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사진가] 조현지/LG노텔 소프트웨어 개발자
피사체에 대한 애정 묻어있으면 더 없이 훌륭
현실왜곡 없이 살아있는 모습 담은 사진 좋아
생활사진가 열전을 시작하면서 대상을 선정하는 데 고심했다. 카메라 인구가 대규모로 늘어났고 사진을 잘 찍는 사람(혹은 잘 찍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한 둘이 아닐 것이다. 여기 소개되는 생활사진가들은 한국에서 사진을 가장 잘 찍는 사람들은 아니다. 개인 이력도 특별히 내세울 만한 게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의 사진에는 저마다 나름대로의 가치가 있다. 사진전시회를 열고 사진집을 출간해야만 사진가 노릇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좁고 넓은 것에 상관없이 각자의 생활공간(사진활동공간)에서 열심히 찍는다면 모두 볼 만하고 소중한 사진이 된다. 아프리카로, 티벳으로, 아마존으로 떠나야만 새로운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주변을 자신만의 시각으로 기록하는 우리 모두가 특별한 생활사진가들이다.
자기 주변을 자신만의 시각으로 기록하는 사람들 모두가 생활사진가
그럼에도 생활사진가 첫 인터뷰 대상을 정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사진실력과 상관없이 지명도가 높은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은 욕심도 났다. 연예인, 정치인, 사업가들 중에서도 취미 이상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물론 그들도 사진의 측면에서 보자면 생활사진가임에 분명하기 때문에 이 곳에 모시지 못할 이유가 없고 앞으로 점차 만나 볼 생각이다.
고심 끝에 첫 대상자로 말 그대로 무명의 생활사진가를 골랐다. 평소 알고 지내는 생활사진가들이 100여 명 있는데 그 중 전문직에 종사하는 30대의 미혼 남성 중 한 분을 선택했다. 그는 아주 평범한 생활사진가다. 그러나 우리 각자는 저마다 세상에서 유일한 존재라는 점에서 그는 특별한 생활사진가이기도 하다.
직장생활 4년째 문득 삶이 건조해져
-사진을 본격적으로 찍기 시작한 것은 언제입니까?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직장생활 4년째에 접어들던 2006년 문득 삶이 건조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회사 생활 외의 여가시간에 뭔가 할 수 있는 것을 찾게 되었고 평생을 함께 할 수 있는 취미가 하나쯤은 있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마침 친척 중에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오랫동안 사진을 찍는 분이 계신데 개인전을 여는 것을 보고 “이거다” 싶었습니다.
그 전까지는 카메라가 있어도 잘 들고 다니지 않는 편이었고 잘 찍지 못한다는 생각에 의기소침해 있었는데 인터넷에 올라오는 잘 찍은 사진들을 보면서 저도 욕심이 생기더군요. 그리고 대충 하는 것은 성미에 안맞으니까 “제대로 해보자" 고 생각했습니다.

도쿄 오다이바
-그래서 무엇을 했습니까?
=이런 저런 책도 보고 공부도 좀 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대부분 포토샵으로 그린 사진들이 많더군요. 혼자 고민하다가 사진강좌를 들으면서 많은 의문과 어려운 점들을 해소했습니다.
-목표가 있습니까?
=지금은 사진이 제 인생의 취미이자 가장 큰 화두입니다. 나중에 나이가 더 들고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만한 실력이 되면 개인전을 한번 해 보는 게 꿈입니다. 10년 정도 내공이 쌓이면 가능할까요? 최소한 20년 정도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외적인 것과 내적인 요소 서로 잘 어울려야
네 가지 질문에 대한 그의 답변은 취미활동으로 사진을 선택한 동년배 직장인들이라면 누구에게서나 나올 법한 내용들이다. 그래서 좀 더 직설적으로 물어봤다.
-사진은 무엇입니까?
=제가 그런 것을 안다고 생각합니까? 그래도 답한다면 '세상의 반영'이라고 생각합니다. 현대에는 사진을 그림처럼 그리고 합성하는 여러 방법들이 있고 그런 사진들이 넘쳐납니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사진은 기본적으로 세상을 그대로 담아내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있는 그대로 담아내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사진가는 누구나 세상을 자신만의 방식, 자신만의 의미로 담아낼 수 있습니다. 있는 그대로만 담아주는 카메라가 있더라도 누구나 똑같은 사진을 찍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이 사진의 매력이자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좋은 사진은 무엇입니까?
