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있다

사진마을 2018. 0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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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가 허란의 첫 개인전 ‘꺾인 풍경’이 서울 종로구 청운동 류가헌에서 열린다. 2월 27일부터 3월 11일까지. 개막 하루 전인 26일 전시준비에 몰두하고 있는 허란 작가와 전화로 짧은 인터뷰를 했다. 허란씨는 상명대학교에서 사진영상미디어를 전공했다. 학생 시절부터 밀양, 강정 등 우리 사회의 치열한 현장에서 사진을 찍었고 졸업 후에도 현장을 기록해왔다.
  이번 전시에 걸리는 사진들은 현장에서 한 발짝 정도가 아니라 두세 발짝 떨어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진 제목이나 상세한 사진 설명이 없으면 이곳이 어딘지, 이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이 사진이 어떻게 기능을 하는지 알아낼 길이 없을 것이다. 그는 일간지와 통신사 등 매체에서 2년 넘게 사진기자로 일했으니 현장이 무엇인지 현장 사진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첫 질문을 현재 본인의 정체성에 대해 물었다.
 그는 “2016년 복합적인 이유로 매체를 관두고 프리랜서로 전환하는 과정에 있다고 보면 된다. 내가 어떻게, 어떤 길을 찾아가고 있는지 나 스스로 지켜보는 중이다.”라고 답했다. 사진 내용이 현장과 동떨어졌다는 지적을 미처 하기도 전에 그는 이어서 “기존에 현장에서 보던 것이 너무 강렬했다고나 할까? 그래서 현장 너머를 보려고 했다. (구호나 깃발 같은) 텍스트로 현장을 보여주는 방식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그렇지만 너무 생경한 나머지 현장이 하나의 풍경으로 빠져버릴 우려가 있어서 장소와 연도 등의 사진설명을 절반 정도의 전시작에 붙일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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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서 잠깐 사진을 보도록 하자. 이 여섯 장의 사진에 모두 공통으로 들어있는 것은 무엇인가? 밤 사진을 포함해 모든 사진에 하늘이 들어있다. 실내에서 벌어진 현장이 아니면 이 세상 어디에든 하늘이 있으니 사진에 하늘을 포함했을까? 아니면 어떤 의도가 있을까?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아닐까? 과거 현장에서 사진을 찍었던 나도 현장을 조금 알고 있다.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현장은 모두 비슷비슷하다” 밀양이든 강정이든 세월호가 잠겨있던 동거차도 앞이든 일본 오키나와의 전쟁 추모비 앞이든 현장은 동일한 냄새가 난다. 그 하늘 아래 서있는 사람이 다르고 자연이 조금 다를 뿐 현장은 모두 같다. 거기서 플래카드나 깃발을 빼버리고 나면 모든 현장은 같다. 이 여섯 장의 사진에서 모두 하늘이 있고 그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
  현장에서 허란씨를 지켜본 적이 있는 현직 사진기자에게 기억을 물어봤다. 그는 “허란씨는 현장에서 한 발짝 더 들어가려고 했다. 눈에 보이는 것에 매몰되지 않으려고 했다. 프레임에 갇히지 않으려고 했다. 그가 따뜻한 감성을 가졌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한편으론 그가 사진을 전공한 사람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라고 답했다.
  다시 허란 작가의 말이다.
 “처음엔 무작정 현장이 있으니 현장으로 갔다. 그러다가 조금씩 주체적으로 호기심을 가지게 되었다. 의무감이 생겼다고나 할까?”
  전화를 끊고 다시 사진을 보기 시작했다. 처음에 봤을 때와 다른 것이 보였다. 이 사진들은 “하늘 아래 새로운 것도 있다”라는 말을 하려는 것이다. 현장에서 구호와 현수막과 깃발을 지우고 나니, 다시 말해 현장에서 사진을 찍을 때 구호와 현수막과 깃발을 피하고 나니 현장이 서로 달라졌다는 것이다. 현장에서 현장성을 지우니 비로소 모든 현장이 개별성을 획득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마침 이틀 전에 전업 사진가가 아니면서도 광화문과 단원고와 용산과 쌍용자동차 앞과 팽목항을 열심히 기록한 아마추어(진정한 뜻의 아마추어) 사진가의 사진에 이런 글을 남긴 적이 있다. 그는 전업이 아니다 보니 치열하게 상황이 진행되는 현장을 자주 접하지 못했다. 하루 이틀 지난 현장, 한 달 두 달 지난 현장, 1년 2년이 지난 현장 사진이 많았다. 이렇게 이야기했다. “현장은 곧 스러진다. 세월은 그런 것이다. 흔적도 사라진다. 그럼에도 아직 우리 곁에 있다.” 집회장이 있고 사람들이 모였고 머리띠를 두르고 깃발과 현수막을 들었다 구호 소리가 온 천지에 진동했다.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 1년 2년이 지나고 사람들과 구호가 현장에서 사라졌다. 다시 가본 그 현장은 무심하다. 흔적이 조금 남은 곳도 있지만 아예 없어지고 새로운 건물이 들어선 곳도 있다. 그래서 그런 말을 해 준 것이다. 현장은 곧 스러진다. 세월은 그런 것이다. 그럼에도 그 곳은 우리 곁에 영원히 남아있다. 그게 현장이다. 사진가 허란의 현장사진이 눈앞에서 치열하게 벌어지는 현장보다 더 생명력을 가질 수 있다면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새로운 가능성을 보고 있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사진/류가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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