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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을 자는 당신 모습을 본 적이 있을까
박세리 작가, 잠 자는 사람들 찍어 전시
사진, 미술 대안공간 스페이스 22에서 박세리 작가의 개인전 <안녕>이 오늘(8월 26일)부터 열린다. 9월 13일까지 열리며 이 전시는 미진프라자가 후원한다. 잠자는 사람들을 촬영한 이번 전시는 박세리씨가 한국에서 발표하는 두 번째 개인전이며 2011년부터 2016년까지 본인과 주변 사람들이 실제로 잠을 자고 있는 모습을 촬영한 사진과 동영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화로 인터뷰했다.
-이 작업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2005년과 2006년에 가족을 잃었다. 그 아픔을 극복하기 위한, 나 자신을 위한 애도다. 1999년쯤에 취미 수준으로 사진을 한 적이 있다. 그러다가 2008년에 대학원에 입학하면서 사진을 다시 시작했다. 2015년 뉴욕 프랫에서 순수미술로 석사를 받았다.
-작업 내용과 과정을 설명해달라.
“안녕 작업은 처음에 동영상으로 했다. 이번에 걸리는 사진들은 총 18점인데 타임랩스를 포함하면 21점 정도 되겠다. 동영상은 6시간 동안 내가 자는 것을 찍어서 한 시간 분량으로 편집하여 전시장에서 상영할 것이다. 나를 포함하여 누군가가 잠을 자는 모습을 찍었다. 우선 허락을 받는다. 그리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 삼각대에 카메라를 놓고 조명도 세팅해둔다. 그리고 침실에서 나온다. 찍힐 사람이 잠이 들고 나면 주로 새벽 세 시쯤 깊은 잠이 든 상황에 침실에 다시 들어가 셔터를 누른다.”
-뭔가 궁금한 대목이 많은데?
“알고 있다. 사람들이 다 그런 쪽에 관심이 많더라. (웃음) 사람마다 다른데 잠귀가 밝은 분도 있다. 셔터 소리에 살짝 깨는 분도 있는데 내 작업을 도와주기 위해 다시 잠을 청하는 분도 있다. 그런게 다 보인다. 이번 전시되는 사진에선 잠을 자는 척하는 사진은 다 제외했다. 모두 깊은 잠이 든 상황에서 찍은 것만 전시한다. 잠든 지 한 시간 후의 표정과 숙면 상태의 표정이 다르다. 말을 계속하자면……. 새벽 3시쯤에 셔터를 누르고 다시 빠져나온다. 그리고 그 사람이 아침에 완전히 깨고 나면 삼각대와 카메라와 조명을 철수한다.”
-본인이 본인을 어떻게 찍을 수 있나?
“내가 들어있는 사진은 친구가 셔터를 눌러준 것이다. 나머지 과정은 모두 같다. 내가 잠자리에 들기 전에 모든 것을 세팅해둔 다음 내가 깊이 잠들었을 때 친구가 들어와 셔터를 눌렀다.”
박세리 작가의 사진을 보고 있노라니 좀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허락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자고 있을 때 누가 내 모습을 찍는다고 하면 이상할 것 같다. 물론 본인의 사진을 가장 먼저 찍었다고 했으니 그건 그렇다고 치더라도…. 나 같으면 자다가 가위눌릴 것 같다. 또한 찍는 사람 입장에서도 무서울 것 같다. (자고 있는 사람이) 사진 찍힐 것을 예상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깜깜한 침실에서 자고 있는 사람을 들여다 본다는 것은…. 공포영화나 전설의 고향이 마구 마구 떠오를 것 같지 않은가?
-무섭지 않았는가?
“무섭다기보다는 좀 이상한 느낌이 들긴 했다. 사람이 내 앞에서 자고 있는데 의식이 없는 상태이지 않는가? 죽은 사람 같은 느낌?”
이야길 듣다 보니, 그리고 작가노트를 보니 ‘죽음의 위기’가 떠올랐다. R·B가 카메라 루시다에서 말한 밋밋한 죽음(Flat Death)이 연상되기도 했다. 그래서 그 이야길 좀 했다.
