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시간을 담았다

사진마을 2019. 03.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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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기 개인전

시간을 담다

갤러리 브레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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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기 작가의 개인전 <시간을 담다>가 서울 충무로 갤러리 브레송에서 열리고 있다. 3월 15일까지. 사진을 받아서 보다가 여러 가지 생각에 사로잡혔다. 당연히 드는 궁금증은 “어떻게 찍었을까?”였지만 그 생각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에 금세 지나가버렸다. 에두르지 않고 바로 붙인 전시의 제목 <시간을 담다>가 솔직해서 좋았다. 존재하는 모든 것의 근간은 시간과 공간이다. 시간을 붙들어 매는 것이 사진인데 시간을 담아두면 공간은 절로 따라온다. 그렇다면 사진은 시간을 찍는 것이 아니라 공간을 찍는 것일 수도 있겠다. 역으로 생각하면 어떤 공간을 잘라서 담으면 시간이 따라 오는 것이다.

 

  “시간이 없다.”는 앞에 뭔가 전제를 두고 하는 말이다. 공부할 시간이 없거나 밥 먹을 시간이 없거나 행복해질 시간이 없거나 생각할 시간이 없거나 모두 무엇을 하려는데 시간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미세먼지를 바라보면서, 아니 미세먼지는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니 스마트폰 앱에 뜨는 미세먼지 수치를 보면서 우리에겐 얼마나 시간이 남았는지 걱정스러웠던 요즘이었다.
 
 이윤기 작가와 짧게 전화를 했다.
 -언제 이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는가?(이것도 시간과 관련된 질문이다)
 “한 10년쯤 되었다. 지인이 아이디어를 던졌다. 아이디어는 아이디어일 뿐이고 그걸 발전시키는 것은 오롯이 작가의 몫이다. 단순히 말하면 흘려서 찍는다는 건데 말만 단순할 뿐 결코 단순하지 않았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아이디어를 받아 최초로 시도했던 것은 노르웨이 어떤 성당이었다.”
 
 -어떻게 찍었는지 물어봐도 될까? 노하우 같은 것인데...
 “상관없다. 누가 따라할 수도 없고 따라한다고 한들 뭐 어떠랴? 자동차를 타고 가면서 찍은 것이 많다. 자연스럽게 흔들리게 되는 것이다. 자 보시라. 차의 속도, 나와 피사체 사이의 원근법, 카메라의 앵글, 그리고 거리와 햇빛 등 한 스무 가지 쯤 되는 공통 분모 속에서 내가 원하는 적절한 장면이 나오게 되기까진 숱한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다. 한 작품 나오는데 최소 700컷에서 800컷 정도를 투자해야 했다. 변수가 굉장히 많다. 우연? 우연이 아니다. 내가 의도하는 것이 있고 그걸 맞춰야 하니 우연이 아닌 것이다. 아... 흐르는 방향이 여러 가지로 보인다? 합성은 하나도 없다. 모두 한 컷짜리다. 노하우라고 할 것도 없이 모두 공개했으니 기술적으로 어려울 것이 없다. 그러나 완성도가 높은 사진이 나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X 흘림이 나오기까진.”
 
 이 작가는 변화를 추구하여야 사진이라는 현대사진의 숙명과 맞서서 새로운 길을 개척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 사진들이 추상인지 초현실인지 구분하려고 드는 시도 자체가 부질 없다. 이것은 ‘찍은’ 사진이고 시간을 훌륭하게 담아냈고 다른 작가와의 차별성을 창조해내는데 성공했으니 그동안 들인 시간이 아깝지 않은 것이다. 그러니 관객들이 시간을 쪼개서라도 한 번쯤 볼 만한 전시다. “시간이 없다”는 것은 늘 그렇지만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나이가 어린 사람들에겐 시간이 많고 나이가 많은 사람들에겐 시간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시간은 나이와 상관없음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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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전시를 두고 독립 큐레이터 최연하씨와 갤러리 브레송 김남진 관장이 각각 생각을 밝혔으니 그대로 옮겼다.

 빗금-빛 금의 시간들 - 이윤기의 지속되는 풍경사진
 
 우리가 사진을 찍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거기, 시간의 진실이 있다는 믿음 때문이 아닐까. 내 안에 잠들어 있던, 혹은 흐르고 있는 시간을 현상(現像)하고 회복하고 싶은 욕망은 사진을 하는 이에게 공통인 것 같다. 대개 카메라를 처음 손에 쥐었을 때 저절로 닿는 곳이 풍경사진인 것도 세계의 진실에 닿고 싶은 순연한 열망 때문일 것이다. 세계와 나를 매개하는 미디어로 사진이 들어온다는 것은, 일상과 지각구조를 재편하는 특별한 경험의 차원이다.   모든 사진이 그러하겠지만 풍경사진이 처음엔 쉽고, 찍을수록 어려워 빠져나오기 힘든 것도 본다는 것의 층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점점 시각의 용적률은 넓어지고 대상(풍경)과의 교감이 다채로워지기에, 새로운 근육이 형성되는 것처럼 오랜 시간과 어려운 과정들이 요구되는 것이 풍경사진이다.
 
