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녕만 사진집 '분단의 현장 판문점과 DMZ'
휴전후 65년. 그 중 35년 동안의 분단을 기록
현장을 떠났으나 접경지역에서 보이는 북녘
» 가깝고도 먼 남과 북, 서부전선. 2018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간혹 탁월한 능력을 가진 이들이 있다. 이번에 사진집 ‘분단의 현장 판문점과 DMZ’를 낸 사진가 김녕만이 그 중 한 명이다. 무슨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일까? 사진을 잘 찍는 능력……. 이라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는 1971년부터 사진을 본격적으로 찍기 시작했고 1978년 “꿈에도 그리던” 동아일보 사진기자가 되었다. 2001년에 퇴사했고 ‘사진예술’ 발행인이 되어 15년간 잡지를 만드는데 매진했다. 2015년에 ‘사진예술’을 다른 이에게 넘길 무렵 김녕만 사진가는 나에게 말했다. “이제부턴 나도 제대로 된 사진작가활동을 해야겠다.” 뭘 찍을 것인지 물었더니 “고향인 전라북도 고창을 집중적으로 담으려고 한다.”라고 했다.
해가 바뀌거나 하면 간간이 안부를 묻는 전화(그것도 한참 선배인 그가 먼저 걸어온 것이 대부분이다.)로만 소식을 들을 뿐이었다. 잠시라도 쉬지 않는 그가 분명히 뭔가 따박따박 찍고 있을 것이라고 짐작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지난주에 또 몇 달 만에 전화가 걸려왔다. “책을 하나 만들었네. 판문점과….”
묵직한 사진집을 건네받았다. 280쪽에 달하고 가로 세로가 24센티미터짜리로 양장으로 만들었다. 앉은 자리에서 한 쪽씩 넘기면서 다 볼 일은 아니지만 다른 이도 아니고 저자가 직접 건네준 상황이라 듬성 넘길 수는 없었다. 맞은편에서 그걸 지켜보던 김 작가는 내가 조금이라도 건너갈 요량이면 잽싸게 몇 쪽을 보라고 권했다. 그 사진은 어떠한 순간이며 어떤 사람이며 어떤 곳인지 설명을 했다. 그래서 또 한 두 장씩 넘길라치면 다시 멈추게 하여 다른 사진을 설명하곤 했다. 그때마다 몇 쪽인지를 메모해뒀다. 그것을 잊어버릴 수가 없다. 이렇게 친절하게 설명이 들어오면 기사를 쓰기가 아주 편한 노릇이다. 보통 내가 사진집 기사를 쓸 때는 혼자 시간을 들여 조용히 살펴보고 그 다음에 필요한 쪽의 이미지를 보내달라고 하는 편인데 이번엔 그 시간을 고스란히 벌 수가 있었다.
그럭저럭 92쪽에 이르렀을 때 다시 내 손을 멈추게 하고 설명을 이어갔다. “그 사진은 찍는데 4개월이 넘게 걸렸다.” 예를 들어 희귀한 동물을 포착하기 위해서라면 위장텐트를 치고 1주일이나 보름씩 기다리면서 한 컷을 찍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92쪽의 사진은 판문점에서 열리는 남북고위급회담의 남북 장교들이 걸어가는 장면이다. 이 순간을 찍기 위해 4개월 동안 잠복하고 있었다는 것은 말이 아니다. 다시 김녕만 작가의 설명이다.
“나는 1991년 제4차 남북고위급회담을 취재하기 위해 평양땅을 밟았다. 판문점을 넘어서 개성에서 기차를 타고 평양역에 내렸다. 그때 마중 나온 북쪽 장교가 남쪽 장교의 커다란 가방을 같이 들어주는 사진을 찍었다. 속으로 ‘가방 손잡이 대신 남북장교가 손을 잡았다면 더 좋은 사진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마음을 계속 잊지 않고 있었더니 내 눈앞에서 그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무려 넉 달이 지나 1992년 2월 18일 평양에서 열리는 제6차 남북고위급회담을 위해 판문점에서 북쪽으로 가던 남북 장교가 미끄러운 빙판에서 넘어지지 않으려고 반사적으로 손을 잡았고 그 순간 그 앞에 나만 있었다. 아. 내가 이 장면을 찍고 싶어했더니 기어코 내 눈앞에서 벌어지는구나”
» 서울에서 열리는 남북고위급회담을 위해 판문점에 도착한 김영철 인민무력부국장. 1990년. 그는 2018년 현재 북한 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이다.
» 강화도 바다 건녀편이 북한의 황해남도 연백이다. 인천 강화. 2017년
» 앞쪽에 보이는 북한의 초소 뒤로 대성동 마을의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다. 경기도 파주. 2018년
» 164~165쪽. 독수리 강원도 철원. 2018년.
» 해빙기를 맞아 고드름이 녹아내리고 있다. 판문점. 1990년.
» 이 사진은 이번 사진집엔 실리지 않은 것이나 이해를 돕기위해 김녕만 사진가가 보내왔다. 1991년 평양역에서 가방을 함께 든 남북장교. 이 사진을 찍으면서 김녕만은 남북 장교가 손을 잡았으면 좋았겠다고 희망한 것이다.
» 92~93쪽. 남북고위급 회담 수행원으로 평양에 가는 남측장교와 북측 안내장교가 빙판길에서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손을 잡고 걸어가고 있다. 판문점. 1992년.
