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등 뒤에 지나온 삶이 있다

사진마을 2018. 08. 06
조회수 6887 추천수 0


 내 인생의 사진책/권혁재의 비하인드



ghj02.jpg » 발레리나 강수진. 책 본문 86~87쪽.  ghj01.jpg » 최완수 한국민족미술 연구소장. 책 본문 52~53쪽.



이 책의 책장을 덮을 때쯤이면 번번이 가슴이 먹먹해지고 글자가 어룽거린다. 여러 번 들여다보고 여러 번 읽은 내용인데도 매번 처음 읽는 양 가슴이 뜨거워지고 밑줄을 긋게 되고 나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사진과 사람은 참 천생연분이란 생각을 한다. 카메라 앞에 서는 수많은 피사체 중에서 사진의 특징과 매력을 가장 잘 드러나게 해주는 대상이 사람이고, 또한 한 사람의 삶의 흔적과 그 사람의 개성을 사진만큼 한순간에 잘 표현해줄 수 있는 매체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사람의 삶 속으로 들어온 사진만큼 아름답고 감동적인 사진은 없다고 믿는다. 이 책은 그런 나의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다.   
  ‘권혁재의 비하인드’(도서출판 동아시아)는 사진 반, 글 반이다. 사진기자인 저자가 인터뷰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을 촬영하고 그 자리에서 나눈 이야기들을 전하고 있는데, 시차를 두고 다시 또 만나서 사진을 재차 찍거나 대화를 나눈 것이어서 직격인터뷰라기보다 시간을 두고 숙성된 이야기들이 들어 있다. 한 사람당 대여섯 장의 사진과 2~5페이지 정도의 짧은 글이지만 핵심을 찌르는 사진과 글이 군더더기 없이 한 사람의 생애를 요약해준다.
  이 책에는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28명의 인생철학이 담겨 있다. 저자는 몇 장의 사진만으로도 한 사람이 살아온 자취와 철학을 웅변해주고 있는데 그 중에서 특히 간송미술관의 최완수 한국민족미술 연구소장과 국립발레단 강수진 예술감독의 뒷모습 사진이 감동적이다. 제대로 잘 찍힌 앞모습보다 뒷모습에 더 관심이 쏠린 것은 순전히 나의 취향 때문일 수도 있다. 언제부턴가 나는 내 뒷모습에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나의 뒷모습은 나만 빼고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왠지 불안한데, 이 책을 통해 뒷모습이 아름다운 두 사람을 보게 된 것이다.
  하얀 두루마기를 입은 모습이 흰 목련 같은 최완수 연구소장의 뒷모습 사진은 많은 생각에 잠기게 한다. 작가가 하얀 두루마기에 드리워진 대나무 그림자를 놓치지 않은 것은 대나무처럼 꼿꼿하게 살아온 그의 선비정신을 드러내 주려는 의도였으리라. 간송미술관에서 50년, 우리의 문화적 자존심을 지켜온 그분의 삶이 참 오롯하게 표현되었다. 항상 우리 옷을 갖춰 입는 그가 “평생 입을 옷을 어머니가 다 해놓고 돌아가셨다”고 말한 대목에서는 가슴이 뭉클했다. 결혼도 하지 않고 오로지 우리의 미술을 지키는데 정진하는 아들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마음은 어땠을까 헤아려본다. 입성은 깨끗해야 한다고 믿었을 어머니는 평생 혼자 살 것 같은 아들을 위해 당신이 손수 평생 입을 아들의 옷을 장만해놓으셨으리라. 참으로 고매한 모자의 정이 정갈한 순백의 두루마기와 오버랩된다.
  그런가 하면 오랜 세월 발레로 갈고 닦은 강수진 예술감독의 사진 속 등 근육은 그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혹독하게 훈련하고 담금질했는지를 보여주는 시간의 흔적 같다. 링컨은 나이 40이 되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는데 과연 뒷모습에 자신이 있는 삶은 얼마나 될까?
  책장을 넘기며 점점 증폭되어가던 감동은 마지막 파트인 ‘12월의 시’에서 절정에 이른다. 그 파트에 나온 다섯 명, 김자옥, 최동원, 들국화의 주찬권, 신영복, 김영갑의 공통점은 이제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그들이 과거의 모습으로 웃고 있기도 하고 생각에 잠겨있기도 하다. 시간을 거스를 수 있는 사진만의 특성을 소름 돋게 실감하는 순간이다. 과거에 드라마에서, 야구장에서, 공ysy.jpg연장에서, 강연장에서, 그리고 제주도의 두모악에서 만날 수 있었던 그들 사진은 이제는 부재의 증명이어서 애틋하고 아련하다. 마침 최동원 야구감독의 뒷모습 사진도 있다. 어려서부터 야구와 함께 살아온 그의 뒷모습은 산처럼 듬직하고 단단하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지금 세상에 없는 사람의 뒷모습은 어쩔 수 없이 슬프다. 그가 살아 있었다면 그냥 지나쳤을지 모르는 삶의 고단함과 쓸쓸함이 느껴지는 것은 한 장의 사진이 시간의 경과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해석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삶에 대한 의욕이 소진되거나 사람에 실망할 때 이 책을 꺼내서 들여다본다. 수십 년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서도 햇살처럼 온화하고 평화로운 얼굴을 지닌 신영복 교수가 환하게 웃고 있다. 소리꾼 장사익은 “기맥힌 인연이 인생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인생에서 아름다운 방황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최재천 국립생태원장도 만날 수 있다, 그들이 툭툭 던지는 화두 같은 이야기와 옆집 아저씨처럼 찍힌 소탈한 사진들은 지친 마음을 추스르게 하는 긍정의 힘을 갖고 있다. 내가 이 책을 가까이 두고 펼쳐보는 이유다.  윤세영(월간 <사진예술> 편집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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