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와 사진의 60년 변천사를 한눈에

곽윤섭 2008. 09.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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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김기찬_서울 중림동 1988. 11_1988.JPG

김기찬  '서울 중림동' 1988


 

리얼리즘과 다양한 실험정신 한아름

 

우리가 바로 숨쉬고 있는 최근의 한국을 담은 사진만으로 13만 관객을 넘겼던 ‘매그넘코리아’의 여운이 아직 짙은 지금 또 하나의 대규모 사진전이 눈길을 끌고 있다. 8월15일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막을 올린 ‘한국현대사진60년’ 전시가 그것이다. 이곳엔 걸린 사진 380여점도 한국에서 찍었다(혹은 만들었다)는 면에선 ‘매그넘코리아’전과 다를 바 없으나 크게 두가지의 차이가 있다. 하나는 모든 사진의 작가가 한국사람이란 것이며 다른 하나는 멀리 1946년부터 가까이는 2008년까지 60여년에 걸친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로 눈을 돌려서 대규모 사진전의 사례를 찾아보면 1955년 뉴욕의 현대미술관(MOMA)에서 열렸던 ‘인간가족’전을 언급해야 한다. 사진가이기도 했던 에드워드 스타이켄이 당시 현대미술관의 사진부장으로 근무하면서 기획한 이 사진전은 애초 전세계에서 2백만장의 사진을 수집했고 최종적으로 엄선한 68개국 273명의 사진가의 작품 503점으로 역사적인 전시의 막을 올렸던 것이다. 전시가 전세계를 순회하는 동안 1천만명 가까운 관객이 구경했는데 규모면에서나 관객 수에서만 보더라도 전무후무한 문화적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인간가족이 인간의 생로병사를 테마로 삼았다면 ‘매그넘코리아’ 는 2007년 한해 동안의 한국 자체를 테마로 삼았다고 할 수 있다. 반면에 ‘한국현대사진60년’은 테마가 있다기보다는 한국사진의 최근 60년동안의 역사를 보여준다는 데 의미가 있다. 제2 전시실 첫머리에서 임석제의 작품 ‘하역’을 시작으로 자칫 길을 잃어버리기 쉬운 꼬불꼬불한 동선을 잘 따라가보면 사진이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뿌리를 모른 채 곁가지만 붙들고 있다보면 정체성을 놓치기 쉬운 법이므로 이 시대 이 땅에서 취미든 직업이든 사진을 하는  이들에겐 2시간 가량 발품을 파는 것만으로 한국의 사진변천사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 할 수 있다. 온고이지신(옛것도 알고 새것도 안다)이 멀리 있지 않다. 

 

한국 땅에 사진이 들어온 것은 훨씬 오래전의 일이다. 그러나 이번 전시는 광복 후의 시대적 공간을 기점으로 삼는다. 따라서 1948년 광복 후 사진계를 통틀어 첫 개인전시를 열었던 임석제의 사진들이 이번 전시의 첫 머리에 걸린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몇 년 뒤에 유진스미스가 찍은 미국의 제철소 노동자나 30년 가량 후에 살가도가 찍게 되는 광산이나 유전의 노동자에 비교해 봐도 전혀 손색이 없는 부두노동자 ‘하역’은 걸작이다. 임응식의 1950년 작 ‘피난길’과 정범태의 1957년작은 시대와 장소만 반 세기전일 뿐 스냅사진처럼 발랄하다. 굳이 리얼리즘이라 부르지 않아도 특징이 눈에 들어온다.

 

동선을 따라가면 반드시 만나게 되는 강상규의 1966년 작 ‘설목’을 보면 뛰어난 회화적 기법에 입을 다물 수가 없다.

 

1970~80년대의 방에선 한층 다양하고 화려해진다. “소가 넘어가는” 강운구의 1973년 작품들, “돼지가 넘어간” 김수군의 1970년 작품도 만나보자. 전민조, 김기찬의 서울 풍경, 한정식, 홍순태 등 원로들의 사진들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구본창, 배병우, 김아타 등 스타사진가들이 등장하는 1990~2008년 코너에선 다양한 실험정신과 더불어 회화와 조각등 여러가지 영역을 넘나드는 현대예술의 세계가 찬란하게 펼쳐져 눈을 즐겁게 하지만 바로 이해하기 어려운 사진도 많다.

 

모두 106명의 작가가 참여한 이번 전시는 10월 26일까지 열린다. 도슨트의 설명을 듣고 보면 이해의 폭이 훨씬 넓어지니 적극 활용하는 것이 좋겠다.  지난 8월 29일엔 박주석, 박평종씨의 강연회가 열렸고 9월 26일엔 박영택, 신수진씨의 강연회가 열릴 예정이다.

 

국립현대미술관 누리집 www.moca.go.kr

 

1948.jpg

임석제  '하역' 1948

 

12.김아타_온에어프로젝트 055-2_2004.JPG

김아타 '온에어' 2004

 

C2_이영숙의 집-추석.jpg

이선민 '이영숙의 집-추석' 2004


  

작품선정 균형감 아쉬워…생활사진가들 감각 배려 했어야

 

이번 전시는 한국의 사진역사를 제한적이나마 총정리한다는 점에선 의의가 크다. 하지만 전시의 후반부에 들어서면 작품선정에 있어 균형이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매그넘코리아’에 쏠린 관심에서 알 수 있듯 한국엔 지금 디지털카메라의 보급과 더불어 사진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고 사진을 찍고 공유하고 감상하는 활동이 다른 여타 문화활동과 비교해 월등히 활발한 시대를 맞았다. 이 들 중 일부가 크로스오버의 사진세계에 관심을 보일 순 있겠지만 대다수는 “있는 그대로를 찍고 바라보는” 사진의 속성에 동참하고 있다. 이런 현실을 생각한다면 전시장 후반부의 1990~2008년 코너의 작가들에서 보이는 실험적이고 경계를 넘나드는 사진의 비율이 지나치게 많다.

 

살롱주의를 거쳐 리얼리즘을 지나 작가주의를 건너 이제 “자의식과 감수성을 표현하는 주관적 언어로 변화”한다고 하더라도 앞시대의 조류가 모두 소멸되지 않았다는 점은 중요하다. 소멸되긴 커녕 예전보다 훨씬 많은 숫자의 생활사진가들이 생활주의 사진(거창하게 리얼리즘이라 부를 순 없다고 해도)과 뒹굴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럼에도 2008년 전시장에선 2008년 생활사진가들의 냄새는 거의 맡을 수 없다. 사진이 고가에 거래가 되고 미술계에서도 인정을 받기 시작한 흐름이 자칫 사상누각으로 쉬 변질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전시장을 찾을 대다수 생활사진가들이 자신들의 사진과 동떨어진 사진들에서 느낄 괴리감을 생각해야 한다.  
 

전시1.jpg

도슨트가 관객들을 위해 사진에 대해 해설을 하고 있다.

 

 

전시2.jpg

이번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제 1, 2 전시실과 중앙홀에서 열리고 있다. 넓직한 공간에서 사진을 볼 수 있다는 것은 큰 장점이다.  

 

전시3.jpg

국립현대미술관을 찾은 유치원 꼬마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과천에 있다. 4호선 대공원역에 내려서 미술관으로 가는 셔틀버스를 타야한다.


곽윤섭 한겨레 사진전문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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