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 조문호 사진전 '사람이다'
갤러리브레송에서, 10일부터
조문호씨의 사진전 ‘사람이다’가 갤러리브레송에서 10일부터 20일까지 열린다. 이 전시는 갤러리브레송이 올해 1월부터 12월까지 열두 번에 걸쳐 기획한 ‘사진인을 찾아서’의 대미를 장식하는 전시다. 80년대 초반의 사진을 포함해 2016년까지 포함되어 있다. 그동안의 ‘사진인을 찾아서’와 마찬가지로 사진가의 사진인생을 총망라하여 일별할 수 있는 기회다. 크게 보자면 두메산골연작, 80년 민주항쟁, 인사동 사람들, 청량리588, 장터사람들, 동자동사람들, 그 밖의 거리스케치로 나눌 수 있는데 어느 사진이고 사람이 들어있다. » 조문호씨
현재 조문호씨는 서울 용산구 후암로에 살고 있다. 그곳은 동자동이라고 부르는 쪽방촌이다. 지난 추석 무렵 이곳으로 아예 거처를 옮겼는데 언제까지 계실거냐고 물었더니 “그냥 계속 살려고”라고 했다. 이로써 사진을 잘 찍고 싶어하는데 방법을 몰라서 애를 태우는 숱한 사람들에게 사진가 조문호씨가 금과옥조같은 한 비법을 제시했다. 가서 산다. 언제까지? 그런 것 없이 그냥. 사진가 노순택씨가 지금으로부터 10여년 전에 평택 대추리로 이사했던 것이 떠오른다. 내집 마냥 자주 현장을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그 동네 주민이 되는 것이다. 그게 강원도 정선의 산골이든 청량리588이든, 동자동 쪽방촌이든 주민과 외지인의 차이는 너무나 크다. 물론 어느날 갑자기 날아든 외지인이 바로 환대를 받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귀농, 귀촌했다가 실패한 사례들을 많이들 알고 있다. 텃새에 부대끼든, 혹은 붙임성있게 잘 다가가든 그것은 모두 주민이 되려고 작정한 사람의 몫이다.
지난번 인터뷰에서 조문호씨는 청량리588에 방을 얻어 5개월 동안 살았고 그 후엔 자주 들락날락했다고 말했다. 그러던 그가 이번에 동자동으로 들어갔다. 그는 사진가이니 사진을 찍는 게 일이다. 그러나 그가 사진을 찍든 말든 우리는 한 사람이 거주지를 옮긴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사진찍기만을 위함이 아닐 수도 있다. 사진이 목적이 아닐 수 있다. 돌려 말하면 사진만을 위해서 어딘가로 거처를 옮겨서 사는 것을 경계하라는 이야기다. 아마도 그런 경험이 없어서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어디 가서 살아보면 사진이 아닌 다른 것이 눈에 보일 것이고 그제야 사진이 보일지도 모르겠다.
어디에 가서 사진을 찍는 것과 거기 살면서 찍는 것의 차이가 뭘까? 또는 어디에 가서 뭘 한다는 것과 거기 살면서 뭘 한다는 것의 차이는 뭘까? 강원도 정선, 청량리588, 동자동 쪽방촌에 가서 사진을 찍고 나면 돌아온다. 그게 아니라 거기서 살면 사진을 찍고 나서 돌아오지 않고 거기에 머무른다. 살게 되면 사진만 찍는 것이 아니라 동네 사람들이 하는 일을 같이 한다. 더 길게 설명할 일이 없다. 어디 가서 살면서 사진을 찍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라면 그냥 본인이 지금 살고 있는 곳에서 뭘 하는지 떠올려 보면 되겠다. 본인이 사는 곳에서 사진을 찍는지 아닌지 생각해보면 되겠다.
여행을 떠나는 것은 집을 나서는 일이다. 1박2일짜리 여행이면 내일은 집으로 돌아간다. 1년짜리 여행은 길지만 365일째는 집으로 돌아간다. 돌아갈 곳이 있으면, 돌아갈 일이 있으면 그것은 여행이다. 조문호씨가 1983년에 찍은 인사동 사람들 중엔 천상병 시인도 있다. 시인의 <귀천>은 이렇게 끝난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모든 사람은 끝내는 돌아가게 되니 인생은 여행이다. 그러므로 사진을 찍는 모든 사람은 여행사진가다. 조문호씨의 ‘사람이다’ 전시는 여행 중에서 만난 사람들을 소개하는 전시다. 그는 동자동에서 장기투숙하면서 새로운 여행을 시작했다.
» 동자동사람들 2016
» 두메산골 사람들 2003
» 두메산골 사람들 2000
» 민주항쟁 1987
» 여의도 1990
» 신경림 2006
» 천상병 1983
» 청량리588 1984
» 장터사람들 2013
사진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표정이 흥미롭다. 카메라를 의식하지 못한 1982년 완행열차의 할머니나 2016년 동자동의 주민, 여의도의 상춘객 등을 제외한 나머지 사진에선 다들 조문호씨의 카메라 혹은 조씨를 바라보고 있다. 어색한 표정을 짓기도 하고 다소간 걱정스러운 눈길을 건네기도 한다. “어디 밥이나 먹고 다니슈?”라는 말을 하거나 “그만 찍고 밥숟갈이나 뜨세요”라고 말하고 있다. 신경림 시인은 ‘사진가 유섭 카쉬를 시니컬하게 바라보고 있는 조지 버나드 쇼’처럼 조문호씨를 바라보고 있다. “당신 사진 찍을 줄은 아는가?” 청량리588의 ‘동생’은 아홉 가지가 섞인 묘한 표정으로 조씨를 바라본다. 다들 일치하는 한 가지가 있다. 조문호씨를 관찰하고 있다. 사진가 조씨가 인물들을 관찰하는 동시에 그 인물들이 조씨를 관망하거나 관찰한다. 이것은 다른 사진가와의 큰 차이다. 인물을 찍을 때 어릿광대가 되는 사진가가 있고 폭군이 되는 사진가가 있다. 이야기꾼이 되는 사진가도 있고 연인이 되는 사진가가 있다. 조문호씨는 대등한 위치에서 혹은 약간 낮은 입장에서 마주서서 찍었을 것이다. 위압하지 않고 재롱을 피우지 않고 말주변이나 미소로 유혹하지 않고 찍었을 것이다. 그렇게 찍으면 ‘사람’을 찍을 수 있는 것이다. 동시에 조문호씨가 그 사람 앞에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번 전시의 제목 ‘사람이다’는 조문호씨 본인을 일컫는 말이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사진제공/갤러리브레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