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델카, 집시 한국에 오다

사진마을 2016. 1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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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델카, 집시 연작 첫 국내 전시

말없이 흐르는 이야기의 향연

한미사진미술관, 내년 4월까지

 

jk08.jpg » 8번, 슬로바키아, 1967 ⓒ요세프 쿠델카/매그넘 포토스

 

집시 사진으로 널리 알려진 체코 출신 프랑스 사진가 요세프 쿠델카의 집시 사진전이 한국에서 처음으로 열린다. 12월 17일부터 4월 15일까지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지난 주말에 미술관을 찾아 2시간가량 쿠델카의 집시를 감상하고 왔다. 여러 생각이 많이 들었다.

 어떤 작가의 대표작이 무엇인지 규정하는 일은 왕왕 혼선을 일으킨다. 작가 자신과 독자의 선호도가 다른 경우엔 어느 쪽을 더 우선시할 것인가. 미국 대공황시절의 <이주노동자 엄마>사진으로 널리 알려진 도로시아 랭도 그 사진이 대표작으로 알려진 것에 대해 불만을 품고 있었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도 한두 장의 걸작으로 자신이 한정지어지는 것에 대해 경계하고 있었다. 요세프 쿠델카의 명성이 세계 사진계에 알려진 것은 그의 ‘집시’ 연작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거의 같은 시기인 1968년 체코 ‘프라하의 봄’ 당시 요세프 쿠델카는 소련군이 프라하에 쳐들어오는 일련의 상황을 사진으로 남겼고 그 또한 집시 사진 못지않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그러나 정작 쿠델카 본인에게 대표작을 고르라고 한다면 뭘 선택할 것인지에 대해선 의문스럽다. ‘프라하의 봄’은 조국 체코의 프라하가 침공당했으니 피가 끓어서 찍었을 것이고 ‘집시 연작’은 예술혼에 불타오른 청춘 쿠델카가 찍었으나 그 이후 쿠델카의 사진은 180도 달라진다. 한미미술관의 19층에서 쿠델카 사진을 다 보고 나면 가장 안쪽 방으로 들어가서 슬라이드 영상을 볼 필요가 있다. 아니 반드시 봐야한다. 집시 음악을 배경으로 파노라마 판형의 사진이 20분 정도 흘러나온다. 세로로 찍은 파노라마를 처음 보는 것이 아닌데도 낯설다. 무엇보다 낯선 것은 슬라이드 영상으로 나오는 쿠델카의 사진엔 사람이 배제되었다는 점이다. 버려진 땅, 탄광, 들판 같은 헛헛한 장면이 지겹도록 이어진다. 소련이 체코를 점령한 뒤 1970년에 영국으로 망명했고 매그넘 회원이 되었고 1987년엔 프랑스로 귀화한다. 어쨌든 우리가 기억하는 쿠델카의 사진은 1970년 그가 소련 치하의 체코를 떠나기 전에 대부분 형성된 것이고 그 후의 사진은 낯설기 그지없다.
 
 이번 한미사진미술관의 전시되는 111점은 모두 집시연작이니 안심하고 전시장을 찾아도 좋다. 집시연작을 몽땅 볼 수 있는 기회는 처음이다. 또 언제 올지 알 수 없다. 이번 111점은 쿠델카가 직접 선정하였으며 사진의 내용뿐만 아니라, 사진의 순서, 전시의 형태와 배열까지 모두 쿠델카가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미사진미술관의 전시장 동선을 파악하기 위해 2016년 초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열렸던 ‘매그넘 콘택트시트’ 전시 때 쿠델카가 소리 소문 없이 슬쩍 다녀갔다고 미술관 관계자가 전했다.
 
