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지가 없는 이미지는 공허해진다.
사진을 어떻게 찍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아무리 여러번 해도 충분치 않을 것 같습니다. 그만큼 어려운 문제란 뜻이기도 하지만 제대로 설명이 된 적이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사진을 가르치는 곳에서도 “멋진 사진”을 강조하면서 구체적인 방법은 제시하지 못해왔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앞 시간까지 설명드린 것은 고작 “눈으로 본 것과 찍히는 것의 차이”를 줄일 수 있는 방법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주된 피사체를 강조하면서 찍는 데 성공한 초보사진가들이 털어놓는 또 하나의 주요 고민이 있습니다. 그림이 되는 듯해서 찍었는데 막상 사진으로 보니 공허하다는 것입니다. 인물사진보다는 특히 풍경사진에서 이런 일이 자주 발생합니다.
사진을 찍긴 찍었는데 뭔가 부족한 기분이 든다고 합니다. 노출이나 초점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구성도 그런대로 단정하고 구도도 안정적인 것 같은데 이상하게 허전하답니다. 카메라를 들고 어딘가를 지나다가 찍고 싶은 것을 발견하고는 프레임구성을 충실히 하면서 관찰을 한 다음 셔터를 눌렀기 때문에 거기까지의 과정에는 문제가 없는 것 같은데 결과물을 보면서 마음에 와닿는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이런 현상은 찍은 사진에 ‘이미지’만 있고 ‘메시지’가 없을 때 생기는 것입니다. 이미지는 눈에 보이는 그대로의 형태이므로 찍는 행위만으로도 그대로 옮길 수 있습니다. 옮기는 과정에서 기술적인 면에 있어서도 최선을 다한 상태입니다. 그런데 그 이미지 속에 메시지를 담는 것은 간단치 않습니다. 메커니즘만으로 해결될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대목에 생활사진가들 대부분이 범하는 오류 중 대표적인 것이 들어있습니다.
안면도의 한 해변에서 찍었다. 하늘과 바다의 비율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허전하기 짝이 없다. 바다, 하늘, 모래밭, 언덕 등 이미지는 있는데 메시지로 승화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진을 오랫동안 찍어온 나도 아무 생각없이 셔터를 누르는 경우가 왕왕 있다. 그럴 땐 예외없이 허전한 사진이 찍힌다.
황량한 한강시민공원에서 세 남자가 길을 가고 있다. 이 길로 자동차가 지나간 흔적이 눈 위로 살짝 남아 있다. 이 사진도 공허하게 보일 수 있었지만 곡선이 드러나 있고 시선을 끌어주는 장치로도 작용하고 있어 허전함을 피하게 되었다.
사진에는 여러 정보가 들어있습니다. 가을의 산을 찍은 풍경사진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그 사진 속에는 나무, 산, 바위, 산길, 등산객 등이 들어있습니다. 이 요소들은 각각 정보를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정보는 각각 어떤 식이든 상징으로 기능합니다. 바로 이 사진 속의 상징에서 유추되는 생각이 사진을 보는 사람에게 메시지로 전달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상징에서 유추되는 생각이란 것은 개인의 성장환경, 경험, 지식, 학습방법 등에 따라 달라집니다. 문화적, 사회적 환경이 다르면 같은 상징을 보고도 다른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당연할 것입니다.
예컨대 어떤 상징들을 보면서 “저 나무는 어쩐지 쓸쓸해 보인다”, “저 바위는 우리 마을에 있던 것과 닮았다”,“저렇게 이어지는 가로수를 보고 있으면 꼭 터널속을 보는 기분이 든다” 등의 메시지를 떠올리는 것입니다.
다른 식으로 이야기하자면 이런 것입니다. 사진속에선 점과 선과 면이 있고 각 요소의 혼합에 의해 이루어진 형태가 들어있습니다. 사진을 보는 사람들은 이런 형태를 보면서 각자의 기억속에 들어있던 경험, 지식에 따라 저마다 다른 상징이나 추억을 떠올릴 수가 있게 됩니다. 그 형태가 아주 보편적인 것이라면 여러사람들이 동시에 같은 상징을 떠올릴 수도 있습니다. 금강산의 만물상에 있는 여러 형태의 바위들을 보면 많은 사람이 공통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형상이 있고 그것이 바위의 이름이 된 것이 많습니다. 사람마다 사진을 보고 생각하는 메시지의 내용은 같을 수도 있으며 다를 수도 있습니다. 같은 형상을 동시에 보면서 뱀을 떠올리는 사람이 있고 용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림이 되는 듯해서 찍은 사진 속에 들어있는 정보들이 유기적으로 상징을 구성해내지 못한다면 사진을 보는 사람들이 어떤 특정한 메시지를 발견하기가 어렵게 됩니다. 그래서 메커니즘 측면에선 실수 없이 사진을 찍었다고 해도 현장 그대로의 이미지만 남고 메시지는 없는 사진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거듭 말하지만 이 관점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겐 공허해 보이는 사진이 또 다른 사람에겐 특별한 상징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사진속에 든 정보와 상징은 사회적 통념으로 판단되는 것이 많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진을 찍기위해 대상을 관찰할 때 그 속에 담긴 정보를 읽어내고 상징이 될 만한 것을 끌어내십시오. 단순한 점과 선과 면이었던 것이 어느 순간에 형태를 이루면서 내용이 있는 사진으로 변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시나브로 사진에 의미가 붙기 시작합니다.
금강산 만물상-봉우리들의 이름은 사람들의 마음에 떠오른 메시지에서 유래한 것이 많다.
서울 남산에 단풍이 들었다. 전체 사진이 모두 단풍으로 덮이는 것보다는 도로와 가로등의 나열을 부분이나마 보여주어 어떤 식이든 메시지를 발견하려고 시도했다.
글 사진 곽윤섭 한겨레 사진전문기자 kwak1027@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