 영어의 ‘랜드스케이프(Landscape)’에 비해 우리의 ‘풍경(風景)’은 부드럽고 섬세한 울림이 있다. 뉘앙스의 차이겠지만, 랜드스케이프가 단순히 ‘땅의 모습’을 프레이밍한 것이라면, ‘풍경’이라는 말은 ‘풍경 속의 나, 풍경 같은 나, 풍경을 찾는 나…’처럼 세계와 나를 잇는 비밀스러운 기류가 흐르는 것 같다. ‘풍경(風景)’이라는 단어 속에서 바람이 만들어낸 경관, 바람과 햇볕, 그리고 그림자의 경관이라는 의미들을 발견할 수 있다. 바람과 햇볕과 그림자의 표상이 풍경인 것. 아름다운 말이다. 하지만 사진 속으로 쉬이 들어오기 어려운 피사체가 ‘바람’이 아니던가. 풍경사진이 하나의 장르이지만 사진을 하는 이에게 끝없는 과제를 안겨주는 것도 그 말이 함의한 다층적인 세계 때문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은 흔적으로만 기입되고, 우리가 풍경사진에서 사유하는 것은 어쩌면 바람의 ‘흔적’일지 모른다. 눈에 익숙한 사진-세계가 불연 듯 낯설어지면서 특별한 비의((秘意)로 스며들거나 일순 삶의 궤도가 끊어지는 경험을 풍경사진을 찍어본 사람이라면 한 번 쯤 해봤으리라.
 
 이윤기의 사진세계는 초기부터 지금까지 풍경으로 일관한다. 처음에는 도시의 단층들을 선명하게 찍었다면 점점 흔들리고 부서지는 풍경 속으로 들어간다. 사진 속에 공동(空洞)이 생기고 단절과 파편의 시간이 새겨지기도 한다. 햇빛과 그림자의 경계가 선명하거나 ‘빗금 그어진 빛’들이 포착되어 있기도 하다. 어떤 사진은 강한 빛과 짙은 그림자의 충돌에 의해 반짝하고 탄생한 선분들도 보인다. 인천공항으로 가는 길 위에서, 동작대교에서 창경궁과 천안문과 청송 가는 길들이 환하게 부서져 내린다. 무엇이 이렇게 마술처럼 빛나는 빗금을 만들었을까. 물리적으로는 ‘십 분의 일 초’라는 셔터스피드이지만 바람이 작가 속으로 들어와 부딪힌 어떤 시간의 흔적이 아닐지, 작가도 몰랐을 하지만 오래 지속된 시간의 선분이 발현된 것이다. 삶의 역사와 현실 속에서 부대끼며 상처 입으며 살아온 시간들이 모래알처럼 맺히기도 하고, 시간과 삶을 한 덩어리로 성찰하는 시선이 흐르고 있기도 하다.
 
 작가가 붙잡고 싶은 십 분의 일 초는 그가 사진에서 되찾고 싶었던 시간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근거인 풍경-세계 속으로 들어가, 살아왔고 살아가는 시간이 자연스럽게 겹쳐 운동하는 이미지가 되었다. 특이한 것은 무엇이 어떻게 다가올지 예측할 수 없는 우발적인 풍경이지만 시간의 눈들이 분명하게 포착되어 있다는 것이다. 매 순간 세계가 선사하는 빛을 온 몸으로 받아들이고 기뻐하는 작가의 눈빛도 반짝인다. 자유롭고 귀한 몸짓이다. 작가는 아마도 작가 속으로 들어온 바람과 더불어 ‘바깥’의 바람을 사유하고 있는 것이 아닐지, 바깥(피사체)이 사진가의 내적 원리가 될 수 있음을 이윤기의 빗금 그어진 풍경사진을 보며 생각한다. 
                                             최연하(독립큐레이터, 사진평론가)


 사진에 시간을 담는 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이윤기 작가는 shaking를 주로 사용하여 움직임을 담아낸다. 달리는 차량에서 스쳐 지나가는 풍광을 느린 셔터속도로 잡아내는 방법을 즐겨 사용한다.
 모든 사물을 위시한 존재의 지속적 경과를 시간이라 부른다. 어떤 시간이든 이전 상태로 되돌릴 수가 없으므로 당연 비가역적이다. 사진은 비가역적인 매체이지만 기억과 추억을 되감기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역적인 매체라 할 수 있다.
 즉 시간의 흐름을 고정하는 사진의 힘은 눈으로 볼 수없는 비가역적 상황을 환기시켜 그 순간의 기억과 흔적을 되새김시켜준다. 이윤기는 사진의 이러한 이중 장치를 이용해 사진을 찍고 있다.
 촬영하는 순간에 절대적으로 모든 것을 예측할 수 없는 사진은 필연적으로 우연성을 동반하지만 때로는 물리적 흐름이 예상하지 못하는 방향성을 지닐 때는 더욱 혼란스러움을 느낀다. 이윤기의 쌍방향으로 운동감이 표현된 사진을 볼 때 이런 느낌이 가중된다.
                                                                              김남진 관장


곽윤섭 선임기자, 사진/갤러리 브레송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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