 첫 한국전시 개막식에 참가하기 위해 사진가 쿠델카 본인과 함께 지난 50년간 쿠델카의 작품을 전담했던 암실 전문가 보야 미트로빅, 쿠델카의 절친이자 전 뉴욕 크리스티 부대표였던 스튜어트 알렉산더가 함께 방한했었다. 이번 전시가 성사되는데 관계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먼저 보야 미트로빅은 1997년 암실에서 은퇴를 하게 되었고 이를 기념하여 쿠델카가 24점의 집시 사진을 보야에게 선물했다. 많은 사람에게 사진을 보여주고 싶었던 보야는 선물 받은 24점을 내놓았는데 쿠델카가 내건 조건이 “24점이 흩어지지 않고 한 곳에 소장되어야 한다.”라는 것이었기 때문에 쉽게 구매하는 사람이 없었던 모양이다. 그러다가 스튜어트 알렉산더가 이 소식을 한미 쪽에 전달했고 24점 소장이 성사가 된 것이다.
  한국의 여러 기관에서 쿠델카 사진전을 준비하려고 했으나 그동안 쿠델카는 소식이 닿질 않았다. 일정한 거주지 없이 집시처럼 떠돌아다닌 탓도 있지만 별 인연도 없는 한국의 전시가 쉽게 내키질 않았을 법도 하다. 한미 쪽에서 공을 많이 들인 셈이다. 2015년, 2016년 초에 한미미술관과 매그넘 포토 파리 사무소가 협력하여 <매그넘스 퍼스트>, <매그넘 콘택트 시트> 두 번의 전시를 한미사진미술관에서 개최하여 신뢰가 쌓인데다가 매그넘을 통해 쿠델카와 연락이 되어 한국에서의 사진전시 이야기가 오고 갈 무렵에 쿠델카 쪽에서 그 24점을 한미 쪽에서 소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고 급 호감이 생긴 것이다. 이번 111점은 1980년대 초에 60여 점으로 시작된 집시 연작의 꾸러미가 차츰 확장된 것이다. 1990년대에 80여 점으로 살을 붙였고 1998년에 111점이 완성됐다. 모든 인화는 보야 미트로빅이 했다. 111점의 집시 연작이 완성되고 난 다음 한국에 오기까지 딱 세 번의 전시가 있었다. 1999년에 프랑스 뤼르에서, 2012년 프랑스 아를에서, 그리고 같은 해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전시가 열렸었다. 

 

jk01.jpg » 1번, 모라비아, 1966 ⓒ요세프 쿠델카/매그넘 포토스

jk02.jpg » 2번, 슬로바키아, 1963 ⓒ요세프 쿠델카/매그넘 포토스

jk04.jpg » 4번, 슬로바키아, 1967 ⓒ요세프 쿠델카/매그넘 포토스

jk05.jpg » 5번, 모라비아, 1966 ⓒ요세프 쿠델카/매그넘 포토스

jk06.jpg » 6번, 슬로바키아, 1963 ⓒ요세프 쿠델카/매그넘 포토스jk07.jpg » 7번, 슬로바키아, 1967 ⓒ요세프 쿠델카/매그넘 포토스
   

 

뭐가 좋은가, 왜 좋은가, 진짜 좋은가?

좋다면 그 기준은 뭔가. 알고 하는 소린가?

모르면 어떠랴, 내게 이야기가 들리면 충분


 전시가 열리게 된 배경은 이 정도면 충분히 훌륭하고 재미있다. 쿠델카급이라면 더 복잡한 이야기가 있어도 좋을 법하다. 그러나 역시 중요한 것은 사진이다. 우리는 무엇을 보고 어떻게 감상하여야하는가? 쿠델카의 집시는 좋은가? 정말 좋은가? 좋다면 왜 좋은가? 기준은 어디에 있는가? 심하게 이야기하자면 쿠델카의 이름도 모르고 집시 사진도 본 적이 없는 사진 초보에게 이번 전시를 보여줬을 때 어떤 반응이 나올 것인가?
 
