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건설기술연구원 동호회 사진전
고양 아람누리 갤러리 울에서 열려
» 강재모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의 사진동호회 ‘KICT 사진가족’의 열 번째 사진전 ‘하나 된 시선으로’가 열리고 있다. 전시는 12월 1일부터 7일까지 고양 아람누리 갤러리 울에서 열린다. 아람누리는 서울 지하철 3호선을 타고 정발산역에서 내려 아람누리 출구로 나가면 되는데 아람누리로 통하는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면 바로 연결된다고 한다.
사진동호회에서 보도자료를 보내왔다. 읽다가 한 대목에서 솔깃해졌다.
“회원들이 업무나 여행 중에 촬영한 사진으로 공학도의 시선으로 바라본…….”
공학도의 시선에 관심이 쏠린 것은 내가 문과 출신이기 때문이다. 몇 해전에 이 모임을 방문하여 잠깐이나마 이야길 나눈 적도 있고 해서 전혀 모르는 상대가 아니다. 따라서 ‘공학도’라는 표현을 글의 소재로 삼는 것은 재미있게 하자는 뜻임을 이해하기 바란다.
한겨레포토워크숍 서울편을 서울숲에서 진행할 때의 일이다. 한 시간가량 각자 촬영을 한 뒤 즉석에서 1:1 리뷰를 했다. 한 참가자의 사진을 쭉 보는데 아무래도 공학도 출신인 것 같았다. 문과 아니면 이과로 나눴던 필자의 고교 시절 표현에 따르면 공학도란 말을 쓰지 않고 이과 출신이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맞단다. 물론 문과 아니면 이과이니 절반의 확률이긴 하지만 맞춘 내가 신기했다. 그분은 어떤 근거로 이과출신의 사진인 줄 알았느냐고 반문했다. 그래서 나의 근거를 제시했고 수긍했다.
학교에서 수업을 할 때 대부분의 학생은 문과 쪽이다. 그런데 간혹 이과, 그중에서도 공대 쪽 학생이 있다. 첫날 셔터와 조리개 이야길 하면 문과 학생들은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보인다. 물론 예외적인 사례는 충분히 있다. 카메라를 빨리 익히는 문과 학생도 있다. 대체로 그렇다는 뜻이다. 물론 ‘대체로’라는 말 자체도 과학적이지 못한 문과적 표현이다.
공학도 출신들은 카메라를 빨리 익힌다. 거부감이 덜하다. 그리고 사진의 외형적 형식에서도 그게 드러나는 경우가 있다. 포토워크숍의 그 참가자는 유난히 직선, 사선, 곡선 같은 선에 관심을 많이 쏟고 있었다. 그게 여러 장의 사진에서 반복적으로 두드러지게 나타나면 그 사람의 특성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좀 관심이 생겨서 그 후에도 몇 명을 만나서 사진을 보고 그분들의 전공을 가늠해보기도 했는데 역시 ‘대체로’ 맞았다. 공학도 출신들은 선이나 형태 같은 것에 더 관심을 갖는 편이다. 또한 그들은 반듯하게 찍는 편이다. 정리 정돈을 잘한다. 구성에 소질이 있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은 토목과 건축을 총 망라하는 구조, 도로, 지반, 수자원·하천, 환경, ICT, 화재, 건설관리 등 각 분야의 공학도들이 모여 연구를 하는 정부출연연구기관이라고 한다. 이번에 참가한 15명 회원의 전공이 정확히 무엇이었는지는 정확하게 모르고 있다. 1인당 2장에서 4장씩 모두 48장을 보내왔다. 한 명씩 짚어가면서 공학도 출신들의 사진은 어떤지 살펴보도록 하자. 과연 문·이과 출신의 구분에 따라 사진에 차이가 날까?
강재모님은 남극에서 찍은 것이다. 펭귄이 체조를 하는듯한 자세다. 그리고 아름다운 노을 사진이다. 이런 사진이라면 만인이 좋아할 것이다. 공학도 출신인지 아닌지를 전혀 알 수가 없이 아름답고 예쁘다.
