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축의 아버지, 르 코르뷔지에 전시
그가 남긴 그림, 건축모형, 조각으로 구성
피카소, 아인슈타인도 감탄한 재능과 혁신
» 르 코르뷔지에 연대표
» 전시장 입구
‘현대건축의 아버지 르 코르뷔지에전’이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 1층에서 열리고 있다. 3월 26일까지. 이 전시의 부제는 ‘4평의 기적’이다. 지난해 이 전시가 열린다는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르네 뷔리와 유섭 카쉬가 찍었던 르 코르뷔지에의 얼굴이었다. 곧장 이런 생각이 이어졌다.
“화가나 조각가의 전시, 그러니까 빈센트 반 고흐나 오귀스트 로댕의 전시를 보러 간다면 원본 회화 작품이나 조각 작품을 보러 간다는 것을 의미하겠지. 그런데 건축가의 전시라면 뭘 보러 가는 건가? 물론 그 중에서도 조각은 원작이 여러 개가 존재하니 딱 하나만 있는 회화 원작품과는 의미가 다르겠지….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은 원작이 9개라든가?”
르 코르뷔지에는 건축가였는데 그의 전시를 위해 건축물 자체를 들고 왔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것은 마치 가우디를 보기 위해선 스페인으로 갈 수밖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르 코르뷔지에는 활동의 폭이 넓어서 태어난 스위스나 옮겨 살았던 프랑스 외에 세계 각국에서 건축물을 지은 덕분에 아르헨티나, 벨기에, 인도, 독일, 일본에서도 그가 설계한 작품인 건축물을 볼 수 있다. 스위스의 끌라떼빌딩, 독일의 바이센호프 공동주택, 벨기에의 귀에뜨 아틀리에, 아르헨티나의 퀴뤼세 박사의 집, 일본의 도쿄국립서양박물관, 인도의 찬디가르 국회의사당 단지 등이 그것이다. 당연히 프랑스에 가장 많은 건축물이 남아있다. 롱상성당, 유니테 다비타시옹, 그리고 죽기 직전까지 그가 거주했던 통나무집(카바농) 등이 프랑스에 있다. 지금 열거한 7개국에 흩어져있는 17개의 건축물이 지난해 7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도 큰 뉴스였다. 르 코르뷔지에는 한국에 온 적이 없고 집을 지은 적도 없다. 그의 전시를 어떻게 열지? » 피카소와 르 코르뷔지에(오른쪽)
위대한 어떤 인물을 기리기 위해 열린, 그의 이름을 건 전시를 하려면 어떻게 하는지 알기 위해 지난주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을 방문했다. 전시는 모두 8개의 테마로 구성되어 있다.
1부: ‘르 코르뷔지에는 누구인가?’엔 입구에 그의 연대표가 붙어있다. 그렇다. 인물을 알기 위해선 연대기를 따라 그가 언제 태어났고 언제 어떤 일을 했는지 목록을 보는 것이 기초작업일 것이다. 1887년에 스위스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났고 1905년에 첫 번째 주택을 지었다. 1917년에 파리로 이주해서 건축사무실을 차렸다. 1947년에 모듈러 이론을 발표했다. 아인슈타인이 극찬했다고 한다. 1955년 롱샹성당을 준공했다. 1965년 세상을 떠났다.
