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과 글은 각각 독자적
그 둘이 결합하면 확장"
그의 이름 뒤에 붙는 꼬리표는 많다
예술평론가, 소설가, 화가, 시인
유독 사진 등 시각문화 관심 커
수십권 책 중 사진 주제 10권 넘어
그림이 체계에 바탕 둔 문법이 있다면
사진은 언어가 없다고 했다
있는 그대로 가져오기 때문에
그림이 번역이라면 사진은 인용
그래서 사진은 거짓말할 수 없지만
모호성 때문에 왜곡에 이용될 수도
마르크스 인본주의자로
피카소 등 예술권력과 심미주의 비판
이주민 노동자 열쇳말로
세계화 위기 일찌기 경고도
» 20년 친구였던 틸다 스윈턴이 직접 감독하고 출연한 2016년 다큐멘터리 영화 '존 버저의 사계'의 한 장면. 존 버저(왼쪽)와 틸다. EIDF 사무국 제공
지난 2일 세상을 뜬 영국의 예술평론가, 소설가, 화가, 시인이었던 존 버저를 추모하는 행사들이 국내에서 속속 이어지고 있다. 예술평론 중에서도 특히 사진을 포함한 시각문화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였고 그의 방대한 저서 중에서 사진과 협업했거나 사진을 주제로 삼은 책이 10권이 넘을 정도로 사진에 대해 천착했다. 사진갤러리 류가헌에선 어제(10일)부터 특별 북페어전시 ‘그의 책 속으로 돌아간 존 버저’가 열리고 있다. 22일까지.
이 행사에선 국내에 발간된 존 버저의 책 24종이 모두 전시될 예정인데 <존 버저의 글로 쓴 사진>(원제 Photocopies), <본다는 것의 의미>, 제프 다이어가 엮은 <사진의 이해>, 사진이 무엇이며 우리 사회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어떻게 사진을 봐야 하는지를 집대성한 <말하기의 다른 방법>, 산문집인 <그리고 사진처럼 덧없는 우리들의 얼굴, 내 가슴> 등이 포함되어있다. 존 버저의 50년 친구이자 <제7의 인간>, <말하기의 다른 방법> 등 존 버저가 쓴 책의 공저자인 장 모르가 찍은 존 버저의 초상사진도 전시된다. 행사 기간 중에 존 버저 책을 여럿 번역했던 EBS 김현우 피디와 노순택 사진가가 함께하는 북토크도 준비되어 있다.
한국에서 존 버저의 책을 가장 많이 펴낸 출판사 열화당은 오는 3월 9일부터 4월 14일까지 온그라운드 갤러리에서 ‘존 버저의 스케치북, 그리고 그의 초상’(가제)를 추모전 형태로 열 계획이다. 이 전시에는 존 버저가 직접 그린 드로잉 원화 40여 점과 장 모르가 오십 년 동안 찍은 존 버저의 초상사진, 그리고 한국에서 출판된 그의 책들이 전시된다. 전시에 맞춰 <우리가 아는 그 모든 언어>, <존 버거의 초상-장 모르가 찍은 오십 년 우정의 풍경> 등 신작과 사진집, 그리고 드로잉집이 함께 출간될 예정이다.
평생 대학교육을 받지 않은 존 버저는 헨리 무어가 가르치는 미술학교에서 공부하여 화가로서 이력을 시작했고 대학에서 드로잉 강의를 했다. 1952년에 영국의 진보적 주간지 <뉴 스테이츠맨>에 예술비평에 관한 글을 기고하면서 본격적인 문필가, 문화비평가의 길로 들어섰다. 평생 마르크스주의 인본주의자로 살았던 존 버저는 <뉴 스테이츠맨>에 기고한 글들에서 예술계의 거의 모든 사람들을 적대시하면서 논쟁을 불러일으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필치는 아름다울 정도로 절제되었고 정확했으며 도덕적이었다.
당시 추상표현주의의 거장이었던 잭슨 폴락을 “스스로가 속해있는 문화의 데카당스 너머를 보거나 생각할 능력이 결여되어있는 재능 있는 실패자”로 평하기도 했다. 존 버저의 필치는 거침이 없었다.
