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문 사진전 ‘주변인들’
부산 산동네 100여개 노선...창 안에서 본 창 밖
“사회 중심부에서 비껴난 공간의 소소한 이야기”
마을버스를 타고 창밖 세상을 찍는 사진가 남정문(63)씨의 사진전 ‘주변인들’이 부산시 해운대구 ‘아트소향’에서 열리고 있다. 9월 10일까지. 남씨가 1주일에 잦으면 서너 차례, 뜸하더라도 최소 한 번은 꼭 마을버스를 타고 부산을 찍어온 지도 어언 십 년이 훌쩍 넘었다. 지난 2013년에 남씨는 제1회 최민식 사진상 특별상부문에서 장려상을 받기도 했다.
» 부산진구 8번 마을버스에 앉은 남정문씨, 이 사진은 부인이 촬영했다.
남씨가 마을버스에서 사진을 찍게 된 계기는 너무나 자연스럽고 또 한편으로 단순했다. 어린 시절부터 사진에 관심은 있었으나 학업과 생업이 더 소중하여 시간상으로 여유가 생길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마흔아홉에 사진공부를 시작했고 2003년 무렵에는 부산흑백사진연구회에서 활동하며 회원들과 부산을 찍으려고 했는데 산복도로도 가보고 바닷가도 가봤지만 너무 흔한 풍경이었다. 뭔가 다르게 찍고 싶었기에 궁리 끝에 마을버스를 타고 사진을 찍게 되었다.
그에게 마을버스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남씨는 “서민들의 삶의 공간인 도시의 변두리나 산꼭대기는 큰 버스나 지하철이 연결되지 않는 곳이다. 이런 곳까지 (핏줄이) 통하게 해주는 것이 마을버스다. 마을버스가 다니는 길 옆의 풍경은 사회의 중심부에서 약간씩 비껴난 공간이다. 그래서 ‘주변인들’이다. 이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하고 소소한 이야기를 담아내고 싶은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마을버스의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부산시청으로 가서 마을버스 담당자를 만났다. 전체 부산의 버스 노선이 담긴 책을 받아왔고 ‘이거 다 한 번 돌아보자’라고 마음먹었다고 했다. 2016년 5월 기준으로 부산엔 현재 137개의 마을버스 노선이 있다. 남씨는 그 중에서 20개 안팎을 빼고는 모두 타 본 적이 있다고 했다.
그는 전화인터뷰에서 “최근에는 부산 마을버스 ‘남구 3번’을 자주 탔는데 이건 문현동, 장고개를 지나고 자유시장까지 간다. 예전에 포병부대가 있어서 그런지 문현동에 포부대라는 동네가 있다. 거기 가면 감천마을을 닮은 곳이 있다. 물론 요즘 마을버스는 평지로도 다니지만 부산은 산동네가 특히나 많다. 다른 도시에도 마을버스가 있겠지만 부산과 마을버스는 각별한 연결점이 있다. 종점까지 가서 내리면 할머니들과 농담도 하고 그러면서 사진을 찍는다”라고 말했다.
사진도 글과 마찬가지로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는 일을 한다. 차이가 있다면 사진이 글보다 더 감성적으로 접근한다는 점이다. 사진가에 따라, 사진가의 표현방법에 따라 사진으로 이야기를 꾸미는 방식이 다르다. 남정문씨의 사진에 찍힌 ‘주변인들’은 사진을 보는 독자에게 직접 말을 거는 경우보다는 자기들끼리 이야길 주고받거나, 혹은 혼잣말을 하는 편이다. 그래서 남씨의 사진에서 우리는 이야기를 읽어내야 하는 것이다. 읽어낼 장치는 사진 속 거리배경에 잔뜩 들어있다. 몇 사진에선 렌즈를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다. 이에 대해 남씨는 “내가 아주 빨리 찍는 편인데 열쇠를 든 아저씨는 순간적으로 나와 나의 사진기를 보고 손을 흔들었다. 모르는 사람인데 인사를 하는 것 같았다. 만나게 되면 사진을 인화해서 주고 싶은데 만날 길이 없다. 그 다음날 같은 시간에 같은 노선을 탄다고 해도 그 사람이 그 자리에 나와있다는 보장이 없다. 버스는 움직이고 사람도 움직인다”고 말했다.
버스 안에서 찍는 그가 거리의 사람들에게 (촬영과 관련해) 허락을 받기가 힘들 것이다. 초상권을 어떻게 해결하는지 궁금했다. 그는 “버스가 움직이니 내가 찍은 사진에 들어있는 사람들에게 일일이 양해를 구할 방법이 사실상 없다. 사진에 사람이 들어있지만 한두 사람을 크게 부각시키는 것이 아니라 전반적인 거리의 분위기가 주제다. 그분들의 수치심을 자극할 만한 장면은 찍지 않는다. 또 이 사진들이 영리를 목적으로 한 것도 아니다. 혹시라도 전시장에서 자신이 찍힌 사진을 발견한 관객이 있다면 인화해서 드릴 준비를 해뒀다. 사진을 찍는 순간에 항의를 하는 분이 있을 땐 대화로 푼다. 나이 들면서 싸울 일이 없어졌다. 문화를 이해하는 손님도 많아졌다. 정 안되면 다음 정류장에서 내린다. 버스 또 온다. 아직까지 사진 찍다가 크게 소리가 오고 간 적이 없다.”라고 대답했다.
움직이는 버스 안에서 바깥을 내다보면 뭘 놓치는 경우도 왕왕 있을 것 같다. 남씨는 “노선은 정해져 있지만 마을버스가 가는 데로 따라갈 수밖에 없는 게 마을버스 사진의 묘미다. 언제 서고 언제 출발할지 내가 모르니 자주 놓친다. 처음엔 아이구 저거 찍었어야…. 한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감정이 없다. 뭐가 지나가는데 내가 놓치는 것이 보이면 ‘저건 내 몫이 아니다’ 라고 생각한다. 버스는 또 타면 된다”고 말했다. 간혹 버스 안에서도 사진을 찍는 남씨를 알아보는 마을버스 기사들이 제법 있다고 한다. 그래서 어떨 때는 남씨가 사진을 찍으려고 하면 살짝 차량 운행 속도를 늦춰주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어떤 기사는 남씨에게 먼저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하기도 해 그동안 10여 명에게 인화해서 선물했단다.
전시 준비 때문에 최근에 좀 (마을버스 타는 일이) 뜸했다는 남정문씨는 전시가 끝나는 데로 또 아무 버스나 타고 주변인들을 살피러 다닐 것이다. 137개의 마을버스 행선지는 남씨에게 늘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이야기를 제공하는 화수분인 셈이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