이런 연대표와 함께 르 코르뷔지에의 얼굴 사진이 몇 개 붙어있다. 그의 얼굴을 몰랐던 사람들도 둥근 안경을 끼고 나비넥타이를 한 사진을 통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사진이 없었다면 어떻게 인물을 전시할까? 사진이 발명되지 않았다면 한 인물을 후세의 사람들에게 소개한다는 것은 대단히 제한적이었을 것이다. 르 코르뷔지에가 만든 건축물 사진이 몇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다. 사진이 없었다면 우리는 위대한 건축가가 남긴 자취를 확인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2부: ‘여행을 통해 건축과 인간에 눈을 뜨다’는 그가 여행을 하면서 많은 영감을 받았음을 보여주는 코너다. 보헤미아, 세르비아, 루마니아, 터키를 두루 여행했다. 드레스덴에서 이스탄불로, 아테네에서 폼페이로 옮겨가면서 동방여행일기를 썼다. 글과 그림으로 여행을 기록했다. 어렸을 때 화가를 꿈꾸었던 이력이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여행지에서 마주친 고대 유적들을 드로잉과 수채화 스케치로 꼼꼼하게 남겼다. 20세기 초반이면 벌써 카메라가 대중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무렵이니 코르뷔지에도 사진을 찍었을 것이다. 여행지의 스케치와 함께 그가 직접 사진으로 찍은 스케치도 같이 전시장 벽에 걸려있다. 이 코너에 걸린 작품들은 대부분 세계최초 공개라고 한다.
3부: ‘세상을 품다. 넓고 큰 세상으로’에 들어서면 이제 르 코르뷔지에는 본격적인 화가다. 건축가로 널리 알려졌지만 그는 재능이 뛰어난 화가였고 조각가였고 본인 스스로 화가라는 정체성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야수파, 입체파의 느낌이 강하게 나는 정물, 인물화가 많이 보인다. 동시에 본격적인 건축가로서의 활동이 펼쳐지기 시작한다.
“건축은 르 코르뷔지에 이전과 르 코르뷔지에 이후로 나뉜다”
“집은 살기 위한 기계다”
» 롱상성당
» 르 코르뷔지에가 직접 자연에서 수집했던 컬렉션. 조개껍질, 솔방울, 동물뼈 등. 이중 오른쪽 앞에 보이는 게등껍질은 위 사진에 보이는 롱상성당 건축시 지붕의 형태에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집을 뜻하는 Domus와 Innovation(혁신)을 합한 합성어 돔이노(Dom-ino)이론을 주창한다. 1차세계대전의 결과로 유럽 전체에 재건축이 대대적으로 필요했다. 르 코르뷔지에는 새로운 건축방식을 도입하려했다. 그 전까지 벽돌과 대리석으로 지었던 조적식 건물에서 벗어나 얇은 판과 그것을 지탱하는 기둥, 그리고 계단으로 구성된 실용적인 양식이돔이노이론의 기본이다.
4부: ‘화가 르 코르뷔지에와 순수주의. 현대건축 교과서의 기틀을 만들다.’에서는 현대건축의 5요소가 모두 적용된 사보아 저택의 개념을 볼 수 있다. 1층엔 기둥만 남기고 비우는 필로티, 옥상의 테라스, 수평창, 자유로운 파사드, 자유로운 평면을 구사하는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에 대한 발상은 전적으로 회화에서 나왔다. » 스티브 잡스가 프리젠테이션 때마다 지니고 다녔던 유일한 가구가 바로 르 코르뷔지에가 디자인한 <그랑 콩포르>LC3모델 의자다.
이제 의문이 풀리기 시작한다. 어떤 인물의 이름을 건 전시, 인물 자체에 대한 전시는 어떻게 할 것인가? 화가로서의 이력은 그가 남긴 작품을 보면 되는데, 건축가로서의 이력은 그가 남긴 건물을 직접 보는 수 밖에 없을 것 같았으나 그게 아니었다. 세계여행, 특히 동방여행을 통해 얻은 영감을 스케치해두었다가 건축 설계에 사용했으니 우리가 봐야할 것은 건축물 자체가 아니라 아이디어다. 그러므로 그림, 건축모형, 설계도면, 건축물에 대한 동영상 등 온갖 시각적인 수단으로 르 코르뷔지에를 재구성한 것이 바로 이번 전시다. 건축가라고 해서 그가 기초공사부터 마무리까지 직접 다 하는 것이 아니다. 영화감독이 영화를 다 만들지 못하는 것과 같이 건축가가 콘크리트 타설을 하고 골조를 세우고 전기배선을 하고 외벽의 페인트칠까지 하는 것이 아니다. 막상 거대한 건물을 우리가 직접 방문했다고 하면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마감재료가 아닌가. 그보다는 선을 봐야 하고 도형을 봐야 하고 면을 봐야 하고 공간을 봐야 하는 것이니 굳이 건축물 자체를 방문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이 전시를 통해 종합적으로 르 코르뷔지에를 떠올릴 수 있다면 대성공이라 할 것이다.