이것이 김녕만 사진가가 가진 탁월한 능력이다. 그는 어떤 현장에서 미래를 본다. 현재의 순간에선 부족한 것이 어떻게 채워지길 희망하면서 기대하고 기다린다. 그리고 그것이 한 10분 만에 혹은 2시간 만에 혹은 1년 뒤에 채워지는 것이다. 현재의 순간에 부족한 것이 무엇이며 무엇이 채워져야만 사진이 완성이 될 것이라는 예측과 소망이 없는 사람들에겐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또한 예측과 소망만 있다고 될 일도 아니다. 끈기 있게 기다리고 희망하면서 심지어 몇 년씩이나 같은 곳을 또 가고 가야만 가능한 일이니 이게 바로 그의 능력이다.
이번 사진집 ‘분단의 현장 판문점과 DMZ’엔 그런 능력자의 사진이 곳곳에서 보인다. 그는 1983년부터 판문점 출입기자를 시작했다. 그로부터 올해까지 35년 동안 분단의 현장을 사진으로 기록해왔다. 올해가 휴전 65주년이므로 그는 분단 세월의 절반 이상을 찍어온 것이다. 그는 서문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나의 분단기록은 2000년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2000년 이전에는 사진기자의 신분으로 판문점과 비무장지대 안으로 들어가 근접촬영을 할 수 있었던 반면, 2000년 이후에는 신문사를 퇴직하고 다큐멘터리 사진가 개인의 작업으로 바뀌면서 주로 비무장지대와 접경지역을 밖에서 들여다보는 시각으로 진행했기 때문이다.”
그가 2001년에 신문사를 관뒀다는 것을 잘 아는 나로서는 그래서 그 이후의 사진들은 현장성이 떨어질지도 모른다고 짐작하려고 했으나 책을 열기도 전에 “김녕만은 어떻게든 해냈을 것이다”라고 믿고 있었다. 사진기자의 신분이라면 유리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판문점을 둘러싼 회담의 이모저모는 개인 신분의 사진가로는 근처도 갈 수 없는 상황이다. 비무장지대와 접경지역도 마찬가지다. 군당국의 허가를 받는다면 철책선 앞의 병사들을 광각렌즈로 코앞에서 찍을 수도 있는 것이며 허가를 받지 못한다면 언감생심이다. 이 책은 삼 부로 나눠져 있다. 첫 부분은 판문점이니 그가 여전히 기자로 일할 때다. 두 번째는 비무장지대(DMZ)와 북방한계선(NLL)이다. 기자로 일할 때의 사진도 있고 2018년의 사진도 있다. 그런데 2018년 사진에도 북쪽 땅이 자주 등장한다. 과연 ‘김녕만’이었다. 그는 “비무장지대와 잇닿아 있는 강원도의 접경지역으로는 철원, 화천, 양구, 인제, 고성군이 있고 경기도엔 김포, 파주, 연천이 있다. 어떤 곳에선 아침저녁으로 북녘땅이 보인다. 자유로를 타고 가다가도 북쪽 땅이 빤히 보이는 곳도 있다. 남과 북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다.”라고 말했다. 어디에 가면 어디가 보이는지를 철저하게 연구한 것이다. 그런 노력 덕분에 현장을 떠난 일반 사진가의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군당국의 협조를 받고 찍은 사진과 » 분단의 현장 판문점과 DMZ. 표지 사진. 큰 차이가 나지 않을 수 있었던 것도 그의 능력이다. 비무장지대 안쪽으로 들어가지 않고서도 찍을 수 있는 북녘이 생각보다 많았다. 고라니, 멧돼지, 산양, 황새, 개나리, 진달래 등을 그는 빼곡빼곡 찍어서 이번 사진집에 실었다.
사진집에 실린 책 서문의 마지막 부분을 그대로 옮긴다. 그는 이렇게 썼다.
“그러나 올봄, 드디어 예기치 않은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2018년 4월 27일, 한 편의 영화 같은 일이 벌어졌다. 1980년대와 90년대에 내가 판문점에 출입할 당시 감히 상상하지 못했던 일, 한 걸음이면 넘을 수 있는 콘크리트 분계선을 실수로라도 넘지 않으려 늘 조심했던 그곳에서 남북의 정상이 만나 악수하고 서로 넘어가고 넘어오는 장면을 목도하게 될 줄이야! 가슴이 떨렸다. 몇 달 전만 하더라도 핵무기의 공포에 시달리며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하여 비상식을 준비하는 최악의 상황이었는데 이런 반전이라니! 그날 임진각으로 달려가 남북정상의 만남을 간접적인 방식이지만 기록으로 남겼다.
혹시 이 희망이 절망의 나락으로 곤두박질칠지 아무도 예측할 수는 없다. 그러나 다시 뒷걸음질치기에는 남북이 너무나 큰 걸음을 떼었다는 것에 희망을 걸어본다. 동시에 35년의 기록을 이제는 한 권의 책으로 묶을 때가 왔음을 느낀다. 이 책의 출판은 나의 오랜 작업에 대한 결산이기도 하지만 또 하나의 희망의 씨앗을 심는 일이기도 하다. 어쩌면 달라진 분단풍경을 찍을 수 있게 될지 모른다는 희망 말이다. 이쯤에서 나의 분단 기록이 마무리되고 새로운 시대를 기록할 수 있게 된다면 사진가로서나 분단시대를 살아온 국민으로서 얼마나 행복할까. 그런 소망으로 이제 이 책을 세상에 내놓는다. 2018년 7월 사진가 김녕만”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사진/작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