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say#41 당신의 시간은?
한 번 찍고 나면 내가 추가로 후보정을 하지 않는 한, 사진은 바뀌지 않는다. 그런데 사진을 묵혀두었다가 나중에 다시 꺼내보면 바뀐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경우가 왕왕 있다. 보이지 않던 대상이 불현듯 눈에 띈다거나 옷의 색깔이 바뀐다거나 사람의 방향이 달라 보인다는 정도다. 아주 드물게 (영화 <알포인트> 마냥) 사진에 찍혀있는 사람 숫자가 늘어나거나 줄어드는 경우도 있다. 모두 착각 혹은 주의력 부족에서 비롯되는 일이다. 최근에 이 사진을 다시 꺼냈다가 지난번까지 못 봤던 무언가가 눈에 들어왔다. 횡단보도 오른쪽의 라바콘에 붙은 형광테이프가 도로의 아스팔트 색깔과 유사하여 착시효과가 난다는 사실을 이번에 알게 되었다.
1850년대에 찍힌 예루살렘 근처 베들레헴으로 가는 길의 사진을 놓고 롤랑 바르트는 세 가지 시간대가 존재한다고 말했다. 예수가 살아있었을 때의 시간, 사진가가 그 자리에서 셔터를 눌렀을 때의 시간, 그리고 롤랑 바르트가 그 사진을 바라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순간의 시간. 바르트가 보고 있는 사진 속의 베들레헴으로 가는 길은 사진이므로 실제이고 앞의 두 시간대와 다른 시간이란 뜻이다.
그렇다면 이 사진에선 무슨 시간대가 존재할까? 이곳은 신촌이다. 내가 사진을 찍었던 2019년 3월의 어느 토요일의 시간대가 있다. 다음으론 그전에도 그 후에도 하루에 수 천명이 이곳을 지나갔을 터이니 그 수 천 명에게 각자의 시간이 존재한다. 또한 글을 쓰면서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는 2019년 12월 현재는 또 다른 시간대다. 사진마을의 독자들이 이 사진을 보는 것은 다시 한번 다른 시간의 영역이다.
앨범에서 30년 전 대학 졸업식 사진을 꺼냈다. 디지털 파일과 달리 인화지로 된 사진은 꺼내볼 때마다 색이 바래짐을 느낀다. 변하는 것은 색깔만이 아니란 것도 느낀다.
글 사진 곽윤섭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