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공법이어서 되레 귀한 포토스토리의 정석

사진마을 2016. 04. 19
조회수 6927 추천수 0

사진전 ‘사진인을 찾아서 4 인천, 김보섭론’

생활 현장에서 ‘강제로’ 찍어낸 인물-공간-디테일 


kbs01.jpg » 수복호사람들

 

 저평가된 사진가들이 있다. 2016년 갤러리 브레송이 기획전 ‘사진인을 찾아서’ 시리즈를 시작한 여러 이유중의 하나가 이런 사진가들을 찾아서 소개하자는 것이다. 좋은 취지다. 4번째 사진가는 김보섭이다. ‘사진인을 찾아서 4 인천, 김보섭론’이 22일부터 30일까지 충무로 갤러리 브레송에서 열린다. 사진마을에서도 김보섭에 대해서 제대로 다룬 적이 없었으므로 이번이 사실상 처음 소개하는 자리가 되었다. 좀 더 일찍 소개하지 못하여 유감스럽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개인전을 마지막으로 연 것이 2010년이었고 그 이후 별다른 움직임을 포착하지 못했다.
이번 전시에는 ‘수복호사람들’, ‘시간의 흔적’, ‘바다사진관’, ‘양키시장’, ‘청관’, ‘한의사 강영재’까지 김보섭의 사진세계의 거의 모든 것이 걸린다. 마치 영화 어벤져스에 마블사의 슈퍼히어로들이 총출동한 것 같다.
  
 전시를 앞두고 김보섭과 전화로 인터뷰를 했다. 김보섭은 동인천에서 태어났고 지금은 연수동에서 살고 있는 인천 토박이다. 1970년대 중반에 사진을 시작했다. 제물포고등학교 다닐 때 사진동아리에 이름을 올려두었으나 정작 동아리 활동보다는 혼자서 사진을 찍고 다녔다. 그는 “적극적으로 사진을 시작하게 된 것은 70년대 후반쯤이다. 대학교 다니면서 친구들과 잘 어울려 지냈는데 어느 순간 예전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고 혼자 사진기 들고 우리나라 여행길에 나섰다. 진도에서 배 타고 들어가는 관매도에 갔고 강원도의 탄광에도 갔다. 없어져 가는 우리 문화, 풍속, 생활양식 등이 눈에 들어왔다 여행지에서 만난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찍었다. 이렇게 삼사 년 동안 너덧 번 여행을 하면서 사진을 찍었다. 인천에 들어온 서커스단도 기록했다. 지금 생각하면 혼자 있는 버릇이 사진에 깊이를 준 것 같다. 몰려다니는 것보다는 혼자 있길 즐겼다.”라고 말했다.

 
 대학을 졸업한 김보섭 작가는 커피숍도 하고 장사도 했지만 집에 늘 암실을 꾸려두었고 이사 다닐 때마다 암실을 버리지 않고 유지했고 지금의 작업실 ‘바다스튜디오’에 이른다. 이 대목에서 김보섭은 느닷없이 ‘바다사진관’ 이야길 꺼냈다.
 “북성부두에 나갔었다. 멀리 대성목재의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데 동화 속의 그림 같았다. 북성부두는 고등학생 때 친구들과 자주 놀러 갔던 곳이라 향수와 추억이 서린 곳이다. 그곳에서 뱃사람을 세워놓고 찍으려고 했는데 이게 잘 안되었다. 일하는 와중이니 바빠서 그랬을 것이다. 어쨌든 동화 속 그림 같은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싶었다. 배가 들어오면 생선을 부리는 작업을 하게 되니 구경꾼들이 많이 몰렸다. 그래서 구경꾼을 붙들고 플래시를 쳐서 사진을 찍었다. 이 작업의 이름을 바다사진관이라고 불렀다. 사진관의 배경지처럼 굴뚝이 보이고 플래시를 쳤으니 스튜디오와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모자 쓴 여자분이 있다. 그게 사실은 비가 와서 비닐봉지로 머리를 씌운 것이다.”
  
 서울서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 후 다시 인천으로 돌아와서 자리를 잡았다. 청관, 부두, 수복호, 양키시장 등 사진은 계속 찍었으나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했으니 사진집을 내거나 발표를 하지 않았을 뿐이다.
  

kbs02.jpg » 수복호사람들

kbs03.jpg » 수복호사람들

kbs04.jpg » 시간의 흔적

kbs05.jpg » 바다사진관

kbs06.jpg » 양키시장
 

-인천을 주로 찍으려고 작심을 했던 것인가?
 “굳이 서울과 경쟁을 하려던 것은 아니다. 인천에서 났고 결혼 후 인천으로 돌아와서 보니 내 주변, 그러니까 내가 주로 다니던 곳에서 반경 500미터 안에 모든 것이 있었다. 차이나타운, 북성부두, 양키시장 등이 모두 내 생활공간에 있으니 찍었을 뿐이다. 굳이 사진 작업을 위해서 그곳을 찾았다기보다는 내 주변의 친숙한 공간이다. 다만 나는 대학 다닐 때 사진 동아리를 했고 한정식 선생의 워크숍 경험도 있었으니 사진훈련이 되어있었다는 점이 좀 다르다. 사실적인 것을 찾으려 했다”
  
