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구에 구멍이 났을까?
-경찰 헬기조종사 출신 배영찬 대장의 항공사진 이야기
오래전부터 경북에서 사진을 잘 찍는 사람으로 이름이 널리 알려진 경찰관이 있었다. 기자들이 특히 그와 인연이 많았으니 한 번이라도 그의 사진을 받아쓰지 않은 신문사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역신문 뿐 아니라 지역에 주재기자를 둔 중앙의 신문사들도 왕왕 그의 사진으로 지면을 장식하곤 했다. 그의 이름은 배영찬, 자칭 타칭으로 별명은 ‘항공일보’ 배 기자였다. 물론 항공일보란 신문은 실제론 없고 배영찬씨는 기자가 아니다. 그러나 그가 손수 누른 셔터에 포착된 사진들이 숱하게 지면을 장식했으니 터무니없는 호칭만도 아니다.
1981년 당시 치안본부 항공대를 시작으로 1999년까지 경찰항공대에서 헬기를 몰았던 배영찬 대장(58·경정)을 만나러 경북 구미로 갔다. 2000년부터 ‘지상근무’에 들어간 그는 현재 경북경찰청 보안수사3대장을 맡고 있다.
비행시간 5천시간, 구조인명 2백여명
1973년부터 육군항공대에서 헬기를 몰았던 경력을 포함하면 꼬박 27년간 헬기로 대한민국의 하늘을 누볐던 배 대장을 찾은 것은 과거에 그가 헬기조종시간이 5천 시간이 넘는 베테랑 조종사였고 항공대 시절 헬기로 2백여명 가까운 인명을 구조했던 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가 국내 항공사진의 대가이고, 그런 그가 헬기에서 찍은 항공사진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공개하지 않고 꼭꼭 간직해온 사진으로 머지않아 전시회를 준비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접하자, 볼 만한 사진들을 먼저 입수해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배 대장은 사진 공개를 꺼렸다. 전시회를 구상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자신이 찍은 사진을 소중히 생각해 그동안 외부에 사진을 공개한 적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차량 정체, 구조 작업 등 뉴스용 사진은 자주 언론에 공급했지만 그 외의 사진은 깊숙이 넣어두고 있었다. 어떻게든 사진을 입수해야 한다는 흑심을 품고 인터뷰를 시작했다.
-기자들과 인연이 많았다고 들었습니다.
=물난리, 명절 교통체증 등 공중에서 사진을 찍을 일이 있을 때 언론사의 취재를 협조하는 차원에서 기자들을 자주 태웠고 사진촬영을 도와주었던 일이 자주 있습니다. 항공대 일에서 물러난 뒤에는 공보관으로 일했습니다.

1994년 추석. 고속도로 평사휴게소에서 차량들이 출구에서 병목현상을 일으켰다.
-신문에 배 대장이 찍은 사진이 자주 실렸다고 하던데요.
=기자들을 헬기에 태울 수 없는 상황이 빈번하게 있습니다. 그럴 땐 직접 찍은 사진을 배포하기도 했습니다. 월드컵 거리응원 땐 다양한 앵글로 사진을 찍어 각 신문사마다 다른 사진을 사용할 수 있게 도움을 줬습니다. 물론 기자 이름은 배영찬으로 쓰진 않더군요. (웃음) 그런 일은 아주 많았습니다. 요즘은 어떤지 몰라도 당시 언론사에 제공한 사진은 부지기수입니다. 그렇지만 가장 좋은 앵글은 한 장씩 꼬불쳐두었습니다.
-사진은 언제부터 찍게 되었습니까?
=87년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헬기에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습니다. 어디서 배운 게 아니고 혼자 익혔습니다. 하루에 20롤에서 30롤씩 소모해가면서 ‘무식하게’ 눌렀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찍은 사진을 모두 인화해서 쭉 늘어놓고 앵글과 셔터 타임에 대해 익혀갔습니다. 필름 값만 당시 돈으로 5천만원 넘게 들었을 것 같습니다. 집에서? 별로 안 좋아했죠. 허허. 몇 년 그렇게 했더니 앵글이 보이더군요.
-항공사진이란 장르를 새로 만든 셈이나 다름없다고 들었습니다.
=하늘에서 찍는다고 모두 항공사진은 아닙니다. 높은 데서 찍는 사진을 무조건 항공사진이라 부른다면 높은 산에서 찍어도 항공사진이며 옥상에서 찍어도 항공사진이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질적으로 다르죠. 사람의 발이 땅에서 떨어지는 순간에 찍는다고 해서 다 한 가지는 아닙니다. 공중에 떠있다 하더라도 각도, 구도, 속도, 고도를 사진가의 의도에 맞게 조정할 수 있는 상태에서 셔터를 누를 수 있어야 진정한 항공사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불국사 석가탑과 다보탑을 찍은 사진은 수도 없이 봤지만 이 앵글은 처음 본다. 저공비행을 하지 않으면 찍을 수가 없는 사진이다.

