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화방 전경-당시 만화를 빌려주기도 하고 열람할 수도 있었던 이곳은 보통 구멍가게를 겸하고 있었다.
국립현대미술관 ‘한국만화 100년전’
만화가 250인의 1500여 작품이 한자리에
옛 추억 생각나게 하는 미니어처 만화방
한국만화 100주년을 맞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한국만화 100년’ 전이 열리고 있다. 현재 한국 만화의 효시는 1909년 6월2일 일간지 ‘대한민보’ 창간호에 실린 이도영 화백의 시사만화로 보고 있다. 이번 전시는 그 만화가 실린 지 100년을 꽉 채우고 새로운 100년이 시작되는 6월3일에 시작되었다.
만화에 대한 추억이 없는 대한민국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만화는 늘 우리 곁에 있어왔다. 어린 시절 만화방에서 만화에 넋이 빠진 채 저녁식사 시간을 놓쳤다가 부모님께 혼이 났던 기억이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학교에 만화책을 들고가서 수업시간에 킬킬거리고 보다가 책을 압수당한 채 벌을 섰던 사람도 있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미술이나 음악은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때부터 공교육의 틀에 포함되어 우아하고 근엄하게 대우받았으나 만화는 늘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아왔다. 예나 지금이나 공부하는 학생들이 만화를 들고 있거나 인터넷에서 클릭하고 있으면 고운 눈으로 바라볼 부모나 선생님은 별로 없을 것 같다.
그러므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대규모 만화전시를 한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문화적, 예술적, 산업적 가치에 대해 새롭게 조명받게 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번 전시엔 1909년부터 현재까지 각 시대를 대표하는 만화가 250명의 작품 1500여 점과 한국 만화 100년의 시간 속에 성장해온 현대미술 작가 18인의 작품 60여 점이 함께 전시된다. 100년의 역사를 시대에 따라 나누고 장르에 따라 구분해 전시하고 있으니 동선을 따라 천천히 관람하면 지루하지 않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지난 토요일, 전시장을 둘러봤다. 마침 서울 유네스코 글로벌리더 프로그램에서 활동하는 6명의 중학생들이 국내사전조사를 위해 단체로 관람한다기에 이들을 따라다니며 전시를 어떻게 보고 생각하는지 이야길 들었다.
“영어공부 도움된다고 하니 사주시더라구요”
- 만화를 좋아하고 많이 보나요?
= (이구동성으로) 좋아해요.
- 어떤 만화가 기억이 나죠?
= 도라에몽, 궁, 데스노트, 꽃보다 남자, 짱구…….
주로 일본만화의 이름이 쏟아졌다. 그 중, 한 친구가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이요”라고 말했다. 이들은 주로 웹툰을 즐겨보는 세대다. 요즘 가장 인기 있는 것은 포털사이트에서 연재되고 있는 ‘정글고’ 란다. 곧 고등학생이 될 나이이니 더욱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전시장 한쪽엔 몇십 년 전 만화대여소(만화방)의 미니어처 모형이 만들어져있다. 인형의 집마냥 크기를 줄였을 뿐, 자세히 들여다보니 예전 만화방을 완벽히 재현하고 있었다.
- 만화를 사서 보는 경우도 있나요?
= 요즘 친구들은 거의 웹툰으로 봐요. ‘꽃보다 남자’ 사서 봤어요.
(‘꽃보다 남자’에 열광했던 어른들도 많이 있으므로 그 친구의 부모님 중 한 분이나 두 분 모두가 만화를 이해하고 좋아하는 모양이다 싶었지만 그래도 신기했다.)
- 부모님도 ‘F4(꽃보다 남자)’를 좋아하시는 모양이죠?
= 음……. 영어로 된 ‘꽃보다 남자’ 만화가 있어요. 영어공부에 도움이 된다고 하니 사주시더라고요.
“내가 부모라도 만화 보는 것 통제할 것”
일행 모두에게 차례로 전시를 둘러본 소감을 물었다. 6명의 팀장을 맡고 있는 이현정(홍은중 3) 학생은 “만화전시라고 해서 간단할 것이라 짐작했는데 막상 와보니 생각보다 긴 역사와 깊은 의미가 있는 장르라서 놀랐다”라고 말했다.
= (만화라는 것이) 단지 재미만을 위한 것이라 생각했는데 예술의 차원으로 인정될 수 있다는 것을 보고 많은 것을 느꼈다.
= 만화가는 스트레스가 많은 직업일 것 같다. 그렇지만 자기만족도가 높을 것이다.
= 시사만평은 한 컷으로 우리사회와 국민 대중들의 생각을 요약해주는 것 같다.
= 딱딱한 사회인들에게 흥미를 주는 것 같아 좋다.
=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는 것 같다. 순정만화는 대리만족을 줘서 좋다. 만화란 것이 영화의 소재로 쓰이기도 하고 (특히 시사만화는) 사회, 정책이 잘못된 방향으로 흐를 때 바로잡아주는 역할을 하기도 할 것.
진지하고 생각이 깊은 답변들이 쏟아졌다.
- 부모님들은 만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죠?
= 만화를 보고 있으면 엄마는 “그만 봐라”, “도움이 안 된다”, “시간이 없다”라고 말씀하세요.
- 본인들은 만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
= 속독력과 창의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 감성이 풍부해지는 것 같아요.
= 얼굴 표정을 연구할 수 있어 좋아요.
= 자칫 흥미 위주의 만화를 보다 보면 중독성이 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 재미있어요.
- 나중에 여러분들이 부모가 되면 여러분 나이의 자녀들에게 만화를 보라고 할 것 같아요?
= (잠시 침묵) 적당히!
= 할 일 다 하고 보라고 하겠어요.
= 기말고사 끝나면 보여주겠어요.
= 할 일 먼저 다 하고, 시간 날 때 보게 할 거에요.
캐릭터로 만나는 옛 만화 주인공들
‘한국만화 100년’은 거의 모든 연령층의 관객을 위한 전시다. 어떤 시대를 살았던 저마다 어린 시절에 만화방에서 보던 만화의 주인공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고 보면 된다. 만화의 생명력이 소설이나 그림 못지 않음을 느낄 수 있다. 인터뷰했던 중학생들이 전혀 모르리라고 짐작했던 예전 작가들의 주인공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았다. 비록 학생들이 작가의 만화책을 직접 본 것은 아니었고 과자, 아이스크림 봉지의 캐릭터였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만화의 주인공들이 벽화로, 책받침이나 필통의 아이콘으로 등장하는 것도 좋은 일이다.
우리 주변의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곳에 홍길동, 꺼벙이, 독고탁, 둘리, 까치와 엄지, 하니 등이 늘 뛰어다닌다면 멋질 것 같다. 만화만큼 친화력이 강한 장르의 예술이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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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윤섭 기자 kwak1027@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