 -이번 전시에 6개의 작은 제목들은 그동안 발표했던 개인전이나 사진집의 제목과 일치한다. 차이나타운(청관)이 1995년으로 가장 먼저인데 작업의 순서가 어떻게 되는가?
 “그게 발표를 그렇게 했을 뿐이지 거의 맞물려 있다. 수복호사람들을 찍을 때 한의사 강영재도 찍고 있었다. 양키시장은 수시로 다녔던 곳이고 또한 이번엔 빠졌지만 신포동 다복집은 우리 윗세대 선배들 시절부터 예인들이 즐겨 찾던 단골 대폿집이니 나도 자주 갔다. 특히 다복집의 할아버지는 방송국에서 촬영 온다고 하면 도망 다닐 정도로 찍히기 싫어하신 분인데 여러 번 도전해서 겨우 허락받았다.”
  
 -지금은 무슨 작업을 하고 있는가? 예전 작업은 마무리된 것인가?
 “청관이나 양키시장, 만석동.... 사진들은 전시도 했고 책도 냈지만 끝이 없는 작업이다. 아직도 그분들이 거기에 있으니 끝이 날 수 없는 작업이다. 내가 죽으면 끝이 날까? 지금도 여전히 찍고 있다. 발표하지 않는 것을 묻는다면 신포동, 신포시장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여기가 서울로 치면 옛날 명동쯤 된다. 신포동의 옛날 어깨들이 지금 70대 80대가 되었다. 그분들을 요즘 기록하고 있다. 나이 먹고 술 드시는 인천의 선배들을 찍고 있다는 뜻이다. 최불암, 송창식 이런 분들이 모두 인천 출신이다. 연이 닿는다면 한번 촬영하고 싶다.”
  
 -사진을 찍었던 곳이 지금은 많이 변했을 것 같은데 어떤가?
 “수복호사람들의 수복호는 배 이름이다. 이북에서 피난 온 할머니들이 30년 동안 굴 따는 작업을 할 때 탔던 배다. 만석부두에 가면 이분들이 썼던 굴막이 40여 곳 있다. 굴막이란 채취한 굴 껍데기를 까는 작업을 하는 자그마한 공간이다. 나무판자와 비닐로 바람을 막았다. 지금 이곳이 방치되어 부서지기 시작해 절반 정도밖에 안 남았다. 인천의 한 역사인데 박물관을 만들어 보존하면 좋겠구먼.... 이제 수복호는 낚싯배로 쓴다고 들었다. 양키시장의 경우엔 그 할머니들이 그대로 남아 계신다. 이곳도 열악하다. 다른 지역의 양키시장에 비해 찢어지고 그렇다. 인천으로 사진을 찍으러 오겠다면 북성부두, 만석부두, 화수부두를 추천한다. 아직 눈여겨볼 만하다”

 

kbs07.jpg kbs08.jpg » 청관 kbs09.jpg kbs10.jpg » 한의사 강영재
  
 이번에 전시되는 김보섭의 작업은 다른 사진가에 비해 특이한 점이 있다. 수복호사람들이나 양키시장, 청관, 한의사 강영재 등을 보면 어떤 형식 같은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사람들의 유형학적인 인물이 있고 그 사람들이 사는, 거주하는, 생활하는 공간이 있다. 그리고 그 공간에서 발견되는 세부묘사(디테일)가 있다.

  예를 들어 한의사 강영재의 경우, 안경 낀 얼굴의 클로즈업사진이 있고 눈 내리는 날 기와집이 있고 사용하던 약재, 한의원에 필요한 도구 등을 찍었다. 청관을 보면 중국에서 온 화교들의 단체 사진이 있고 차이나타운의 거리가 있고 중국 고유의 인형이 있다. 인물만 찍었던 ‘바다사진관’ 시리즈와 부두의 공장을 찍은 ‘시간의 흔적’을 제외하면 모두 그렇다. 이 방식은 사람을 주인공으로 하는 포토스토리의 전형적인 매뉴얼을 보는 듯하다.

 

  사실상 스토리텔링의 교과서적 접근이기도 하여 별로 새로울 것도 없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최근 작가들의 작업은 공간이든 인물이든 유형학에 치우치는 경향이 있다. 차렷하고 찍은 인물사진들의 반복은 아직 사진이 귀하던 아우구스트 잔더 시절에나 신선했고 의미가 있었다. 지금은 스마트폰을 들고 있는 누구나 셀피(스스로 찍는 자화상)를 찍는 시대이며 인물에 대한 규정 조차도 스스로 하고 있다.

