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 아울-1936 ⓒ 유섭 카쉬
20세기 최고 인물사진가 유섭 카쉬 사진전
비버를 사랑하게 된 가짜 인디언 그레이 아울을 아십니까?
캐나다로 이민 온 영국인 아치 벨라니(1888~1938)는 원주민들의 삶을 동경한 나머지 인디언식 이름인 그레이 아울(회색 부엉이)로 바꾸고 인디언 부인을 맞이했습니다. 스코틀랜드 아버지와 아파치족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미국인으로 캐나다에 이민 왔다고 속이고 스스로 인디언의 삶을 시작한 그레이 아울은 덫을 놓아 짐승을 사냥하거나 여행가이드, 삼림 감시원 일을 하면서 생활했습니다.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캐나다군으로 참전, 저격수로 활약했으며 부대 동료들 사이에서 인디언 그레이 아울은 유명한 이름이 되었습니다. 그는 부상을 입고 명예제대한 뒤 이로쿼이족 출신의 새 부인과 살게 되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합니다. 부인의 설득으로 사냥을 그만두고 비버와 벗 삼아 지내면서 야생의 삶에 대한 생생한 글을 발표했고 저술에 힘썼으며 자연주의자로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카쉬가 이 사진을 찍을 무렵은 환경보호에 대해 해외 강연을 다니고 나중에 여왕이 된 영국의 엘리자베스공주를 만나는 등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하던 시기였습니다. 영국을 방문했을 때 이모가 그를 알아보았으나 그레이 아울이 죽을 때까진 주변에 발설하지 않고 묻어두었습니다. 2년 뒤인 1938년 그레이 아울이 사망하고 나자 그의 원 국적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고 곧 그가 거짓말을 했음이 발각되면서 순식간에 그의 명예는 실추당하고 말았습니다. 그가 주장하던 환경보호 기금마련 운동도 급격히 식어갔고 그가 쓴 책들도 판매가 중단되어 버렸습니다.
반세기가 더 지난 1999년, <007> 시리즈의 제임스 본드로 유명한 피어스 브로스넌이 주연한 영화 <그레이 아울>이 상영되면서 그레이 아울의 인생은 재조명되었으며 순식간에 그의 저작물이 인기를 끌게 되었고 환경보호에 대한 업적도 다시 인정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지금 캐나다 자연생태학의 아버지로 평가되고 있다고 합니다. 이 사진 속에서 그레이 아울의 모습은 복합적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마치 사망 후에 그의 인생을 둘러싼 파란만장한 드라마가 벌어질 것을 예상이라도 한 듯 고뇌와 진지함이 함께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한 장의 사진 속에 한 사람의 인생을 모두 담을 순 없지만 유섭 카쉬의 인물사진은 가끔 마술을 부립니다.
처칠, 카스트로 등 유명인사 얼굴 한꺼번에
이 사진을 찍은 인물사진가 유섭 카쉬(1908-2002)의 ‘카쉬전’이 3월3일부터 서울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립니다. 카쉬전은 그의 탄생 1백주년을 맞아 기획된 2008년 미국 보스턴미술관에서의 성공적인 전시에 이은 것으로 국내에선 최초로 소개되는 것입니다. 이번 전시에서 공개될 작품들은 디지털 프린팅이 아닌 카쉬가 직접 만든 오리지널 빈티지필름으로, 보스턴미술관의 큐레이터가 작품을 보호하기 위해 직접 화물칸에 타서 국내에 들어왔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역사적 가치가 높은 작품이기도 합니다.
카쉬는 아르메니아 출신의 캐나다 인으로 20세기 최고의 인물사진가라 불리는 거장입니다. 그는 193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북미와 유럽을 중심으로 활동했으며 세계 각국의 정상들 뿐 아니라 당대 각계의 모든 유명인사들을 모두 자신의 카메라 앞에 세웠던 사진가였습니다. 윈스턴 처칠, 피델 카스트로, 오드리 헵번 등의 역사적 얼굴들이 이번 전시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레이 아울 같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인물도 전시됩니다. 하나의 사진 속에 등장한 인물은 일시적인 순간만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그러나 유섭 카쉬의 인물사진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모두 담겨있다는 착각이 들게 만드는 마력이 있습니다. 전시장엔 인물사진과 함께 유섭 카쉬의 호흡이 그대로 살아 있는 촬영 에피소드와 인물의 역사가 같이 소개될 예정입니다. 전시 개막을 앞두고 사진마을에선 유섭 카쉬가 찍은 인물사진과 사진보다 더 재미있는 인물이야기를 차례대로 소개드릴 예정입니다.
그레이 아울과 관련된 동영상은 아래에 링크되어있습니다.
이것은 1999년에 만들어진 피어스 브로스넌 주연의 영화 예고편입니다.
http://movie.naver.com/movie/mpp/mp_preview.nhn?mid=598
이것은 1936년에 만들어진 다큐멘터리로 실제 인물 그레이 아울이 등장합니다. 비버와 볼을 부비는 장면이 가슴 뭉클합니다.
곽윤섭기자 kwak1027@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