1965년엔 당시 아직 세상에 살아있던 예술계의 권력인 화가 피카소에 대한 책 <피카소의 성공과 실패>를 출판했다. 세기적 거장의 후기 작업을 두고 존 버저는 냉정하게 비판했다. “1943년 이후로 피카소는 시들시들해졌다. 과거의 모든 위대한 화가들의 선례와는 대조적으로 그는 더 이상 성숙하지 못했다. 그의 실패는 그가 적절한 주제를 찾을 능력이 결여되어있기 때문이었다”라고 썼다.
거장들 누드화 '남성 성욕'이라 비판
존 버저가 대중적으로도 인기를 끌게 된 결정적 계기는 한국에선 <다른 방식으로 보기>란 이름으로 책이 나와있는 <웨이스 오브 시잉>(Ways of Seeing)이라고 말하는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존 버저와 프로듀서인 마이크 딥이 만든 ‘웨이스 오브 시잉’은 1972년에 BBC에서 30분짜리 4부작으로 방영된 미니시리즈로 전통적인 서양의 심미주의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가했다. 사진의 탄생에 주목하여 “사진에선 전시가치가 제의가치를 전면적으로 밀어내기 시작한다. 사진의 발명으로 인해 예술의 성격 전체가 바뀐 것이 아닌가” 하는 물음을 제기한 발터 베냐민의 저작인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서 아이디어를 끌어온 ‘ 웨이스 오브 시잉’의 1부의 첫 장면에서 존 버저는 보티첼리의 <비너스와 마르스>작품의 복제품에서 일부를 커터칼로 도려내며 도발적으로 시작한다. 복제(특히 사진을 통한)한 옛 거장의 회화작품의 맥락은 그 그림이 그려진 시기에 존재했던 것과 완전히 단절되어있다고 주장한다. 2부에서 버저는 옛 회화의 거장들 중 일부만이 여성을 있는 그대로 묘사했을 뿐 나머지는 남성들의 성욕이나 이상적인 미의 기준에 부합하는 그림이라고 역설했다. 옛 거장들의 누드에 들어있는 성차별주의를 정면으로 파고든 것이다. 이 프로그램의 내용을 같은 이름의 책으로 만들었다. 이 책은 지금까지 100만 권 넘게 팔렸다. 한 예술사가는 이 책을 <마오쩌둥 어록>(Little Red Book)에 견줄만하다고 했다.
대중적인 인기만 끌게 된 것은 아니었다. 같은 해인 1972년에 존 버저는 소설 <G>로 부커상을 수상했고 그 후 종종 노벨문학상 후보로 오르기도 했다. 부커상 시상식장에서 버저는 부커상의 후원사를 향해 ‘카리브해 연안의 노동자들을 착취했다’고 비난했으며 상금의 절반을 급진적 흑인운동단체인 ‘블랙팬서’에 공개적으로 기부했다.
부커상 상금의 나머지 절반은 그전부터 구상해온 책 저술에 투자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바로 1975년에 발표한 <제7의 인간>이다. 이 책은 서유럽과 북유럽에 거주하고 있는 이민노동자들을 르포르타주 형식으로 취재하여 썼는데 세계화와 노동의 문제를 다뤘다는 점에서 혜안이 놀랍다. 책 서문에서 “이민노동자의 경험에 대한 개요를 설명하고 또한 그 개요와 이민노동자를 물리적으로 역사적으로 둘러싸고 있는 상황과 연결시켜보는 것은 이 순간 전 세계의 정치적 현실을 보다 확실하게 파악하는 길이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것은 유럽인들이지만 사실은 전지구적 상황이다. 이 책의 주제는 자유의 부재다.”라고 썼다.