김수암님은 기대에 걸맞게 건축공학을 다룬 사진을 올렸다. 아래쪽에 짧게 나온 옥상정원의 처리가 산뜻하여 차가운 건물의 선을 잘 달래고 있다.
김원(고문)님은 수묵화다. 더 할 말이 없이 그윽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에서 솟아난 바위의 형태감을 고집하는 것으로 봐서 공학도 출신임을 자부하고 있는 사진이다.
동명이인인 또 다른 김원님은 역시 분위기 있는 풍경사진을 전시한다. 그런데 고문으로 계신 김원님과는 전혀 다르다. 이런 사진을 놓고 문과 이과 구분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따진다면 사진에서 작게 보이는 왜가리 한 마리와 또 다른 사진 <한강 낙조>에서 보이는 왼쪽의 작은 비행기 한 대 같은 것이 공학도의 DNA를 슬며시 드러낸다면 과한 추측이 될 것이다.
김현준님은 그저 반듯하기 때문에 출신을 알아맞힐 수 없다. 동호회의 실력이 고르게 뛰어남을 보여주고 있다. 이 동호회는 무려 32년이나 되었으므로 그 내공이 대단하다.
노관섭님은 실험을 시도하는 모양인데 경계를 넘어가고 싶어한다. 문과나 이과출신을 따질 일이 아니라 예술 분야를 전공한 이의 자세를 보이고 있다.
문현집님은 질감과 컬러를 보여주거나 미니멀리즘을 시도했다. 역시 전공을 따질 수 없는 사진이다. 그래도 굳이 따진다면 컬러가 형태를 보여주는데 방해가 되지 않아서 좋고 형태는 형태를 벗어나고 있어서 좋다.
백경진님은 15명 중 가장 난해한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공학도의 여부와 전혀 상관없이 어렵다. 물론 마음에 든다.
안미숙님은 고민이 많았던 모양이다. 전시장에서 크게 봐야 진짜 감흥이 전해질 것 같은데 모니터로 보는 한계를 절감한다. 문과 이과 구분? 하기 힘든 사진이다.
양미영님은 매력적인 사진이다. 나는 뭔지 잘 모를 때 매력적이라는 표현을 쓴다. 허언이 아니라 뭐가 잘 보이지 않아야 관심을 끌 수 있다는 뜻이다. 저 벽 속의 액자는 그림인가 실제인가?
거듭해서 공학도의 사진이 보이질 않아 실망을 거듭하든 차에 이경석님이 월스트리트와 맨해튼의 스카이라인을 보여줘서 기뻤다. 폭포사진도 공학적으로 연결이 되었다.
그러다가 다시 이장화님의 사진 앞에서 절망에 빠졌다. 공학도의 사진은 특성이 있다는 나의 가설은 거의 무너져내리고 있다. 그와 상관없이 사진 매력적이다.
이종석님은 거의 문과적 소양을 가득히 가지고 있다. 여행의 펌프를 불러일으키기 위해선 이렇게 따로 규정되지 않은 장소를 보여주면서 기억을 촉발시켜야 한다. 떠나고 싶다.
정한교님은 확실히 이과적이다. 피보나치 수열의 개념도를 보여주는 것 같은 사진이다.
조혜진님도 이과적이라 볼 수 있다. 퇴적과 단층이 과학적 용어라서 그런 측면도 있고 저 지형의 작은 봉우리 같은 모양이 꼭 오실로스코프의 모니터에 나오는 그래프 같아서 그렇다. 물론 이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패턴의 불규칙한 반복에 끌렸다고 한다.
이로써 나의 가설을 입증하는 데 실패했다. 언젠가 조금 더 과학적인 방법으로 문과 출신과 이과 출신의 사진이 다르다는 것을 입증해보도록 하겠다.
15명이 각자 다른 사진을 걸기 위해서 노력했다. 사진은 비슷비슷하기 쉬운 매체인데 5명도 아니고 15명이라면 누군가는 양보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럴 때는 대체로 고수들이 양보해주는 편이다. 다음에 또 전시를 한다면 공통적인 주제를 잡아 서로 다른 방식으로 풀어나가면 어떨까 싶다. 이 사진들을 전시장에서 보고 나면 대체로 정화될 것 같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