박세리 작가는 “글쎄다. 그것과는 좀 다른 것 같은데……. 우선 일반적으로 보자면 잠자는 모습과 죽음은 시각적으로 비슷하다. 사진을 찍으면서 보다 비슷하게 보이게 하기 위해 19세기 때 유행했던 사후사진(Postmortem Photography)에서 반복적으로 볼 수 있는 각도와 조명을 이용했다. 인문학적으로 보자면 이렇다. 하루는 24시간이다. 그중 16시간가량은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활동을 한다. 그런데 나머지 8시간은 무의식 상태에서 잠을 잔다. 이렇게 하루하루가 반복적으로 돌아간다. 하루는 인생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지 않은가. 열심히 살면 잠도 잘 잔다. 깨어 있는 상태 못지않게 자는 모습도 중요하고 쉼도 필요하다. 인간이 가장 솔직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바로 잠 잘 때 아닌가? 의식하지 못한 표정이 나온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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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를 돕기 위해 조금 정리를 할 필요가 있다. 1839년 다게레오타입의 사진이 세계 최초로 과학적 사진술로 공표되고 시각이미지의 세상에서 일대 혼란이 일어났다. 화가 폴 들라로슈가 사진을 보고 “오늘부로 회화는 종말을 맞이했다”라고 소리쳤다는 이야기는 어느 정도 사실인 모양이다. 주지하다시피 산업혁명으로 중산층이 급속히 늘어나면서 초상화에 대한 수요가 폭증했고 사진의 발명과 공표는 초상화 제작 수요를 해결하는 중대한 전환점으로 작동했다.
초상사진은 그림과 달리 실제 그 사람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19세기 중반 이후 사람들의 인식세계도 흔들었다. 사진으로 찍힌 본인과 가족, 친척들의 얼굴을 보면서 사람들은 ‘인간은 언젠가는 죽음을 피할 수 없는 불완전한 존재’임을 깨닫기 시작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생전에 찍었던 사진이 거실에 걸려있게 되면서 죽은 자의 얼굴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음을 느낀 것이다. 중요한 점은 몇몇 철학자들이나 권력자들만이 이런 것을 깨닫게 된 것이 아니라 수백만의 보통 사람들이 사진을 통해 저절로 이런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진은 죽음을 영원히 붙들어놓을 수 있는 수단임을 알게 되면서 동시에 사후사진( 사람이 죽은 뒤에 옷을 입히고 화장까지 하여 산 것처럼 찍는 사진. 특히 어린 아이들이 사망했을 때 부모들이 애도하기 위해 많이 찍어서 간직했다)의 유행이 퍼져나갔다. 어떤 과부의 거실에 세상을 뜬 남편의 초상사진이 걸려있고 그 옆에 남편보다 10년 일찍 디프테리아로 사망한 아이의 잠자는듯한 사진이 걸려있는 것을 생각해보라! 과부는 세상을 뜬 남편과 아이의 사진들을 보면서 (그 둘이 사진 속에서) 신이 인간에게 허락한 수명보다 더 오래 살아있다는 위안을 받았을 것이다. 유럽과 미국에서 사후사진은 큰 규모의 사업이었다는 자료들이 많이 남아있다.-파워 오브 포토그래피( 저자 비키 골드버그) 참고
-나중에 사진을 보여줬을 때 찍힌 사람들의 반응은 어떻든가?
“놀라는 사람이 많았다. 다들 자신들이 생각하고 있던 자신들의 자는 모습과 다르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렇게 생겼나? 내가 땀을 흘리고 자는구나? 내 얼굴이 이렇게 붉었어? 외국 사람들의 경우 크리피(Creepy)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내가 자는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줬더니 ‘이게 박세리 맞아? 다르게 보인다’라고 하더라. 그러니까 나든 타인이든 자는 모습은 이상하게 다가오는 모양이다”
크리피(Creepy) 는 “섬찟한, 소름끼치는” 이란 뜻을 가졌다. 마침 정말 최근에 일본 공포영화 크리피(일가족 연쇄 실종 사건)가 개봉되었다. 그런데 일견 무섭기도 하지만 자신이 자신의 자는 모습을 사진으로 본다는 것은 매우 특이한 경험일 것 같다. 박세리 작가가 말을 이었다.
