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영 사진전 '고요의 노래'
갤러리브레송에서 9일까지
사진가 김호영 선생의 사진전 ‘고요의 노래’가 서울 충무로 갤러리브레송에서 열린다. 12월 9일까지. 김호영 선생의 이력을 보고 있으면 이제는 너무나 유명해진 사진집 ‘윤미네집’의 작가 전몽각 선생이 떠오른다. 토목공학과 교수를 지냈으며 나중에 성균관대학교 부총장까지 역임했던 전몽각 선생처럼 김호영 선생은 1982년부터 2015년까지 교수를 했고 고려대학교 부총장까지 역임했다. 김호영 선생과 전화로 인터뷰를 했다.
-사진은 언제부터 하였나?
“1968년 무렵이었다. 한국 사진예술의 선구자 중 한 분인 백오 이해선(1905~1983)에게 사진공부를 했다. 그때 안장헌선배도 같은 공부모임에 있었고 김완기씨도 있었다. 그러다가 76년에 미국으로 유학을 갔고 다녀와서 교수로 일하다 보니 사진에만 집중할 수는 없었다. 작년에 정년퇴임했고 이제 나이 들어 다시 사진으로 돌아왔다. 이렇게 좋을 수가 없다. 많이 걷고 좋은 공기 마시고, 맛있는 것도 먹을 수 있어서. 하하” (김완기씨의 사진집은 사진마을에서 소개한 적이 있다)
-이번 전시는 얼음사진이다. 어떤 의미인가?
“음 그게 내가 몇 년 전부터 어떤 형태에 대해서 찍고 있는데 그 중에 바위도 있고 나무도 있고 얼음도 있다. 이번엔 얼음만 보여준다. 바위, 나무, 얼음이 모두 다르지 않다. 고요한 사물들은 움직이지 않는 듯하지만 어떤 노래가 들린다. ‘나를 찍어주세요. 나를 바라봐주세요.’라는 요청이 들어오는 듯하다. 나는 이 사진들을 찍어 나무와 얼음과 바위가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관객에게 전달해주는 메신저 역할을 할 뿐이다. 이게 사진가의 사명 아니겠는가?”
자세한 이야기는 작가노트에 적혀 있으니 참고하면 될 것 같다. 나무와 얼음과 바위가 매한가지다. 그중 얼음은 가장 빨리 변한다. 날이 풀리면 곧 녹아서 물이 되고 수증기가 될 것이다. 나무는 그보다는 오래가겠지만 역시 변하게 되어있다. 바위는 더 오래 서있겠지만 언젠가는 순환의 운명을 따를 것이다. 이런 뜻이겠다. 다시 사진을 보니 얼음이 나무로 보이고 꽃으로도 보이고 바위산으로도 보인다. 형태는 변하지만 본질은 남아있다. 사진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또 한 번 곰곰이 생각하게 하는 사진을 만났다.
작가노트
세상 모든 사물은 관심을 통해 특별한 존재적 의미를 지니게 된다. 의미부여 또는 관계 맺기의 과정은 많은 경우 시각적 관심으로부터 시작된다. 우선 시각으로 사물을 보고 존재를 확인하고, 살아온 지식을 바탕으로 해석을 하고, 마지막으로 마음의 눈으로 이를 보게 된다. 대상을 탐구하는 방법은 시각 이외에도 청각, 미각, 촉각 후각을 포함한 오감의 신체적 감각을 기본으로 하겠지만 이와 더불어 마음으로 보고 듣는 것, 즉 대상과 교감하는 심목상응(心目相應)의 단계가 되어야 비로소 바르게 보는 것이리라.
나는 사진을 찍을 때 주제나 소재를 미리 정하지 않는다. 순간적으로 내 눈에 무언가가 들어올 때, 카메라에 그것을 담고 싶을 때 사진을 찍는다. 나에게 있어 대상에 눈이 가고 카메라를 댄다는 것은 자신을 봐 달라는 간절한 부름과 이 모습으로 자신을 드러내 달라는 대상의 요구에 의해서라고 생각한다. 모든 사물은 창조될 때 받은 사명과 꿈이 있다. 세상에 보여주고 싶어 하는 모습이 있을 것이며, 이를 표현하려 무진 애를 쓴다. 사람은 화장하고 옷을 입고 심지어는 성형수술까지 하며 자신을 표현하려 애쓰지만, 주위 자연환경 변화에만 의존하여 원하는 모습을 조금씩 만들어가는 움직임조차 하지 못하는 사물들의 노력은 가상하다 못해 애처롭기까지 하다. 나는 그 애쓰는 모습을 보며 이를 사진으로 보여 주는 것을 의무로 생각하며 즐긴다.
물질은 환경에 따라 기체, 액체, 또는 고체 상태로 존재하며 그 안에서 모습을 나타낸다. 물은 증발하면 수증기가 되고 냉각되면 얼음이 된다. 바위는 녹으면 용암이요 온도가 더 높아지고 압력이 내려가면 기체가 된다. 기체나 액체 상태는 주위 환경에 의해 쉽게 변하기에 고유의 모습을 유지하기 어렵지만, 고체상태가 될 때는 조금이나마 자기가 표현하고 싶은 모습으로 존재한다. 물질이 원하는 모습으로 가장 오래 고요하게 존재할 수 것은 고체 상태리라. 이러한 물질의 존재는 마음의 눈으로, 그리고 마음의 귀를 통해 우리에게 보이고 들리게 된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