 지난 주말은 크리스마스 이브였기도 했으므로 사진을 볼 시간도 많았다. 2시간이나 본 이유는 앞서 말한 것처럼 생각이 많았기 때문이다. 파블로 피카소의 그림을 피카소의 이름도 모르고 그림을 본 적도 없는 사람에게 보여주면 어떤 반응이 나올 것인가?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의 음악을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들려주면 어떤 반응이 나와야 하는 것인가? 한국의 유명 사진가 작품을 외국의 일반인(그는 한국 사진가의 작품을 본 적이 없다)에게 보여줬을 때 어떤 반응이 나올 것인가?
 
 전시개막식을 위해 한국에 온 쿠델카는 “사진이란 현실 기록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하는 수단”이라고 말했다. 이걸 힌트로 삼아서 이야길 풀어가 보자.
 
 쿠델카든 브레송이든 케르테츠든 배병우든 성남훈이든 또는 홍길동이든 그의 이름을 따라 유명세가 형성이 되었다면 그 사람과 그 작품을 알고 있어야한다는 전제조건이 따른다. 거기에 하나 덧붙여 그 작업을 좋아해야 한다는 조건도 필수적이다. 그게 아니라면 쿠델카의 집시는 오불관언이 된다. 여기 이제 사진을 막 배우기 시작한 사람이 있어 쿠델카와 집시를 모르는 사람이 있다면 어떡할 것인가. 쿠델카 외에도 집시를 찍은 사진가들이 있으므로 집시에 대해 먼저 공부하는 것이 순서다. 집시는 유럽 전역과 미국에도 일부 퍼져있다고 한다. 유랑민족이고 하층민이었던 집시란 단어는 이제 집시문화로 전유되어 음악 등의 예술양식과 복식 스타일 등 생활양식으로 알려져 있다.
 
 집시란 단어를 몰라도 좋다는 각오로 다시 전시장의 사진들을 둘러보았다. 최소한 어떤 특이한 거주공간, 의복 등이 눈에 들어왔다. 얼굴의 생김새가 혼란스러웠다. 물론 한국인 중에서도 한국인이 아닌 것처럼 생긴 유형이 있다. 유난히 쿠델카가 찍은 체코와 루마니아 등지의 집시들 중에선 북중미 인디언들의 얼굴이 문득 떠오르곤 했다. 음악을 유난히 좋아하는 민족이란 점도 쉽게 들어왔다. 작품번호 8번에 해당하는 1968년 루마니아 사진의 말과 마부를 본다. 벽과 말의 몸뚱어리와 바닥과 마부의 얼굴과 옷에 모두 동일한 결이 보인다. 벽과 말이 하나로 보인다. 벽 속에 말을 그려놓은 듯한 착시현상이 생긴다. 벽과 바닥의 경계가 없어져 마치 스튜디오의 배경벽지를 보는듯하다. 왜 쿠델카가 인화전문가 보야 미트로빅에 그렇게 의존했는지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인화가 예술수준이다. 후보정에 대해선 디지털이든 필름이든 더이상 논란을 벌일 일이 없다. 있는 것을 지우고 없는 것을 덧붙이지만 않는다면 후보정 실력이 사진실력이다. 작품번호 1번에 해당하는 1966년 모리비아의 집시 축제 사진엔 최소 20여 명의 남녀가 등장한다 바이올린과 첼로 (콘트라베이스)를 든 남자와 더불어 뒤에 있는 여성들도 같은 맥락의 표정 짓고 있다. 이 표정은 몇 백 년 동안 떠돌아 살았다는 방황의 증거다. 대책 없고 미래도 없으면서 그래도 음악이 있으니 축제중이란 뜻이다. 다른 사진들에서도 망연자실하거나 (아이들이) 허세를 부리거나 소박하거나 공허하다.
 
