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찰 헬기조종사 출신 배영찬 대장의 항공사진 이야기
그가 헬기를 몰기 시작했을 때 하늘에 올라가면 가장 먼저 보고 싶었던 것은 참 엉뚱하다.
“시골 초가집과 기와지붕이 보고 싶었습니다. 위에서 보면 어떤 모습일까 궁금했거든요.”
아름다운 국토가 훼손당하는 현장도 여럿 목격했고 찍었다. 하늘에서 본 골프장 사진은 마치 문어가 발을 뻗어 도시를 잠식해 들어가는 듯 한 모습이다. 문어발식 개발이란 말이 이래서 나왔구나 싶었다고 한다.

1990년 초반 경북 의성의 시골집.
아까운 순간도 많았다. 제주도로 비행할 임무가 있었는데 바다 한가운데 커다란 것이 둥둥 떠 있어서 사진을 찍었다. 얼른 봐도 바다거북이었는데 당시 고도가 1천 피트였으니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더 내려가서 찍고 싶은 욕심이 굴뚝같았지만 임무가 우선이라 그럴 수 없었다.
“정말 큰 바다거북이었습니다. 망망대해에서 잠시 수면에 올라온 거북을 만날 확률이 얼마나 될까요?”

제주도 근처 바다에서 촬영한 바다거북. 이때 고도가 1천피트(약 3 백미터)였다고 하니 거북의 크기를 짐작해 볼 수 있다.
긴급상황에선 사진보다 인명이 먼저
-지금 생각할 때 아쉬웠던 순간들은 무엇입니까?
=인명을 구하기 위해 늘 동분서주했습니다. 그 중엔 악천후로 비행이 원활치 못한 경우도 왕왕 있었으니 가슴이 아팠습니다.
-보람 있었던 기억도 많았겠습니다.
=경찰 임무였기 때문에 사명감으로 일했습니다. 대가 따위를 바란 적도 없었고요. 83년 광주에서 근무할 때였습니다. 지리산 계곡에서 물이 불어나 급류에 떠내려가는 여중생을 구했습니다.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한참 지나 학생의 엄마가 버스를 몇 차롄가 갈아타고 머리에 보따리를 이고 찾아왔습니다. 고추, 호박, 고구마 등 손수 가꾼 밭작물을 꾹꾹 눌러 담아 한아름이었는데 한사코 놓고 가겠다고 해서 3만원을 쥐어서 보냈었습니다. 한여름이었습니다.
또 한 번은 90년 무렵이었는데 물난리 와중에서 초등학교 학생을 구한 적이 있었습니다. 방학이 끝나고 나자 전교생 50여명이 몽땅 감사의 편지를 보낸 적이 있었는데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사진요? 사람을 구하느라 사진 찍을 틈이 없었죠. 목숨이 중요한 상황인데 무슨….

경북 영주. 산을 거대한 삽으로 쳐낸듯 속이 허옇게 드러났다. 골프장 사진과 더불어 배대장이 늘 가슴아파하는 사진이다. 무분별한 국토개발이 아름다운 산하를 해치는 행위는 지금도 진행형이다.

90년도 초반 수해현장. 이재민들이 건져낸 옷가지와 침구등을 강가에 늘어 말리는 장면이다. 회화의 이미지가 물씬 풍겨난다.

배 대장은 땅에서도 사진을 찍는다. 1991년 경주 안강 수해현장.

늘 아끼는 독도 사진앞에서 잠시 포즈를 취해준 배영찬 대장. 그는 인명을 구하는 사명감을 지닌 경찰이었고 동시에 세상을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는 생활사진가다. 두 가지 일의 본질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해준 인물이다.
이 곳에 공개하지 못한 사진들은 앞으로 배 대장이 오프라인에서 전시회를 하게 되면 그 때 다시 소개할 생각이다.
헬기타고 20년 하늘길은 내 손바닥 -끝-
사진/ 배영찬 제공
글/ 한겨레 곽윤섭 기자 kwak1027@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