ 해서 싫더라구요. 그래서 다시 필름으로 돌아왔습니다.
한번은 똑 같은 장면을 디지털과 필름으로 찍어서 비교를 해본 적이 있었습니다. 균일한 광상태에서는 디지털이나 필름이나 별로 차이가 없었어요. 그런데 역광사진이나, 노출차가 극심한 상황에서는 디지털에선 그냥 시커먼 그림자로만 나오는 부분도 필름은 어느 정도 표현을 해주더군요. 필름의 표현 범위가 훨씬 더 넓어요.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두가지를 병행할 것 같네요.

2007년 한림항
-최근에 본 사진 중 기억나는 건 뭐지요?
=안양에서 살가도의 사진전을 봤습니다. 브라질의 금광 사진인데 개체가 모여 전체의 선을 형성하는 조화가 보였습니다. 멋집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사진을 잘 찍는 법을 귀띔해준다면?
=많이 찍어야 합니다. 제자리에 서서 찍는 것보다 한 발짝이라도 앞이나 뒤로, 혹은 엎드리면서 시선을 바꿔보는 게 도움이 됩니다.
-눈여겨 본 출사지 좀 몇군데 추천해주시지요.
=시화방조제로 가면 대부도 옆에 선재도가 있습니다. 아침이 한적하고 좋아서 자주 갑니다. 두물머리도 여러차례 갔었는데 관리인이 돛배를 한 쪽 구석에 밀어둔 이후로 안갑니다. 강화도 좋죠. 지나가다 이곳저곳 예쁜 풍경들이 자주 눈에 들어오는 곳입니다. 꽃지, 속초 청초호, 동해 초암, 부산 송정의 일출, 순천만, 세량지 등 다들 좋습니다.
-장기적으로 계획하고 있는 건 뭐가 있습니까?
=제주도를 계절마다 방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시를 하거나 책을 낼 생각은 없어요. 사진을 찍는 행위는 어딘가를 다닌다는 말과 일맥상통합니다. 그래서 여행 그 자체를 즐길 뿐입니다. 남들이 봐줘도 좋지만 안 봐줘도 상관없습니다.
사진에 대한 일관성 돋보여
[곽윤섭이 본 정은화 사진]
13장의 사진을 받았다. 보내온 사진이 하나같이 단정하다. 기초가 탄탄하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 같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 답게 어느 한 장 정통 구도에서 벗어나지 않는 깔끔한 프레임으로 무장하고 있다. 흠없는 모범생이 얄밉게 보일 수도 있다. 별 군더더기 없는 그의 사진들을 보고 있노라면 조금 마음이 삐닥해져 시비를 걸고 싶은 초보 불량학생의 심사가 들기도 했다. 몇 몇 작품이 그랬는데 이건 찬사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흉은 더욱 아니다.
굳이 그가 염두에 두고 골랐는지 알 순 없지만 그가 보내온 사진엔 하나의 공통점이 엿보였다. 한 두장을 빼고는 모두 움직이는 것이 들어있다는 점이다. 인터뷰 도중 어떤 사진을 찍고 싶냐는 물음에 그는 "사진을 보고만 있어도 움직임을 느낄 수 있는 사진을 찍고 싶다"고 한 적이 있었다. 자신의 사진에 대한 일관성이 놀라울 정도이다. 생각을 많이 하고 찍는 사진가다.


비수기의 힘든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 사람이 아닌 발자국에 중점을 두었다고 한다.







모니터로 보는 한계가 명백한 사진이다. 사진가 본인은 전시를 할 생각이 없다고 하지만 크게 걸어두고 보면 가치가 달라질 사진이다.


곽윤섭 기자 kwak1027@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