또 한가지 중요한 것은 이 책은 존 버저가 사망할 때까지 50년 친구였던 스위스 출신 사진가 장 모르의 사진과 결합되었다는 점이다. 사실 장 모르와의 첫 협업은 이미 1967년에 나온 시골의사의 이야기를 다룬 <행운아>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최초의 포토스토리라고 불리는 사진가 유진 스미스의 ‘시골 의사’(Country Doctor, 1948년)에 대한 오마주라고 봐도 무방한 이 책을 통해 존 버저는 사진과 글이 각각 독자적이고 동등한 관계에 있다며 그 둘이 결합되었을 때 확장 가능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의 이런 시도는 브레히트나 베냐민이 사진이 대중들을 계몽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음을 간파하면서도 “(사진은) 모호하게 읽히기 십상이었던 나약하고 불완전한 매체”라고 규정하며 지식인들의 의무는 대중을 위해 사진에 진실된 해설을 더하여 한다고 강조했던 데서 한 걸음 더 나간 것이다.
» 눈빛과 열화당에서 나온 존 버저의 책들.
사진과 글 분량 다양하게 바꾸는 시도
사진에 관한 연구이자 사진과 글의 협업에 관한 고찰의 완결판은 1982년에 나온 <말하기의 다른 방법>이다. 존 버저는 이 책에 대해 “우리(존 버저와 장 모르)는 산악지방에 사는 농부들이 삶을 담은 사진집을 만들고 싶었고 사진에 관한 책도 내고 싶었다. 사진이 도대체 무엇이며 무슨 의미가 있으며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 카메라의 발명 이후 계속 제기되어온 이런 물음들에 대해 답변을 구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사진과 글의 분량을 여러 가지로 바꿔가는 시도를 통해 다양한 방식의 스토리텔링을 보여주고 있다.
<말하기의 다른 방식>에서 존 버저는 롤랑 바르트가 사진의 본질을 찾아가면서 말한 그 유명한 문장을 인용하고 있다. “(사진의 탄생과 더불어) 인류는 역사상 최초로 코드 없는 메시지와 마주쳤다. 이런 이유로 사진은 거대한 이미지군들의 가장 마지막(개량된) 형태는 아닌 것이다. 정보를 제공하는 경제학의 결정적인 변형에 상응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문장 다음에 존 버저가 부연 설명했다. “사진이 정보를 제공하는 형태의 그 변형은 그 자체의 언어를 갖고 있지 않다. 사진은 ‘모습들’로부터 번역되지 않는다. 사진은 모습들로부터 인용한다.” 풀어 설명하면 이런 것이다. 카메라는 모습을 실어나르는 상자이며 사진은 대상을 선택하는 문화적인 구성이란 것이다. 무엇을 찍을 것인가를 선택한다면 사진에 포함이 될 것이고 거부한다면 사진의 프레임에 들어가지 않게 된다. 이 선택과 거부를 통해 문화적 정돈이 이루어진다. 구성(프레임에 넣는 것)과 정돈(넣지 않는 것)의 기준은 카메라 앞에서 벌어지는 상황과 사진가의 삶과, 주장, 의견에 따라 달라질 것이고 또한 그 사진이 실리는 신문, 책, 전시에 따라 다르게 비칠 것이다. 이것은 같은 사진이 어떤 이념을 가진 신문에 실리는지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음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존 버저는 그림과 사진의 차이를 언급하면서 사진을 설명하고 있다. 그림은 번역이고 사진은 인용이란 표현이 그것이다. 그림 위에 있는 모든 형상은 의식의 중재를 거친 다음에 형성된다. 반면에 사진은 받아들여진다. 그림에선 사과가 둥근 구형으로 만들어진다면 사진에선 사과의 둥그란 모양과 빛, 그림자가 주어진 그대로 받아들여진다. 또 한가지 그림과 사진의 차이는 문법의 유무에 있다. 그림은 체계적이다. 이미 존재하는 언어에 바탕을 두었다. 르네상스 시대의 거장 밑에 있는 젊은이는 송나라 시대의 젊은이와 다른 훈련을 받고 다른 문법으로 그림을 그린다. 사진은 언어가 없다. 있는 그대로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진은 거짓말을 할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사진은 대대적인 속임수와 왜곡에 이용될 수 있는 것도 현실이다. 사진의 모호성 또한 사진의 속성인 ‘그것은 거기에 있었음’과 더불어 사진의 특성이라고 설명했다.
