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스크랩북' 한국에 오다
독일군 포로로 잡혀 죽은줄 알았다 무사 귀환
브레송이 직접 인화한 사진은 스크랩북이 유일
» 자택에 있는 앙리 마티스, 1943년 촬영. 앙리 카르티에-브레송 스크랩북 원본 페이지, 1946년 인화 ⓒ앙리카르티에-브레송/매그넘 포토스
» 여러 인물 사진. 맨 왼쪽 위는 <카르디날 파셀리 추기경의 방문, 몽마르트, 파리, 1938년 촬영> 이 사진은 인간가족에도 들어있다. 그 아래 조각가 자코메티도 보이고 오른쪽 맨 아래엔 에디트 피아프도 보인다. 앙리 카르티에-브레송 스크랩북 원본 페이지, 1946 ⓒ앙리카르티에-브레송/매그넘 포토스
지난 2008년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탄생 100주년이었다. 여러 기념행사들이 열렸는데 이 중에 ‘스크랩북’ 전시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 전시가 한국에서는 최초로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12월 3일까지.
‘스크랩북’ 전은 브레송이 1932년부터 1946년까지 찍은 사진들로 1947년 2월부터 4월까지 미국 뉴욕현대미술관에서 전시된 사진들이다. 단순히 브레송의 초기작이라서 중요한 것이 아니고 스크랩북을 둘러싼 이야기가 이 전시를 전설로 만들었다.
1908년에 부유한 직물업자의 아들로 태어난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은 1931년까진 본격적으로 사진을 시작하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취미로 사진도 찍고 음악도 즐겼으나 무엇보다도 초현실주의 회화에 경도되어 있었다. 그러다 헝가리 사진가 마르틴 문카치의 사진 ‘탕가니카호수의 세 소년들’을 보면서 진정한 사진의 가치를 알아봤고 사진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는데다가 사진에 막 눈을 떴으니 보니 본인이 태어난 프랑스보다는 외국에서 사진을 찍고 싶어했던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유럽 각국을 여행하고 미국, 멕시코 등지에서도 사진을 찍으며 왕성하게 활동을 했다.
1939년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고 1940년에 브레송도 참전했다. 그러나 몇 달 만에 독일군에게 포로로 잡혔고 거의 3년 만에 탈출하기 전까지 그의 생사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 무렵 뉴욕현대미술관의 사진부문 관장이었던 버몬트 뉴홀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유고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 소식을 듣게 된 브레송은 대단히 기뻐했고 1946년에 본인이 손수 인화한 300여 점을 들고 뉴욕으로 건너갔다. 스크랩북을 한 권 사서 접착제로 붙여 뉴욕현대미술관의 큐레이터에게 보여주고 전시작을 선별했다. 이런 연유로 당시 나이가 채 40살도 되지 않았던 브레송이 첫 회고전을 열게 된 것이고 이것이 ‘스크랩북’ 전시다.
» 아실라, 모로코, 1933 ⓒ앙리 카르티에-브레송/매그넘 포토스
» 파리, 1945 ⓒ앙리 카르티에-브레송/매그넘 포토스
» 잔 구종 거리, 파리, 1945 ⓒ앙리 카르티에-브레송/매그넘 포토스
» 파리, 1946 ⓒ앙리 카르티에-브레송/매그넘 포토스
» 알리칸테, 스페인, 1933 ⓒ앙리 카르티에-브레송/매그넘 포토스
» 매춘부, 콰우테모크 거리, 멕시코, 1934 ⓒ앙리 카르티에-브레송/매그넘 포토스
» 포로수용소의 해방 : 한 여인이 게슈타포에 자신을 고발한 밀고자를알아보았다. 데사우, 독일, 1945년 5월~6월 ⓒ앙리 카르티에-브레송/매그넘 포토스(왼쪽사진) 오른쪽은 사진의 뒷면이며 브레송이 직접 쓴 캡션이다. "한 적군의 협력자가 소리쳤다 "날 죽이지 말아요. 그들의 이름을 말할게요"
그 후부터 브레송 사진인생의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로버트 카파 등과 더불어 매그넘을 만들었으며 전세계를 다니면서 세계사적인 순간의 사진을 찍었다. 또한 각계의 명망가들과 교류하며 인물사진을 찍었다. 그러다가 1970년대 초반에 “사진으론 더 이상 할 것이 없기 때문에” 사진을 내려놓았고 어릴 때 꿈이었던 그림으로 돌아갔다.
그리고도 한참이 지난 1990년대에 이르러 브레송은 갑자기 스크랩북을 살펴보게 되었다. 그때까지 아직 종이에 붙어 있던 사진들을 조심스레 떼서 갈무리했고 이 내용이 이번에 한국에 오게 된 ‘스크랩북’이다. 이번 전시에는 스크랩북의 원본 책도 함께 전시가 되며 그 책에서 떼어내서 보관중이던 사진들 250여 점이 한국 관객을 만나게 되었다. 전시 주최 쪽에서는 이번에 오는 사진들이 ‘오리지널 빈티지 프린트’라고 강조하고 있다. 네거티브필름을 현상한 뒤에 처음으로 사진가가 직접 인화한 사진을 빈티지라고 부르는데 업 » 브레송의 다이어리, 버몬트 뉴홀의 부인인 낸시 뉴홀과 전시를 위한 만남 약속이 적혀있다.ⓒ앙리카르티에-브레송/매그넘 포토스 계에선 빈티지의 기준을 다소 넓게 적용해 사진가가 네거티브를 만든 지(사진을 찍은 지) 5년 안에 사진가의 감독하에 인화된 사진까지 ‘빈티지’라고 인정하는 것 같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스크랩북 사진은 그런 면에서 보자면 ‘진짜, 리얼, 오리지널’ 빈티지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왜냐하면 사진계에 알려진 바에 따르면 브레송이 직접 인화한 경우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스크랩북의 사진은 “브레송의 감독 아래”가 아니라 직접 인화한 거의 유일한 빈티지가 되겠다. 그의 인화기술이 얼마나 뛰어났는지에 대해선 아는 바가 없다. 하지만 이미 전설이 된 브레송의 손을 거쳤다고 하니 감회가 다를 수밖에 없다.
눈에 익은 사진들이 여럿 보인다. 마음먹고 한 번 전시장에 들러야겠다. 브레송이 직접 쓴 사진설명을 보니 악필까진 아닐지 몰라도 꽤 자유로운 필체로 보여서 반가웠다.
전시 관람시간은 평일의 경우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토요일과 공휴일의 경우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 30분까지. 매주 일요일과 추석연휴는 휴관. 전시문의는 02-418-1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