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의 땅, 원초적 몸짓

사진마을 2018. 11. 14
조회수 3451 추천수 0

김남진 개인전 'Time Landscape'

태초의 그 땅, 그 속의 남성 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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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진 개인전 ‘타임 랜드스케이프’(Time Landscape)가 서울 충무로 갤러리 브레송에서 열린다. 15일부터 30일까지. 사진과 그의 작가노트를 받아보니 ‘아르카디아’라는 낱말이 눈에 들어왔다. 아르카디아는 대자연의 풍요로움이 가득한 유토피아 같은 이상향을 뜻한다. 유토피아와 달리 인류의 문명으로 건설될 수 없는, 바란다고 이루어지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아담과 이브의 에덴동산처럼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곳인 것 같다.
 화가이자 사진가이기도 했던 토마스 에이킨스(1844~1916)의 작품에 ‘아르카디아’가 있다. 그림에서 보듯이 벌거벗은 남자가 서서 파이프를 불고 있고 잔디밭에 남자 둘도 누드다. 에이킨스는 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 본인이 모델을 써서 사진을 찍었다. ‘왼쪽을 바라보는 피리부는 남자’다. 이런 제목이 붙은 이유는 오른쪽을 바라보는 누드와 정면을 향하는 누드 사진이 각각 있기 때문이다. 에이킨스는 누드, 특히 남자 누드에 관심이 많았다. 특이하게도 수영, 레슬링선수들 등 운동하는 남자들의 누드를 많이 남겼다. 그런데 그림 작품 ‘아르카디아’는 운동의 장면과는 다른 배경이다. 에덴동산의 아담과 이브는 벌거벗은 상태였다. 문명이 없는 자연 그대로이니 옷 따위가 있을 리 없다. 대자녀의 풍요로움이 가득한 ‘아르카디아’에도 옷이나 이런 것들이 없으니 누드가 더 자연스럽다. 김남진은 주로 수백만 년 전에서 수십억 년 전에 형성된 지구의 모습들을 거의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미국의 국립공원 같은 곳에서 찍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김남진의 사진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저 건장한 남성의 누드가 무슨 뜻에서 등장했고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냥 풍경사진이 아닌 것이다. 작가노트를 곁들이니 차분히 읽어보길 권한다.


knj02.jpg knj03.jpg knj04.jpg knj05.jpg knj06.jpg opy.jpg » 토마스 에이킨스의 회화 작품 '아르카디아'(왼쪽), 토마스 에이킨스의 사진작품 '피리부는 남자"  
 

작가노트/김남진

내가 살고 있는 지구를 가장 멀리 떨어진 위치에서 바라본 모습은 어떨까?  1990년, 우주 탐사선 보이저 1호가 태양계를 벗어나면서 찍은 사진을 보면 지구는 창백하고 매우 작은 푸른 점(Pale Blue Dot)으로 보인다. 인간이 지구라는 행성에서 살기 시작할 때의 처음 모습은 어떠했을까?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지구의 형태는 지금부터 1만 년 전 마지막 빙하가 사라지면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지구 나이 45억 년, 그 영겁의 시간 동안 지구의 환경은 잠시도 쉬지 않고 변해왔고 지금도 지구는 여전히 변하고 있다. 인류의 문명은 지구가 겪은 장구한 시간의 1퍼센트의 1퍼센트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에 시작되고 발전해 왔다. 인간이 지구라는 행성에서 살아온 만년 동안 지구의 기온과 지질 상태는 역사상 유래가 없는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영원할 순 없다. 지질학자들은 만 오천 년 후에 빙하기가 도래할 수도 있다고 한다. 심지어 20억 년 후 지구도 화성처럼 죽을 것이라고 한다.
 
 서양에서는 자연의 위협과 재앙으로부터 자유로운 이상적인 축복의 땅을 염원하며 아르카디아(Arcadia)를 꿈꾸어 왔다. 대자연의 풍요로움이 가득하고 자연 그대로의 삶을 살 수 있는 목가적인 이상향으로서의 아르카디아는 지극히 인간 중심적인 자연관에서 비롯된 것이다. 인간이 자연에서 멀어지고 자연이 급격하게 변화할수록 아르카디아를 더욱 동경하였다. 인간의 욕망에 맞추어진 아르카디아는 인간과 자연이 하나로 동화된 원초적 자연 세계에 대한 갈망은 더욱 아니다. 자연은 여전히 위대하고 인간은 자연과 구분되는 또 다른 존재라는 낭만주의적 사고에서 벗어나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꾀하고, 생태계의 일부로서 인간도 자연과 상호관계를 맺는다는 인식에 도달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흘렀다. 다시 말해서 인간이 자연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인간중심주의에서 벗어나서 인간 또한 생태계의 일부라는 것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요즘처럼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가 증가하고 생물 멸종의 속도가 빨라지고 플라스틱, 콘크리트 등의 물질이 빠르게 대지를 뒤덮은 적이 없다고 한다. 지구는 단순히 암석덩어리와 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생물과 무생물이 상호작용하면서 스스로 진화하고 변화해 나가는 하나의 생명체이자 유기체이다.
 
 ‘Time Landscape’은 원초적 지구의 모습에 대한 호기심에서 비롯되었다. 인간에 의해 변형이 덜 되고 훼손이 적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보고 싶었다. 미국 서부의 데스밸리를 시작으로 유타 주의 에스컬란티, 브라이스, 캐니언랜즈, 모아브, 아치스와 지온 국립공원에서 만난 지구의 모습은 적게는 수백만 년 전에서 수십억 년 전에 형성된 지구의 모습들이다. 바람과 물이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낸 형형색색의 암석이 빚어 만든 경관과 여러 겹의 퇴적암층이 만들어낸 협곡지대는 척박한 토양같이 보이지 않고 지구의 깊은 속살을 본다는 깊은 경이로움에 사로잡혔다. 이곳에서 자연의 일부로, 자연 속에 존재하는 인간을 나타내보고 싶었다. 시간의 지층 속에서 과거의 단초를 찾는 고고학자의 상상력처럼 태고에 존재했을 것 같은, 당연히 있음직한 자연의 생명 이미지를 찾아서 담아내고자 했다. 거칠고 황량해 보이는 대지 위에서 끊임없이 펼쳐지는, 변화하고 소멸하는 자연의 섭리를 색채로 구현하고, 원시적 자연의 근원적인 것을 추구하기 위해 최대한 간결한 형태를 유지하였다. 결국 ‘Time Landscape’을 통해 자연에 동화되고 화합하고자 하는 인간 본연의 자연적 삶을 나타내면서 인간이 제어할 수 없는 자연의 엄준한 힘을 드러내 보고 싶었다. 자연과 더불어 때로는 순응하고, 때로는 두려움에 맞서는 인간의 모습을, 자연 상태로서 벗은 몸을 통해 구현하고자 한다. 자연을 지배하는 인간이 아니라 생태계의 구성원인 인간을 통해 생장과 소멸하는 자연의 생명 이미지를 담아내는 작업이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사진/작가 제공, 토마스 에이킨스 작품 (공정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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