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적인 초현실 사진

사진마을 2019. 12.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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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요한슨 사진전 <Impossible is Possible>

2020년 1월 2일부터 3월 29일까지

성남큐브미술관에서


최근에 서울 광화문의 한 대형서점에 들렀다가 서점 안에 마련된 손글씨대회 수상작전시회를 보게 되었다. 내가 워낙 악필이라 잘 쓴 글씨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지금까지 나의 로망이었다. 예쁜 글씨, 반듯한 글씨, 유려한 글씨... 모두 부러웠다. 그런데 글씨는 무언가를 실어나르는 도구이기도 하다. 그러다보니 내용이 있어야할 것이고 책 속에서 감명 받은 문장을 골라서 손글씨로 적는 대회이니 빈번하게 인용된 책도 함께 전시를 하고 있었다. 게다가 뭐로 썼는지도 궁금할까봐 필기도구도 실물로 전시를 했다.

 

사진강의 노트40년 넘게 사진강의를 해왔던 당대 최고의 사진교육자(사진가이기도 한) 필립 퍼키스의 명작이다. 그는 이렇게 썼다. “사진과 글은 자체의 특성으로 이루어지는 회화나 음악과는 달리 무엇을 찍고 무엇에 관해 쓰는 것처럼 늘 무엇이라는 대상이 필요하다. 그래서 어떤 형태로든 그 대상에 대한 묘사가 따라붙기 마련이다. 사실 사진이 발명된 직후부터 수 많은 사진가와 작가들이 이 두 매체의 묘사적인 성격을 없애려고 노력해왔다. 19세기 후반의 회화주의 사진가들은 사진을 회화처럼 보이게 하려고 했다. 지금에야 대부분 덜 떨어진 작품으로 여기고 있다. 물론 지금도 그때의 시도를 추종하는 일군의 현대예술가들이 있다. 그들은 사진이 주는 정보가 부족할수록 사진 자체가 더 신비로워진다고 믿게 하느라 정신 없이 바쁘다. 문학에서 보자면 제임스 조이스, 윌리엄 버로우 같은 많은 작가들이 전통적인 서술방식을 깨뜨려 더욱 심화된 감성과 정신세계를 펼쳐내기 위해 모색해왔다. 그들에겐 사실이 보여주는 진실보다 감정이 보여주는 진실이 더 중요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노력은 위에서 말한 현대 예술가 무리처럼 신비로운 느낌을 급조하려고 정보를 폐기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1910년대 프랑스에서 시작된 초현실주의는 철학, 문학, 예술계 전반에 영향을 미쳤으며 사진가이자 화가인 만 레이를 초현실주의 사진의 처음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이중인화, 솔라리제이션 같은 비교적 단순한 기법의 초현실주의 사진이었지만 당시엔 혁명적이었을 것이다. 길지 않은 지면에서 초현실주의 사진의 계보를 나열할 일이 없고 중요하지도 않다. 조오련이 빠른지 바다거북이 빠른지를 묻는 것이 어리석은 것처럼 손 대지 않고 한 번 셔터를 눌러 초현실주의 사진을 만드는 랄프 깁슨이 더 가치가 있는지, 아니면 아날로그 방식으로 합성하여 초현실주의 사진을 만드는 제리 율스만이 더 심오한지, 아니면 디지털로 합성하는 존 고토가 더 선도적인지 겨룰 일도 아니다.

 

에릭 요한슨은 현실적인 초현실주의라는 점에서 다른 초현실주의 사진가들과 차별성을 가진다. 위에서 인용한 필립 퍼키스의 말처럼 사진이 주는 정보가 부족할수록 사진 자체가 더 신비로워진다고 믿게 하느라더 흐릿하고 더 모호하게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

전설의 마술사 해리 후디니의 탈출 마술을 본 사람들은 경악했다. 그리고 궁금했다. “어떻게 했지?” 그러나 마술사들은 절대로 트릭’(속임수)을 공개하지 않는다.

TED 강연 <Impossible photography>에서 에릭 요한슨이 자신이 작품을 만드는 과정을 친절하고 솔직하게 말했다. 그는 트릭은 초현실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트릭의 기본은 어느 정도 적당한 현실주의에 기반을 둔다.” 다른 동영상에서 에릭 요한슨은 자신의 작품 <Stellantis>(stella는 라틴어로 별을 뜻한다)을 만드는 긴 과정을 보여줬다. 여기서 모델로 등장한 여성 (모델의 이름이 Stella)이 거대한 핀셋으로 하늘의 별을 따고 있다. 에릭 요한슨은 프라하의 장인에게 의뢰해 150cm짜리 알루미늄 핀셋을 만들었다. 물론 핀셋을 실제 만들었다고 해서 Stella가 하늘의 별을 딸 순 없지만 실제처럼 보이게 하는데 일조한 것은 사실이다. 손글씨대회 수상작 전시회에서 글씨를 쓴 도구가 (연필인지 만년필인지) 궁금할 수 있는 것처럼 사람들은 사진전시장에서 (필름카메라인지 디지털카메라인지, 중형인지 대형인지) 무슨 카메라로 찍었는지 궁금해 한다. 트릭을 공개하지 않은 마술사 후디니와 달리 마법 같은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에릭 요한슨은 모든 과정을 다 공개한다. 에릭 요한슨은 강조하지도 않고 덤덤히 말한다. 아이디어가 중요한 것이라고. 꿈을 사진으로 표현하는 그는 깨어나면 기억도 나지 않는 흐릿한 꿈이 아니라 진짜처럼 생생한 꿈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신비로운 느낌을 급조하려고 정보를 폐기하지 않고 현실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이다. 그의 꿈은 관객의 꿈이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본 글은 성남문화재단에서 발행하는 문화예술 매거진 <아트뷰> 201912+202001월호에 수록된 글입니다.

성남문화재단 홈페이지 snart.or.kr에서 웹진으로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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