  이런 느낌을 모두 종합하여 집시가 되었다. 사진 하나하나에 별도의 설명이 없어서 오히려 도움이 되었다. 만약 매 사진 곁에 설명이 있다면 그 설명을 읽는 순간 사진은 안드로메다로 가거나 유명세를 등에 업은 사진이 되어버릴 것이다. 그러므로 사전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그냥 사진만 보고도 뭘 느끼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사진은 이야기를 전하는 수단”이라고 쿠델카가 말했다니 그게 맞는 모양이다. 이야길 읽어낼 수 있었다. 다만 글로 이야기를 전달할 때와 이미지로 전달할 때가 다르니 그 차이에 대해선 알고 있어야 한다. 그 차이는 존 버거가 쓴 ‘말하기의 다른 방법’을 보고 공부하여야 한다.
 
 혹시 공부가 안 되어있다고 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래도 방법은 있다. 사진을 보면서 눈에 보이는 것을 기초로 읽어 들어가라. 예를 들어 작품번호 5번에 해당하는 사진을 보면 뭐가 보이는지 하나하나 받아적는다. 그리곤 사진에서 눈을 떼고 받아 적은 낱말을 이리저리 순서를 바꿔가면서 문장을 만들어본다. 그리고 그 어느 문장 중에 본인이 마음에 드는 것을 찾으면 그게 그 사진이 하는 이야기다.
 
  다시금 강조하지만 19층 전시장 맨 안쪽에 있는 슬라이드 상영관을 놓치지 말 것. 추상사진으로 건너간 쿠델카를 봐야 한다. 추상이 더 읽기 편하다. 읽기 편한 것은 읽을 것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영상을 읽을 때는 매 사진 단어를 받아적지 말고 보다가 느낌이 오는 몇 사진만 단어를 받아적도록.
 
 전시장이 그렇게 좁지 않은데 몇 군데 3단으로 쌓아올린 사진들이 있었다. 그중 입구 복도 가까운 곳의 3단 전시중 맨 위 사진은 조명이 비쳐서 사진을 똑바로 볼 수 없었다.
 
 한미사진미술관에 가게 되면 20층에도 들러서 소파가 놓여있는 휴게실 벽에 전시되어 있는 독일사진집jk0001.jpg » war without war상을 수상한 사진집들을 꼭 보고 올 것을 권한다. 이번엔 시간이 좀 있어서 지난번보다 자세히 살펴봤다. 로버트 보이트의 ‘새로운 나무들’(New Trees)과 모간 애쉬콤의 ‘리바이어던’(Leviathan)이 흥미롭다. 새로운 나무들은 나무가 아닌 나무 형태의 탑을 모았다. 베허 부부의 기법을 전유한 것인데 그보다는 더 자유롭다. 물론 여전히 딱딱하지만 틀에 박힌 유형학에서 변화를 시도했다. 리바이어던은 미국 오하이오주 루트랜드에 있는 특별한 스케이트공원인 ‘스케이토피아’(Skatopia)에 관한 기록이다. 무정부적인 기운이 물씬 풍기는 이 공간 자체가 독특하다. 다른 사진가의 작품을 공부한다는 것은 소재나 방식을 따라한다기보다는 영감을 얻는데 방점이 있다. 마인래드 쉐이드(Meinrad Schade)의 ‘War without War’는 제대로 공부할 필요가 있다. 구소련의 지배를 받았던 동구권 몇 국가들에 남아있는 전쟁과 공산주의의 상흔을 따라가고 있는데 그렇다고 형편없이 재미없는 유형학은 절대로 아니다. 2016년 독일에서 손꼽은 사진집이란 점, 그것도 다른 분야가 아니라 개념 예술분야라는 점을 생각하면 세계의 트렌드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잘 살펴볼 수 있다. 그 외에도 언급하지 않은 9권의 다른 사진집이 남아있다. 해가 바뀌면 다른 분야의 사진집으로 대체 전시한다고 하니 쿠델카도 한 번 더 볼 겸해서 또 가보려고 한다.  4월 15일까지. 02-418-1315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사진/한미사진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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