=좋은 사진은 여러가지 면에서 평가할 수 있겠지만 사진가의 생각을 또는 주제를 정확하게 전달하고 표현할 수 있는 사진이 아닐까 합니다. 그런 것들을 위해서는 외적으로 보이는 것(프레임의 구성, 노출, 색깔, 구도 등)과 내적인 요소(사진가의 주제의식, 의미 등)가 서로 잘 조화를 이루면서 어울리는 것이 아닐까요. 그러면서 그 피사체에 대한 사진가의 애정이 묻어있다면 더없이 훌륭한 사진이겠죠.
처음 돈 내고 본 사진전, 다이빙 선수 사진에 전율
쉽지 않은 질문에 막히는 법이 없이 척척 답이 나왔다. 고민을 많이 한 듯하다. 하지만 한편으론 ‘고민이 너무 많다’는 징표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에게 이런 말을 하진 않았다. 자신의 고민은 누가 대신 풀어줄 수 없다. 어떤 식으로든 본인이 해결해야 한다. 물론 이런 류의 고민도 없이 사진을 찍는 생활사진가도 여럿 봤다. 그들에게 “아무 생각없이 잘 찍으시는군요” 라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에 대한 그들의 답변은 “그냥 찍는 게 좋아요”다. 사진은 그런 것이다.
-좋은 출사 장소를 아십니까?
=사진을 찍을 때 장소를 특별히 가리지는 않습니다. 물론 어떤 의미 있는 곳을 정해서 간다면 조금 더 좋은 사진을 찍으려고 노력할 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장소는 빛이 잘 들고 사람들이 심심찮게 다니는 곳입니다. 좋은 빛은 항상 좋은 사진을 만들어 줍니다. 우리나라에는 그런 장소가 너무 많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창경궁에서 사진찍는 것을 좋아합니다. 다른 궁들과는 조금 다른 구조인데다가 너무 넓지도 않아서 편하게 생각합니다. 넓으면 다리가…….

지하철 일원역
-좋아하는 사진가는 누구입니까?
=살아있는 사진을 찍는 사진가들이 좋습니다. 그중에서 고른다면 세바스티앙 살가도, 엘리엇 어윗, 윌리 호니스, 국내 작가로는 성남훈 씨가 있네요. 이 분들을 좋아하는 이유는 간명합니다. 이분들의 사진은 현실을 왜곡하는 사진이 없습니다. 살아있는 인간의 모습을 담은 것입니다. 특히 살가도와 성남훈의 사진은 보는 사람들의 아프게 하는 면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모습들은 우리가 피하고만 살 수는 없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이에 반해 호니스와 어윗은 조금 다른 스타일입니다. 호니스는 파리에 대한 애정, 아들 뱅상에 대한 애정이 듬뿍 묻어나는 따뜻한 사진을 많이 남겼습니다. 어윗은 위트가 넘치는 재밌는 사진들을 많이 남겼구요. 두 사람의 사진은 보는 이로 하여금 미소를 짓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사진전시회나 사진집을 본 기억은?
=많이 보는 편이 아니라서……. 2006년 세종문화회관에서 했던 세계보도사진전이 기억에 남습니다. 제가 스스로 제 돈을 내고 처음으로 보러 갔던 사진전이었습니다. 그때의 사진들에 대한 감동은 잊을 수가 없네요. 특히 스포츠 부문 수상작이었던 다이빙 선수의 사진은 정말 전율이 넘쳤습니다. 대형 프린트의 위력도 이때 처음 느꼈습니다. 최근에 본 사진집으로는 성남훈의 '유민의 땅'이 기억에 남습니다. 사서 본 것은 아니고 서점에 앉아서 봤는데 좋은 사진이 많았습니다.
휴대용 포토프린터, ‘작업용’으로 딱이죠
-어떤 카메라를 쓰시지요?
=처음엔 부모님의 수동필름카메라(미놀타 SRT101)로 시작했고, 2004년에 처음 디지털 카메라(캐논 A80)를 장만했다. 그 뒤 카메라 욕심이 생기면서 캐논 350D→30D→5D까지 왔습니다.
-그 외에도 장비 구입의 유혹(실제 인터뷰에선 ‘뽐뿌’로 표현)을 받아본 적이 있나요?
=별로 장비 탓을 하지 않는 편입니다만 1년 전 쯤 휴대용 포토프린터를 구입해서 잘 쓰고 있습니다.
-호! 대단한 유혹입니다. 어떤 용도로?