전북 마이산. 왜 마이산이라 부르는지를 쉽게 알아 볼 수 있다.

경북 경주의 한 놀이공원. 놀이공원을 만드는 건설시뮬레이션 게임이 연상된다.
구도와 각도를 조절할 수 있어야 진정한 항공사진
배 대장의 항공사진론은 독특하다. 보통 사람들도 여객기를 타고 하늘에서 사진을 찍을 수가 있지만 그 땐 모든 것이 수동적인 상황이어서 각도와 구도 등을 임의로 조정할 수 없으므로 항공사진이라 볼 수 없다는 주장이다. 헬기를 직접 몰면서 사진을 찍는 사진가의 자부심이 강하게 보인다.
-좀 더 자세하게 말씀해주십시오.
=보통의 경우 사진가들은 지상에서 발을 땅에 붙이고 사진을 찍습니다. 이 때 조금이라도 사진을 찍을 줄 아는 사람이라면 앞 뒤 혹은 좌우로 움직이거나 높낮이를 조절하면서 최적의 앵글을 찾으려 합니다. 빛도 중요하지만 사진가의 실력은 이 앵글 선택에서 크게 좌우됩니다. 그런데 공중에서 찍는 사진의 경우 비행기나 헬기, 기구를 탔다고 생각하면 각도의 조절이 자유롭지 못한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지상이라면 좀 더 앞으로, 좀 더 옆으로 움직였을 것인데 그게 여의치 못하다는 겁니다. 저는 헬기를 직접 몰기 때문에 이 대목에서 2차원뿐만 아니라 3차원상의 움직임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었죠. 이 정도는 돼야 진정한 항공사진이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의 장점은 저공비행입니다.
-아니, 높은 곳에서 찍어야 더 좋은 항공사진이 나오는 것 아닙니까?
=헬기가 위험한 면도 있지만 여러 면에서 장점이 많습니다. 그 중 하나가 저공비행이 가능하다는 겁니다. 하늘에서 사진을 찍을 때도 무턱대고 높다면 윤곽만 보이게 될 수 있습니다. 낮게 뜨면 건물의 디테일이 보이면서도 지상에서 못 보는 앵글이 나옵니다. 조종기술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저는 20미터나 30미터 정도로 낮게 떠서 임무를 수행할 수 있습니다. 물론 작전을 수행하는 사이에 사진도 틈틈이 찍을 수 있고요.
제가 찍은 사진들이 특별한 이유는 그냥 항공사진이라서가 아니고 다른 이들에겐 불가능한 앵글이 저에겐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헬기 조종술이 뛰어나야만 가능하겠죠.
그의 이야기는 이런 것이다. 사진을 잘 찍는 전문 사진가가 있다고 하자. 그가 헬기를 대여해서 항공촬영을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사진을 찍기 위한 앵글 조정은 마음먹은 만큼 자유롭게 할 순 없다는 것이다. 헬기조정은 대단히 미세한 작업이기 때문에 조종사가 사진가의 마음을 읽고 카메라를 상하좌우로 기울이듯 헬기의 동체를 움직여줘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배 대장은 자신이 직접 조종하면서 사진을 찍는 버릇을 들였기 때문에 이런 게 가능했다는 얘기다.
그는 “헬기에 앉아 눈으로 바깥을 보면 지금의 높이에선 몇 mm렌즈가 적합한지 바로 파악이 된다”고 털어놨다. 시야의 화각이 렌즈의 화각과 일치하도록 훈련이 잘 돼 있다는 얘기다. 놀라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그의 주 업무가 경찰항공대 헬기 조종이었다는 사실이 새삼 떠올랐다.

맨 위에 나온 사진의 다른 앵글. 이 곳은 경북 영천댐. 도수로(포항 쪽에 생활 및 공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하여 만든 물길)의 입구를 찍은 사진은 신비한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다.
헬기타고 20년 '하늘길은 내 손바닥' 의 2편은 4월 1일에 이어집니다.
2편 "독도엔 해태가 살고 있다."
사진/ 배영찬 제공
글/ 한겨레 곽윤섭 기자 kwak1027@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