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같이 핀 배꽃

사진마을 2018. 08.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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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영 작가의 개인전 ‘배꽃의 노래(梨花靜歌)’가 10일부터 서울 충무로 갤러리 브레송에서 열린다. 18일까지. 2년 전에 김호영 작가는 ‘고요의 노래’로 개인전을 한 적이 있었다. 이번 전시는 ‘고요의 노래’ 2편이다.

 2년 전 전시 때 인터뷰에서 김호영 작가는 “어떤 형태를 찍고 있는데 그 중엔 바위도 있고 나무도 있고 얼음도 있다”라고 했다. 2년 전 전시가 그 중에서도 얼음이었고 이번엔 나무다. 지난번 전시를 본 관객이라면 이번 나무(배꽃의 이름을 따왔지만 나무다) 전시가 지난번의 연장선상이란 것을 단박에 알게 될 것이다. 그때 기사를 찾아보니 순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얼음이 녹으면 물이 되고 기화되면 기체가 된다. 얼음의 형태가 달라지는 것이다. 배꽃을 피운 배나무는 꽃이 피지 않은 배나무와 다른 모양을 띠게 된다. 순환하여 모든 것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갈 운명이라고 본다면 얼음과 나무가 다르지 않다. 우리 눈앞에, 카메라 앞에 펼쳐진 어떤 형태가 그 본질과 얼마나 다른지를 보자는 것이 아니다. 우리 눈앞에 펼쳐진 꽃나무와 꽃이 얼음과도 같고 바위와도 같다는 이야길 한다. 김호영 작가의 배꽃은 있다가 독자들께서 작가노트를 읽으면서 이해에 도움을 받게 되겠지만 처연한 꽃이다. 용트림하듯 휘돌아가는 가지에서 봄이라고 삐죽 꽃이 솟아오른 형상이다. 2년 전의 얼음꽃을 봤기 때문에, 그리고 연장선상에 있기 때문에 당연히 이 배꽃과 나뭇가지를 보면서 물의 흐름이 어느 순간 굳어서 얼음이 된 것처럼 어린 나무가 세월을 타면서 점점 가지가 굵어진 것이 우리 눈에 보이는 그 순간 나무가 얼음이요 얼음이 나무이며 이제 다음 고요의 노래 3편에서 만나게 될 바위가 될 것이다. 시간의 흐름은 사람이 볼 때만 주관적이다. 화산에서 뿜어나온 마그마가 바위를 녹이는 것을 보면 자연의 입장에서 시간의 흐름은 객관적이다. 60억 지구의 나이에서 보자면 바위도 변하고 나무도 변하고 물도 변할 것인데 그 중에 가장 긴 것이 결국 물이 아니겠는가. 나는 배꽃을 보면서 이런 생각들을 주절주절 한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사진/갤러리 브레송 제공
 
 

작가노트
 
    세상에는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수 없이 많으며, 이 과정을 비가역 과정이라 한다. 뱉어낸 말, 쏟아진 물, 터진 풍선 속의 가스도 돌이킬 수 없는 결과지만, 세월이라는 말로 표현하는 시간의 일방통행식 흐름은 누구도 돌이킬 수 없는 대표적인 비가역 과정이다. 앙리 카르티에-브레송이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한 방향으로 직진하는 시간의 한순간 숨결을 포착하는 것이다”라고 한 것처럼, 나도 매년 잠깐 왔다가 도망가는 봄을 내 의지와 상관없이 떠나보낸다는 상실감을 달래기 위해 재작년에도, 작년에도, 또 올해도, 봄의 숨결을 잡아 놓기 위해 카메라를 들었다. 
    
  내가 사는 동네는 물 많고 맛 좋은 배가 유명하다는 먹골이다.  약 20년 전까지는 이 동네를 시작으로 경기도까지 넓게 자리한 배 밭 덕분에 배 과수원 또는 배 밭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동네였으나, 주거단지 개발로 도시화가 진행된 후에는 봄에 제대로 된 배 밭에서 흐드러지게 핀 새하얀 배꽃을 구경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집 근처에 초라한 고목이나마 두어 곳의 배밭이 아직 남아 있어 올 봄에도 어김없이 가냘픈 하얀 꽃을 피워 봄의 숨결을 전해 준다는 것이다.  
  
   오랜 시간 그 자리를 지켜온, 고목이 된 배나무들에도 봄이 오면 어김없이 싹이 트고 꽃이 핀다. 고목이 되기까지 오랜 시간 동안 하늘을 향해 높이 뻗어 오르려는 몸부림이 얼마나 처절했기에, 뿌리를 땅에 박고 있어 움직일 수 없다는 좌절에 얼마나 힘들어 했기에, 이리 구불 저리 구불 옹이진 배나무의 몸짓이 한(恨)의 표현인 것 같아 가슴이 찡하다. 아직도 못 이룬 하늘을 향한 꿈을 이루기 위해 나무들은 올 봄에도 연약한 가지에 애처로운 하얀 배꽃을 피운다.
   
   나 아닌 존재와 관계 맺기는 대부분 시각적 관심으로부터 시작되며, 사물을 보고 느끼는 감정은 그간 관찰자의 경험과 처한 상황에 따라 좌우된다고 한다. 내게 고목에 핀 하얀 배꽃이 예쁘기보다는 애처롭게 보이는 것은 늙고 구부러진 배나무가 매서운 겨울 추위의 시련을 맨몸으로 이겨내고 피워낸 몇 송이의 가냘픈 꽃을 보아 달라는 배꽃의 노래를 내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고목에 핀 꽃들이 소리 없는 노래로 전하는 봄의 숨결을 사진을 통해 전해 본다.                   김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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