“사람들은 낮에 활동할 때 다른 사람들을 거의 대부분 세로 상태로 만난다. 그런데 이 사진들에서 사람들은 가로로 누워있다. 사후사진은 가족들이 기억하고 싶어서 찍는 것이기도 했지만 초기의 사진술에선 렌즈나 감광기술이 뛰어나질 못해서 셔터 속도가 대단히 느렸고 그렇다 보니 (산 사람을 찍을 때는 흔들리기 십상이었는데) 죽은 사람을 찍을 때는 움직이지 않으니 피사체로 더 적합하기도 했을 것이다. 19세기 사람들은 어쨌든 화장도 하고 꽃으로 장식도 하여 예쁘게 사후사진들을 찍곤 했다. 나 또한 나의 가족에게 그런 마음이 있었고 나의 작업은 나 자신에 대한 애도의 작업이다”
그리곤 박세리 작가에게 비판적인 이야길 하고 싶었다. “싫은 소리가 될 수 있겠지만….”라고 운을 뗐는데 “편하게 말씀하시라”고 해서 편하게 이야기 했다.
-결국 사진들 사이에 큰 변화가 없지 않느냐? 이것도 자는 사진, 그 다음도 자는 사진, 모든 사람들이 얼굴만 다르고 다 자는 사진 아니냐? 재미가 없다.
“나는 엔터테이너가 아니다. 재미있는 사진을 원하는 관객들이라면 내 사진을 싫어할 수도 있겠다. 어쩔 수 없다. 나는 그런 점보다는 빛도 어둡고 어떤 상황을 조절하기도 힘든, 그런 작업이란 점에서 하나의 도전이라고 느꼈다”
-질문을 이해 못 한 것 같다. 어찌 보면 이 작업 또한 지루하기 짝이 없는 유형학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아…. 일부 공감한다. 좀 전에 말했지만 수동적으로 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제한이 많았다. 따라서 변화를 줄 수 있는 여지가 별로 없었다. 사진이 모두 비슷하다는 것엔 동의하지 않는다. 방이 다르고 이불이 다르고 표정이 다르다. 게다가 전시장에 와서 보면 알겠지만 타임랩스 작업의 동영상을 보면 뒤척거림도 보이고……. 관객들은 평소에 못 봤던, 모르던 것을 보게 되는 재미를 발견할 것이다. 아…. 이해한다. 사진에 변화가 없어 지루해지면 곤란하다는 점엔 전적으로 동의한다. 내 작업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안녕>은 굉장히 특이한 접근이다. 단순히 소재에 그친 소재주의가 아니다. 잠은 모든 인간들이 거의 매일 경험하는 일상적인 현상이니 우리 모두에게 와닿는다. 좋은 작업이다. 내가 칭찬을 별로 안 하는데 이건 좋다. 자. 그런데 <안녕>은 이것으로 마무리가 되었는가? 계속 이어진다면 예컨대 <안녕> 시즌 2에서도 또 이 사람도 자고 저 사람도 자고…. 이렇게 할 것인가? 그렇다면 유형학을 벗어나지 못하는 지루한 작업이 될 수밖에 없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다음번 작업은 연관성을 이어가지만 다르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쉽지 않을 것임을 안다. 그러나 나의 홈페이지(serrypark.com)를 보면 알겠지만 나는 늘 변화를 시도한다.”
인터뷰를 마쳤다. <안녕>은 여러 가지로 생각할 것을 던져주는 신선한 작업이다. 이제 사진을 다시 보니 무섭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았다. 잠을 참 잘 자는 사람들이구나. 이 더운 여름 한철의 막바지에 이 사진들을 보니 부러웠다. 어제오늘 갑자기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이제 좀 잘 수 있으려나…. 사진전의 제목 <안녕>도 참 잘 지었다. 일본 영화 <굿&바이>가 떠올랐다. ‘안녕’은 ‘Hello’도 될 것 같고 ‘Good & Bye’도 되겠다.
박세리 작가가 관객을 만나는 작가와의 만남은 9월 1일(목) 5시부터 전시장에서 열린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직접 만나보라. 문의 전화 02-3469-0822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