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철 개인전 <눈 속에서 참 진을 찾는다>가 7월 5일부터 8월 31일까지 ‘라이카 스토어 강남’에서 열린다. 관람 시간은 10시부터 18:30까지(월~일) 문의 02-1661-0405. ‘라이카 스토어 강남’은 지하철 9호선 언주역 1번 출구에서 1분 거리에 있다.
이번 전시는 주로 몽골의 국립공원인 테렐지의 사진들이며 눈이 내린 풍경이 많다. 보도자료에 딸려온 사진을 열어서 보다가 문득 이규철 작가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졌다. 사진이 소리치고 있었다. 전화로 길지 않게 몇 가지 이야기를 들었다.
-왜 이곳으로 가게 되었는가?
“2011년에 한 달 정도 몽골 여행을 했다. 그 후 힘들 때면 다시 그곳을 찾곤 한다. 그래봐야 자주 갈 수 있는 처지가 못 되니 올해 2월까지 3차례 다녀왔다. 처음 갔을 때는 스튜디오 시작한지 10년 쯤 되었을 때다. 같이 여행을 하던 일행 중 한 명이 고비사막에서 실종이 되어 버렸다. 사진을 찍으러 갔었는데 갑자기 멘붕이 와서 한 장도 못 찍고 그 일행을 찾으려고 발버둥 쳤다. 경찰에 연락하고 군인들에게도 알리고 동네 사람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청했다. 현지의 방송에도 실종 소식이 전해졌다. 무슨 드라마를 찍는 것 같았다. 나중에 보니 총 50여명이 모여서 수색을 시작했다. 3일 만에 돌아오긴 했는데……. 그 친구의 이야길 들어보니 기가 찼다. ‘산책을 갔다가 길을 놓쳤다. 하루 반을 걸어가다가 오토바이 바퀴 자국 하나를 발견하여 그걸 쫓아갔다. 집이 하나 나타났다. 그 집 주인이 라디오 방송에서 실종 한국인 소식을 듣고 있었는데 자기 눈앞에 그 사람이 나타났으니 좀 놀랐겠지. 그 주인이 나를 데리고 이곳으로 왔다.’ 따로 길이 없으니 길을 잃어버릴 상황도 아니었고 또 한 번 실종이 되면 주변에 인가가 없으니 굶어죽기 딱 좋은데 정말 운이 좋았다. 어쨌든 고비사막 다음 코스는 홉스굴로 갈 예정이었으나 큰일을 겪고 나서 갑자기 진이 빠졌다. 그러다 테렐지로 갔다.”
-몽골에 눈이 자주 오는가?
“그 때가 5월 5일이었다. 몽골이라해도 5월에 눈이 오는 것은 흔하지 않다. 아침에 게르 문을 열고 나오는데 대지에 눈이 덮여있었다. 그 눈을 보면서 몇 가지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상업 스튜디오를 운영한다는 것이 돈과 바꾸는 사진을 찍는 것을 뜻한다. 그런 강박에서 벗어나면서 처음 사진을 시작했을 때의 열정이 떠올랐다. 눈앞에 보이는 사진에서 그 뒷면의 의미를 찾아가는 거다.”
-포스터 사진이 인상적인데 누구인가?
“주변에서 사진 속 인물을 보고 나를 닮았다고 하더라. ‘이규철 작가처럼 생겼다’라고 한다. 내가 아니고 테렐지의 게르 주인장이다. 말과 소와 낙타를 기르면서 게르를 5개 운영한다. 우리 게르에 커플이 하나 있었는데 경치 좋은 곳에 데려다 주겠다고 주인장이 길을 안내했다. 그러다 그 커플이 건네준 카메라로 커플의 기념사진을 찍다가 나도 찍는 순간이다. 나도 저 모양으로 카메라를 들었다. 그리고 서로가 서로의 카메라에 찍혔다. 나도 저 카메라에 들었으니 저 인물이 나로 보이는 모양이다.”
-전통 복장의 여성이 있는 사진이 하나 있더라?
“아. 그게 뭐나면, 몽골 현지인 커플이 독수리 축제를 보러 왔었다. 남자는 축제에 빠져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소리 지르면서 다녔는데 그 여성은 다소곳하게 서서 그 남자를 지켜보고 있었다. 한참을. 그리고 남자가 돌아오자 다시 걸음을 떼더라. 묘한 느낌이었다.”
-모래 언덕 너머로 작게 사람이 하나 보이는 사진이 있다.
“그게 바로 실종된 그 친구다. 이 사진을 찍고 이틀 있다가 길을 잃게 된다.”
-그래서 그런지 길을 잃을 것처럼 보인다. 지팡이를 짚고 가는 모자 쓴 남자의 사진도 있네.
“그거 지팡이가 아니라 화살이다. 그 사람은 지금 궁수가 쏜 화살을 주우러 다니는 것이다. 화살을 발견하면 주워서 궁수에게 돌려다 준다. 화살은 시간이 아닌가? 사진을 찍는 나도 시간을 줍는다. 그런데 어떻게 돌려줘야하는지 그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전시 제목은?
“설리구순(雪裏求筍)에서 따왔다”
전화를 끊었다. 작가노트를 전문 소개한다.
<눈 속에서 참 진을 찾는다.>
雪 裏 求 真
설 리 구 진
불면의 밤이다.
지난 밤 또 지난 시간들을 들추어본다.
무엇이 어떠하여 여기에 있나?
무엇을 찾고 있나?
송곳의 날들은 심장을 비켜가
고통으로 내몬다.
아프고 아프다. 아리고 아리다.
2011년,
나는 몽골로 떠났다.
우여곡절의 사건들로 테렐지에 숨어들었다.
적막의 테렐지, 고요의 테렐지, 별들의 테렐지
몽골리아는 거의 그러하다.
오월의 이른 새벽
게르 문을 열어 내다본 눈 덮인 테렐지.
어제 보았던 그곳이 아니었다.
비현실의 이불로 포근히 포근히 잠자고 있었다.
살금살금 다가가
말의 지친 걸음,
포르르 날아오르는 새들의 지저귐,
어미를 찾는 어린 양의 간헐적 울음,
나무와 나무 사이에 머무른 낙타들,
사람이 그 풍경으로 살며 스쳐가는 극명함(!)을 훔친다.
훔치려 하지 않았건만 훔칠 수밖에 없었다.
나는 풍경 속에 있지 않았기에
길 떠나와 머물다 가는 지친 사진가이다.
오월의 눈은 오래 머무르지 않았다.
풍경은 이내 겨울에서 봄으로 돌아와
풍경이 있고 풍경이 없음에 대한
새로운 질문을 남기고 갔다.
아직도
직업 사진가로 하루하루를 버틴다.
나는 오월의 눈을 찾아
가을을 헤매고
겨울도 헤맨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사진/작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