  공간의 유형학도 마찬가지다. 그것만 가지고는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재미는 없다. 에드워드 루샤의 ‘26개의 주유소’에서 신선했는데 아직도 답습하고 있는 것에 대해 나는 별로 흥미가 없다. 숱하게 많은 사진가들이 재개발 지역의 집을 찍고 방을 찍고 버려진 동네를 찍는다. 문제의 핵심은 다들 비슷하게 찍고 있다는 데 있다. 자신의 작업 20장이 서로 비슷하고 그 사람의 작업이 다른 사람의 작업과 비슷하다면 굳이 사진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김보섭의 작업은 이와 달라서 좋다. 이제는 이런 정공법이 도리어 귀해졌다. 차이나타운이 있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있으며 그 사람들이 쓰던 물건이 있다. 사람이 있어 강렬하고 손때가 묻어있으니 의미가 있고 공간이 있으니 흔적이 남았다. 사람은 세상을 뜨지만 자리는 남아있다. 포토스토리의 작법이 왜 생겼는지, 교과서는 왜 교과서인지, 기본기는 왜 기본기라고 부르는지 되새겨볼 일이다.
  
 김보섭 작가에게 치밀하게 기획하여 사람, 공간, 세부묘사를 찍어낸 것이 아니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별 계획 없이 찍다 보니 이것저것 다하게 된 거지. 사람도 찍는다. 인천의 담벼락도 찍는다. 빈 거리에서도 사람을 느낄 수 있다. 다복집의 술잔은 단골들의 손에 의해 닳았던 것 아니겠는가?”라고 말했다.
  
 요즘 이름하여 작가라고 하는 사람들은 반쪽짜리 사진을 찍고 있다. 김보섭은 제대로 된 사진을 찍고 있다. 눈빛출판사 이규상 대표는 김보섭에 대해 “김보섭 사진의 주제는 언제나 그의 고향 인천이다. 바다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과 화교들의 생활상을 사진으로 기록해 오고 있다. 그의 사진은 다큐에 기반을 두고 있으면서도 스스로 해석해 재현하는 능력을 지닌 독특한 사진가이다”라고 평했다.
  
 인터뷰 끝에 독자들이 궁금해할 것 같아서 물었다.
 -사람들을 찍을 때 어떻게 접근하는가?
 “강제로 찍는다. 설명하거나 양해를 미리 구하거나 하면 안 찍으려고 한다. 완전 시골이면 몰라도 인천만 해도 사람들은 카메라를 피한다. 그래서 세게 나간다. ‘여기 보세요’라고 하면 카메라를 쳐다볼 것이고 그때 찍는다. 찍고 나서 설명하고 허락을 받는다. 친해진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 내 사진의 공간은 내가 사는 공간이고 나는 이곳의 주민이다. 그들도 이곳의 주민이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List of Articles
전시회

걸어서 몸으로 마음으로 생각 속으로 [1]

  • 사진마을
  • | 2015.12.10

남인근씨 사진전 ‘감정 조각’  “담담하게 때로는 시리도록 아프거나 벅찬 행복의 모습들”  정진호씨 사진전 ‘서울 걷기’  “마음 내키는 ...

전시회

사람이 없어도 사람이 있는 풍경

  • 곽윤섭
  • | 2015.11.09

김문호 개인전 ‘웨이스트랜드(The Wasteland)’   다큐사진가의 숙명인 초상권 탓에 삶의 흔적 포착  “신음하는 게 사람뿐이랴…산과 강, 바람...

사진책

증오와 탐욕이 일상을 유린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1]

  • 곽윤섭
  • | 2015.07.10

김상훈 사진전 ‘살기 품은 풍경’   자밀라 자말(42)은 서럽게 울었다. 생각보다 훨씬 처참한 폐허로 변해버린 집 앞에서 며칠 전 잃은 가족...

전시회

바람인듯 바람 아닌 바람 같은 사라짐 [1]

  • 곽윤섭
  • | 2015.02.16

김남효 사진전 ‘까마귀 나는 대숲’  울산석유화학공단의 업체에서 일하는 김남효(48)씨가 3월 6일부터 16일까지 서울 충무로...

전시회

사람이 녹아든 풍경, 풍경이 배어난 사람

  • 곽윤섭
  • | 2014.10.13

임종진 사진전 <흙 물 그리고 바람> 낯설다가 익숙해져 버린 기억의 저편, 기본색은 애정  임종진의 개인전 <흙, 물, 그리고 바람>이 <갤러리...

전시회

없어서 있는 특별한 사소함 [1]

  • 곽윤섭
  • | 2014.08.29

신현순 개인전 ‘낫씽(Nothing)’ 빛과 그림자, 어둠과 실루엣이 그린 여백 한지의 질감에 터실터실 되살아나는 기억    신현순의 개인전 <...

전시회

길이 끝난 곳에 길이 시작된다

  • 곽윤섭
  • | 2014.06.24

김진석 책·사진전 ‘걷다 보면’ 쉬며 숨고르기도 하고 기다리기도 하고 뭔가 깨닫기도 하고 잊어버리기도 하고   사진가 김진석이 일곱 번...

전시회

다큐가 풍경을 만났을 때

  • 곽윤섭
  • | 2014.05.29

신동필 초대전 <다큐멘터리사진가의 풍경사진전 1: 기록과 기억의 풍경> 찍을 건 많은데 잘 풀리지 않아 10년동안 잠적 1달 히말라야 명상 끝에 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