» 르 코르뷔지에가 그린 정물화, 1965년
» 책 읽는 누드여성, 1932, 르 코르뷔지에
» 르 코르뷔지에가 말년을 보낸 4평짜리 오두막을 실물 크기로 재현해 전시장에 설치해두었다. 창문에 지중해가 보인다.
» 동방여행 당시 르 코르뷔지에가 찍은 파르테논 신전 사진과 스케치한 파르테논 기둥.
전시장 곳곳에 그가 남긴 어록들이 포진해있다. 어떤 사람의 인생을 구성한다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생각을 거듭하면서 어느덧 ‘5부: 건축으로 세상을 혁명하다’로 건너갔다. 세계최초의 대규모 현대식 아파트인 유니테 다비타시옹을 창안해냈고 이후 전세계 도시 모습이 이 형태의 아파트로 퍼져나가기 바뀌기 시작했다. 좁은 공간에서 사람이 움직이기에 불편함이 없는 최적의 황금수치인 ‘모듈러’형식을 만들어냈다. 아파트 한 층의 높이뿐 아니라 사람의 거주공간에서 등장하는 모든 가구의 높낮이도 이 비율에 맞게끔 정립해냈고 지금도 이 비율은 우리 주변의 책상과 의자에서 찾아볼 수 있다.
‘7부: 건축가는 생각을 남기는 사람-전해지는 것은 사유뿐이다’에 이르러 르 코르뷔지에라는 한 인간에 대한 큰 틀의 그림이 거의 완성단계에 도달했고 또한 이번 전시에 대한 의문도 거의 풀렸다. 어디 건축가뿐이겠는가? 사람이 뭘 남긴다고 그게 몇 천년이나 갈 것인가. 생각을 남기고 아이디어를 남기고 혁신을 남길 뿐이다. 마지막 ‘8부: 4평의 기적’은 ‘유종의 미’라는 표현에 걸맞는 공간이다. 지중해가 바라보이는 프랑스 남부 니스에 손수 만든 4평짜리 통나무 오두막을 실물 크기로 재현해두었다. 문을 열고 들어갈 수도 있다. 전시장에 가게 되면 창문에 지중해가 비치는 것을 반드시 보고 오기 바란다. 그는 이렇게 좁은데서 살다가 생을 마감했다. 모든 사람은 온 곳으로 돌아간다.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않는다. 100평짜리 아파트에 살다가도, 거리의 움막에서 살다가도 모두 같은 곳으로 돌아간다. 돌아가기에 앞서서 미리 이런 작은 곳에서 살았던 것이 아닌가 싶다. 한편으로 4평 안에 있을 것은 다 있었다. 전시가 끝났다.
본 전시장을 나와 아트숍을 지나면 특별전시장에서 이번 전시를 위해 일본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보내온 100개의 건축모형을 볼 수 있다. 안도와 그의 제자들이 직접 만든 이 모형은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물 모형이다.
특별한 경험이었다. 회화나 사진전시는 다녀봤지만 건축가의 전시는 처음이다. 건축가가 남긴 유산의 실체가 무엇이며 그 실체는 눈에 보이는 것인가, 보이지 않는 것인가? 한 사람의 인생은 무엇으로 남는가. 그가 쓰던 이젤과 안경이 그인가. 그가 남긴 명언들이 그인가. 그가 남긴(찍은, 찍힌) 사진이 그인가. 이런 고민들이 어느정도 해소가 된 입체적 전시였다. 지금 나는 글과 사진으로 어떤 전시를 소개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직접 가서 르 코르뷔지에를 만나볼 것을 권한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르 코르뷔지에 작품 코바나컨텐츠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