<타인의 고통>, <사진에 관하여> 등 저서를 통해 사진에 대해 독자적이고 탁월한 견해를 발표했던 수잔 손택은 존 버저와 장 모르 공저인 <제7의 인간> 후기에서 이렇게 썼다. “나는 존 버저의 책들을 존경하고 사랑한다. 그는 단지 재미있는 것뿐만 아니라 중요한 것에 대해 쓴다. 내가 볼 때 오늘날 영어권 작가들 중에선 존 버저가 으뜸이다. D.H. 로렌스 이래로 양심의 명령에 따라 책임감을 갖고 세속 세계를 이만큼 주의 깊게 쓴 작가는 없다. 시인으로선 로렌스보다 다소 떨어지겠지만 존 버저는 로렌스보다 더 지적이며 더 시민적이며 더 기품이 있다. 그는 놀라운 예술가이며 사상가다”
로버트 카파가 말한 "가까이" 강조
지난해 11월 90살 생일에 즈음한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존 버저는 브렉시트에 대한 견해를 묻자 스스로 유럽인이라고 규정하면서 “세계화라는 것은 자본주의가 투기적으로 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치인들은 정치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힘을 잃어버 » 2006년 퀸시에서 장 모르가 찍은 존 버저. 사진제공 열화당.렸고 국민들은 그들이 원래 어떤 사람인지를 잊어버렸다. 브렉시트에 대해 말하자면 나는 벌써 오래전에 발로 투표했다”라고 이야기했다. 영국인인 존 버거는 이미 오래전인 1962년에 ‘영국에서의 삶이 혐오스러워서’ 프랑스의 알프스 산록에 있는 농촌마을로 이주했고 말년까지 농사와 글을 지으며 살았다.
1995년 BBC ‘페이스 투 페이스’ 프로그램에 출연, 제레미 아이작스와 대담하면서 일생의 주제가 무엇인지 질문을 받자 존 버저는 “하나만 들어보라면 이민자들의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나도 이민자이며 나의 첫 소설이 런던에 사는 헝가리 출신 화가의 이야기를 다룬 ‘우리 시대의 화가’였다. 나의 친구들은 대부분 이민자들이다”라고 했다.
마르크스주의자로 알려져 있는데 지금도 그러한가라는 질문에는 “내가 마르크스주의자인지의 여부는 그 질문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마르크스에 대해 읽고 공부를 했는지에 달려있다. 나에게 붙은 그 꼬리표는 마르크스를 모르는 사람들이 나에 대한 규정을 내린 것인데 그렇다면 나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다. 반면에 (나처럼) 마르크스에 대해 깊이 알고 있는 사람이 묻는다면 나는 마르크스주의자가 맞다”라고 받아쳤다.
(영국사람인 당신이 프랑스의 농촌에서 살고 있다고 해서) 현지 농민이냐 아니면 참관인(observer)이냐는 질문에 “30년 넘게 살았지만 나는 현지 주민이 될 순 없다. 나는 결국 참관인일 수밖에 없다. 글을 쓰려는 사람이 있다면 전쟁사진의 대가 로버트 카파가 남긴 유명한 구절을 꼭 알고 있어야 한다. ‘당신의 사진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그것은 당신이 충분히 가까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대단히 가까이 다가가서 본다. 진정한 사람들을 보려면 가까이서 관찰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존 버저는 “내가 만약 이야기꾼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내가 많이 듣고 다닌 덕분이다. 나는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들으려고 해왔다”라고 강조했다.
*John Berger의 한글 표기는 그동안 한국에서 번역한 책에선 대부분 존 버거를 사용했지만 보통명사가 아닌 특정인의 이름인 John Berger는 실제로는 존 버저(BER-jer)로 발음되고 있습니다. 다만 그동안 나왔던 책의 제목이나 전시의 제목은 이미 정해졌기 때문에 존 버거로 썼습니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