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윤섭의 사진명소 답사기-1. 순천만

보트가 물살을 만들며 지나갔다.
옛 시절엔 시인·묵객들이 천하를 주유하다 풍광 좋은 곳을 만나면 술 한 잔에 시 한 자락 읊거나 노래 한 대목 부르곤 했을 것이다. 분명 이곳 순천만도 그런 곳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해가 질 무렵 순천만의 큰 S자를 볼 수 있다는 용산의 전망대로 오르면서 나보다 훨씬 빨리 뛰어가는 흑염소 떼와 마주치곤 숨을 몰아쉬며 잠시 그런 생각을 했다. 불과 10분밖에 안 걸리는 곳이었지만 얼핏 나무 사이로 보이는 해가 이제라도 꼴깍하고 넘어갈 것만 같아 한달음에 정상으로 향했다. 사진가 서넛이 크고 작은 카메라로 서쪽 하늘을 겨냥하고 있었다.
“첨 오시나 봐요? 황금빛 노을은 겨울이 제격입니다. 어제 비가 왔길래 오늘은 노을이 좋을까 싶어 왔는데 약하군요.”
거친 숨을 고르면서 토박이 사진가들의 조언도 듣는 둥 마는 둥 곧바로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파인더 속에선 갯벌이 펼쳐진 사이로 둥글둥글한 갈대밭의 덩어리가 눈에 들어왔다. 컴퍼스도 없이 자연이 그린 원이 어찌 저리 둥글까? 저멀리 오리 몇 마리가 물길 위를 스치며 날았다. 망원렌즈가 있다면 오리는 보이겠지만 전경은 광각렌즈의 대상이라 사진으로 옮길 궁리는 애초에 지워버린 채 잠시 맨눈으로 새들을 좇았다.
사방이 조용한 가운데 꿈결처럼 해가 넘어가고, 일몰을 기다리던 모터보트 한 척이 긴 부챗살 모양의 물살을 만들면서 지나가고 있었다. 무슨 소리가 들릴 만도 한데 전망대와 물길의 거리가 꽤 멀어 무성영화처럼 숙연했다.
전남 남해안의 여수반도와 고흥반도 사이에 있는 순천만은 21.6㎢의 갯벌과 5.4㎢의 갈대군락을 보유한 세계 5대 습지 가운데 하나. 사진하는 사람들은 선을 좋아하는데, 이들은 여인들의 몸에서 S자를 찾는 데 그치지 않고 5천년 나이를 먹은 순천만에서도 S자를 발견해 냈다. 사진이 이 땅에 들어온 뒤로 순천만을 다녀간 숱한 사진가들에게 포착된 S자는 얼마나 다양할까. 이날 내가 누른 것만 30컷, 그동안 이곳에서 사람들이 찍은 사진은 족히 1천 만 컷은 넘을 것이다. 그중 볼만한 것은 과연 몇 장일까 헤아려 보려다가 아주 빨리 포기했다. 굳이 전문가와 비전문가를 구분할 필요도 없이 순천만에선 누구든 카메라를 들면 사시사철 늘 한 장씩은 건져 갈 수 있다.
가을엔 갈대가 좋고 또 어느 철엔 칠면초(계절별로 노랑, 연두, 초록을 지나 붉게 물든다)가 제격이라 하나 이 역시 우열을 가리는 일은 부질없다. 나는 온라인에서 떠도는 숱한 순천만 사진의 말석에 몇 장을 더 추가할 수 있겠다는 판단이 들자 하산길을 재촉했다. 대체로 해가 질 무렵이 더 아름다운 것이 상식이니 셔터 속도가 떨어질 것이고 손떨림이 심한 사람이라면 삼각대가 필요한 것도 상식이다.
2004년에 자연생태공원이 만들어져 사람의 간섭을 최소화시킨 상태로 개펄과 습지를 관찰할 수 있는 나무데크로 만든 길이 생겼고 그 자체도 사진 거리다. 와온에선 작은 S자를 볼 수 있는데 꼭 S자가 아니더라도 볼만한 곳과 사진 찍을 지점이 순천만엔 많이 있으니 11월 초의 황금빛 노을만 노리고 이곳에 올 일은 아니다.

관광객이 '셀카'를 찍고 있다.

용산으로 가는 도중, 농주리 개펄에서 만난 순천대학교 사진과 학생들. 작은 S자를 찍고있었다.

와온 개펄엔 S자가 이곳 저곳에 널려있다.

개펄로 들어가는 입구. Y 자도 보인다. 플라스틱 상자로 막아두었다. 자칫 일반인들이 장비없이 들어갔다간 빠져나오지 못해 애를 먹을 수도 있는 까닭이다.

S자에 몰두하다가 문득 주위를 둘러보니 온 사방에 S자가 널려있었다.

순천만 자연생태관. 학습, 체험코스로 제격이다.

순천만 자연생태관에서 개펄로 들어가는 나무데크길.
인터넷 순천만자연생태공원 (www.suncheonbay.go.kr)에 들어가면 순천만에 관한 친절한 정보가 집대성돼 있다. 사진하는 사람에게 꼭 필요한 일출·일몰 시간 안내도 있고 가기 전에 물때 시간을 질문하면 꼬박 답변도 올라온다. 여기서만 아주 잠깐 검색했는데도 내가 찍은 사진보다 약간 더 멋진 순천만 사진이 계절별로 펼쳐진다. 기가 죽을 일은 아니고 다양한 앵글에 대해 참고하고 가면 현장에서 자신만의 시각을 찾는 데 도움이 된다.
*위에서 세번째 사진의 설명을 수정합니다. 중형이 아니라 대형이라는 지적을 여러분이 해주셨습니다. 정확하게 확인하지 못한 점 사과드립니다.
순천/글·사진 곽윤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