=주로 작업용으로 썼습니다. (웃음) 만나서 사진을 찍게 되면 즉석에서 프린트해 주곤 합니다. 그동안 100여명 가까이 나눠줬는데 대부분 반응이 폭발적이었습니다. 디카라서 찍고 나면 이메일 주소를 받아 적는 것이 고작이었는데 그 자리에서 지갑에 쏙 들어가는 크기의 사진을 건네주니 신기하기도 하고 반기더군요. 여자들에게만 준 것은 아니고 아마 남자들에게 더 많이 준 것 같습니다. 여자 친구사진을 이렇게 프린트해서 모은 것이 작은 앨범으로 5권입니다. 일종의 사진일기라고 할 수 있는데 나중에 결혼해서 2세가 태어나면 벽을 사진으로 장식할 생각입니다.
한 아이와 한마디 얘기 없이 눈빛 나누며 찍은 기억 즐거워
-본인의 사진 중에 대표작이 있다면? 사진을 찍은 세월이 짧다거나 하는 이유로 없다고 하면 곤란합니다.
=2년전 여름 휴가 때 부산 이기대에 촬영차 간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걸어올라가기 힘든 곳이었는데 뭘 모르고 꾸역꾸역 올랐습니다. 힘들게 언덕을 넘어서 숨이 꼴까닥 넘어갈 때쯤 눈앞에 노을이 펼쳐졌는데 장관이었습니다. 나중에 보니 뭐 사진 자체가 대단하진 않았지만(웃음)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 이야기를 포털의 블로그에 올려두었는데 자고 일어나니 방문자수가 천 명을 훌쩍 넘더군요. 참 기분이 묘했습니다.
제대로 찍기 시작한 뒤의 사진 중에 하나를 꼭 고르라면 창경궁에서 찍은 아이 사진(첨부 사진 01.jpg)에 애착이 많이 갑니다. 잘 찍은 사진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제가 그 사진을 찍는 동안 그 아이와 한마디 얘기도 없이 많은 눈빛을 나누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문을 경계로 두고 서로 장난치면서 쳐다봤다가 사진 찍었다가 했던 그 순간이 즐거웠습니다. 피사체와 교감을 나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본인의 실력과 관계없이)사진을 처음 배우는 초등학생에게 무슨 말을 해줄까요?
= 한마디로 "즐겨라"입니다. 사람이 하는 모든 것들이 그렇겠지만 즐거우면 잘 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진 자체를 즐기다보면 더 알고 싶어지고 스스로 공부하게 될 것입니다.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랄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홈페이지: http://www.gourri.kr
선 이용 잘해…공간 나눈 솜씨도 뛰어나
[곽윤섭이 본 조현지 사진]
조현지씨는 10장의 사진을 보내왔다. 그의 사진은 인공적인 공간과 선을 많이 포함하고 있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생활사진가의 사진에 인공적인 공간이 많이 포함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특히 공간과 선이 잘 드러나게 찍는다는 의미다. 선을 잘 이용하는 것은 큰 자랑거리다.

나는 이 중에서 두 장을 골랐다. 3번은 인공적인 대상이 많이 포함된 공간에서 한 명의 사람을 찍었다. 인공적인 대상이란 것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도움을 주려는 목적으로 만든 것이 대부분이다. 형광등, 문, 벽의 그림, 설치미술 등이 모두 그렇다. 그런데 이 사진에서 사람은 인공의 대상과 분리 혹은 소외된 것 같다. 마치 사람이 없이 자기들끼리 존재하는 듯하다.
하늘의 별들(형광등)이 화살처럼 날아들어 고흐의 별밤에 부딪치자 갑자기 소용돌이 속에 빠져든다. 고흐의 그림과 벽이 갑자기 사선으로 구분되면서 색도 바뀌었다. 이야기와 신화 속에 나오는 사과 네 개가 떨어져나온 것 같다. 백설공주가 먹다 던지고, 월리엄 텔이 쏴 떨어뜨리고, 세 여신의 다툼 속에서 튕겨져 나온, 그리고 뉴튼 앞에 떨어져 개미들의 먹이가 된 사과들이 서로 키득거리면서 왼편의 남자를 바라보고 있다.

위 사진은 좋은 빛 아래서 공간을 잘 나눈 솜씨 있는 사진이다. 역시 한 꼬마 아이가 자못 진지하게 또한 지루함을 참지 못하고 기웃거리는 정경이 발랄하다.
10장에서 대체적으로 느낀 것은 이 사진가는 가정을 꾸리길 원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러 곳에서 외로움이 묻어나오고 있으며 그 그리움이 인간에 대한 동경으로 귀결되고 있다.
곽윤섭 기자 kwak1027@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