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소설가, 예술비평 다양한 활동
그중에서도 사진연구에 많은 업적
사진과 글의 협업은 어떻게 할 것인가
» 존 버거, 위키피디아
존 버거가 2일 세상을 떠났다고 3일 외신들이 보도했다. 예술평론가이자 소설가라는 수식이 따라붙는다. 국내에선 대부분 존 버거를 미술평론가로 부르고 있지만 그의 정체성을 최소한 나는 다르게 보고 있다.
1926년에 태어난 존 버거는 처음에 화가로서 출발했다. 물론 평생 그림을 그렸다. 1958년에 첫 소설을 펴냈고 1972년엔 소설 ‘G.’로 부커상을 받았다. 극본도 쓰고 시도 썼다. 물론 미술평론도 썼다.
존 버거는 장 모르와 ‘말하기의 다른 방법’(Another Way of Telling)이란 책을 냈는데 이 책은 사진에 관한 깊은 연구와 시각을 제시하는 명저다. 50년간 친구로 지낸 장 모르와 존 버거가 같이 펴낸 책은 그 외에도 ‘행운아’, ‘시각의 방식’, ‘제 7의 인간’ 등이 있다.
존 버거는 사진에 대한 연구자 중에서 가장 뚜렷한 족적을 남긴 사람 중의 한 명이다. 길게 보면 발터 베냐민의 영향을 받았고 동시대를 살았으며 9살 나이가 많은 롤랑 바르트의 영향도 많이 받았다. 영향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존 버거가 직접 했다. 마치 롤랑 바르트가 “나는 마르셀주의자”라고 당당히 밝힐 정도로 마르셀 프루스트의 영향을 받은 것과 비슷하다.
존 버거가 미술평론가였는지 혹은 소설가였는지 혹은 사진에 관한 저작가였는지를 규정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그는 시각예술에 관심이 많았고 특히 사진에 깊이 빠졌다. 필요에 의해 사진을 배우려고 장 모르를 소개받았는데 장 모르의 사진을 보고선 배울 필요가 없이 그냥 장 모르와 협업하는 편이 낫겠다고 판단하고 여러 작업을 함께 했다. 물론 50년 친구로 지내다 보면 사진을 배우기도 했을 것이다. 말하기의 다른 방법은 대부분 장 모르의 사진으로 채워졌지만 존 버거가 찍은 사진도 몇 장 들어있다.
사진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큰 등불과도 같았던 존 버거가 유명을 달리했으니 깊은 애도를 표명하고 또 동시에 후학으로서 (사진 혹은 시각에 관해서) 그의 대표적 저작인 ‘말하기의 다른 방법’을 소개하는 것이 좋은 추모의 방법이라 생각된다.
‘말하기의 다른 방법’은 5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내 카메라 너머에’다. 장 모르가 글과 사진을 모두 담당했다. 사진으로 말을 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운을 떼는듯하다. 시골장터에서 한 남자와 소를 찍은 한 장의 사진을 놓고 한 페이지의 수필을 썼다. 맹인 소녀와의 조우에선 사진이 다섯 장으로 늘었고 다음 편인 1천5백 미터 고지에서 여름을 나는 농부 마르셀의 이야기에서 스무 장을 훌쩍 넘겼다. 포토스토리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다. 다음 편은 실험이다. 5장의 사진을 여러 사람에게 사진설명 없이 보여주고 ‘어떤 상황인지’ 묻고 있다. 사람들이 사진을 어떻게 읽어내는지 살펴본 것이다.
2부 ‘모습들’은 존 버거가 맡았다. 영어론 수필(essay)이라고 하지만 논문에 가까울 정도로 진지한 사진연구다. 사진의 특성, 사진과 글 협업의 가능성, 사진이 우리 사회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등에 대해 진지하게 접근했다. 여기서 롤랑 바르트의 그 유명한 문장을 존 버거가 인용하고 있다. “인류는 역사상 최초로 코드 없는 메시지와 마주쳤다. 이런 이유로 사진은 거대한 이미지군들의 가장 마지막(개량된) 형태는 아닌 것이다. 정보를 제공하는 경제학의 결정적인 변형에 상응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문장 다음에 존 버거가 부연 설명했다. “사진이 정보를 제공하는 형태의 그 변형은 그 자체의 언어를 갖고 있지 않다. 사진은 ‘모습들’로부터 번역되지 않는다. 사진은 모습들로부터 인용한다.”
내가 아직 롤랑 바르트의 ‘밝은 방’을 만나기 전에 ‘말하기의 다른 방법’을 읽다가 이 대목과 마주서서 씨름을 했던 기억이 있다. 아래 영어원문을 소개하니 각자 읽어보도록 하자.
Roland Barthes writing about photography, talked of “humanity encountering for the first time in its history messages without a code. Hence the photograph is not the last (improved) term of the great family of images; it corresponds to a decisive mutation of informational economics. ” The mutation being that photographs supply information without having a language of their own.
Photographs do not translate from appearances. They quote from them.
» 말하기의 다른 방법 한글 번역본, 눈빛
지금이야 존 버거가 인용했던 바르트의 원 저작물들을 이해하기 때문에 넘어가지만 당시엔 무슨 외계어를 보는 줄 알았다. 어쨌든 존 버거는 바르트의 영향을 결정적으로 받았고 거기서 머물지 않고 더 나갔다. 이 차이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어머니의 죽음이란 충격 때문에 사진을 연구하기 시작한 바르트는 사진을 찍을 생각이 없었고 배우지도 않았다. 반면에 존 버거는 우리 사회에서 사진의 위치와 기능, 미래까지 염두에 두었고 사진에 직접적인 개입까지 했기 때문에 사진의 확장가능성까지 보고 있는 것이다.
3부는 ‘만일 매 순간에….’ 이다. 장 모르의 사진을 어떤 순서에 따라 140쪽 이상 늘어놓고 있다. 존 버거와 장 모르가 내레이션을 했다고 하지만 채 두 쪽도 되지 않는다. 그러니 이 사진들의 연속(sequences)은 오로지 사진만 읽고 이야길 연상해야 한다. 한 가지 정답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존 버거가 말하고 있는데 그야 상식이다. 다만 사진만으로 연결된 포토스토리는 다양하게 읽힐 수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그렇다고 전혀 터무니없이 나열된 사진이 아니다. 분량으로 봐서 이 3부가 이 책 ‘말하기의 다른 방법’의 본론이다. 모름지기 사진으로 포트폴리오를 꾸민다고 한다면 이 책은 필독서다.
4부는 ‘이야기들’이다. 3부에서 너무 막막하다고 느꼈을 사람들을 위해 다소 친절하게 사진의 스토리텔링 작법에 대해 기존의 연구를 잠깐 소개하고 다시 존 버거가 논지를 펼쳐나간다. 존 버거와 장 모르의 전작 ‘제 7의 인간’에 나온 사진을 몇 장 인용하여 예제를 보여준다. 5부 ‘처음에’는 한 편의 시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