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 강의실 시즌2] <22강> 노동
때론 기쁨 때론 고통, 같은 일도 사람 따라 달라
얼굴 속에 고스란히…‘생활의 달인’에 땀의 지혜

처음 그의 사진을 봤을 땐 사진에 등장한 구성 요소들을 개미떼라고 짐작했습니다. 줄을 지어 묵묵히 언덕을 기어올라가는 모습은 분명히 일개미들의 행렬이었습니다. 그러나 옆에 있는 사진을 보고 다시 그 사진을 보면서 실체를 깨달았습니다. 거대한 금광 계곡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이었습니다. 거기에선 개인의 인격은커녕 존재감조차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거대한 자본의 위력 앞에 기계부품처럼 전락한 숱한 노동현장의 노동자들을 기록한 세바스티앙 살가도의 대표 테마 중 하나인 노동자(Workers)에 실려있는 브라질 금광노동자들의 이미지를 설명드린 것입니다. 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 타임즈에도 노동의 본질적 가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웃기지만 편히 웃을 수 없는 명장면들이 등장합니다. 컨베이어 벨트에서 하루종일 나사못을 죄는 채플린은 전체 공정의 한 부분을 담당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습니다.


동작이 크고 도구가 두드러지면 찍기 쉽다
이번 테마는 노동(노동자)입니다. 생산직이든 사무직이든 모든 형태의 노동은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을 유지시키는 원동력입니다. 원시시대엔 야생동물을 사냥하고 농작물을 재배하여 끼니를 이어나가는 노동이 거의 대부분이었고 가장 중요했습니다만 산업화시대를 거치고 현재의 정보화시대에 이르러 노동의 종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앞으로 더 세분화될 전망입니다. 종류와 상관없이 모든 노동은 유형무형의 재화를 생산한다는 공통점이 있으며 모두 인간의 삶을 위해 필요한 내용들입니다. 위에서 제시한 금광의 노동자나 공장의 노동자와 마찬가지로 가사노동 또한 꼭 필요하고 가치 있는 활동입니다.
‘테마-노동’은 접근하기가 쉬운 편입니다. 일단 주변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사무실에서 하루종일 컴퓨터를 붙들고 씨름하는 IT 업종의 종사자도 노동자이며 점심을 먹으러 간 식당에서 일하는 종업원들도 노동을 하고 있습니다. 노동 혹은 노동자를 사진으로 표현할 땐 쉽고 어려움의 차이가 뚜렷합니다.
사진으로 옮기기 쉬운 노동은 동작이 크고 노동의 도구가 눈에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업종의 노동입니다. 조선소에서 큰 해머를 들고 망치질을 하는 모습, 불꽃을 사방으로 날리며 용접을 하는 모습은 누가 찍어도 그림이 되는 노동입니다. 삽이나 곡괭이를 들고 땅을 파는 장면, 호미나 낫을 들고 잡초를 제거하는 장면은 독특한 도구의 모양으로 인해 노동의 광경이 잘 드러납니다. 소방호스를 들고 화재를 진압하는 소방수, 큰 빗자루를 들고 거리를 쓰는 환경미화원은 그들이 입고 있는 옷 자체만으로도 노동의 의미가 전달되는 경우입니다.
노동의 냄새나는 대상 찾아서 인물과 더불어
벌써 눈치를 챘겠지만 이런 노동을 잘 찍는 방법은 일목요연합니다. 우선 동작이 클 것, 그리고 도구가 잘 보이는 앵글을 잡을 것, 제복이 보이도록 할 것 등에 유의하면 노동(노동자)을 표현하는데 어려움이 없습니다. 사진은 동영상이 아닌 한 장의 정지화면입니다. 그러므로 실제로는 큰 움직임의 노동이 벌어진다고 하더라도 찍힌 사진에서 순간적으로 흐름이 끊어지면 노동이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몇 시간을 쉬지 않고 허리를 굽힌 채 땀을 흘리며 모내기를 하는 농부들을 찍는다고 합시다. 허리를 굽혔을 때는 누르지 않다가 어느 한순간 허리를 펴고 한숨을 돌리는 장면을 찍는다면 완성도가 높아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노동을 찍든 활동의 패턴을 관찰해두는 것이 노하우이며 필수적인 자세입니다. “이 동작 다음엔 이런 동작이 온다”라는 것을 예측하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동작이 크지 않은 일을 하는 노동자들이 더 많은 사회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럴 때는 인물의 주변 환경에 의존하여 노동을 표현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인물을 둘러싼 환경에서 노동의 냄새를 느낄 수 있는 대상을 찾아서 그 대상과 더불어 인물을 담는 것입니다.
선풍기가 돌아가는 사무실, 그날의 노동을 위해 출근하는 노동자들로 가득한 콩나물버스와 지하철도 좋은 소재가 됩니다. 노동자가 벗어놓은 장갑, 땀에 젖은 수건, 작업복 등이 유용한 대상이 됩니다. 더불어 재봉틀, 주방기구 등의 작업환경도 좋은 대상이 됩니다.

얼굴 속에 노동의 흔적 고스란히

지금 서울 한미미술관에서는 워커 에반스(1903~1975)의 사진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에반스는 1930년대 미국이 대공황의 시련을 겪고 있을 때 미국 정부의 농업안정국(FSA)에 고용되어 피폐해진 농민과 노동자를 찍은 다큐멘터리 사진가입니다. 이때 에반스와 더불어 활동했던 작가로는 명작 ‘이민자 어머니(Migrant Mother)’로 유명한 도로시아 랭이 있습니다.
전시장에 걸린 워커 에반스의 작품엔 노동자의 적나라한 표정을 담은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얼굴만 보고 있어도 밑바닥 인생의 노동이 떠오른다는 점에서 여러분의 시각 속에 담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좋은 사진을 반복해서 보는 것이 사진을 잘 찍는 지름길입니다.
사진이 비교적 늦게 전파되었지만 한국이라고 왜 노동의 얼굴이 없겠습니까? 일찍이 1940년대에 벌써 다큐멘터리 기법으로 부두노동자를 찍었던 임석제가 있었고 한국전쟁 이후엔 부산 자갈치시장의 상인들을 찍은 최민식이 있었습니다. 육명심, 윤주영의 작품에서도 일하는 사람들의 강력한 표정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특히 육명심의 작품집 ‘문인의 초상’엔 시인, 소설가 등의 인물이 줄줄 등장합니다. 문인들의 활동을 노동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에 대해선 이론의 여지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인들의 창작 또한 결코 쉽지 않은 지적인 생산활동이란 점에서 권해드릴 수 있는 인물사진집입니다.
치열했던 시대엔 많았는데 지금은 왜 드물까
시대를 조금 건너와 1980~1990년대의 노동현장엔 수십 명의 사진가와 사진기자들이 역사를 기록했습니다. 너무 쉽게 잊히고 있지만 울산의 치열했던 대규모 노동현장을 다룬 사진들은 많이 남아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활동하는 대표적인 다큐멘터리 사진가들 중에서 노동이나 노동자의 얼굴이나 노동 현장을 전문적으로 기록하는 이들은 별로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하나의 사회적 현상으로 자리 잡은 외국인노동자들의 거주공간과 인물을 찍는 사람들도 있고 크고 작은 노동현장의 비정규직 노동자를 다루는 사진가들은 물론 있습니다만 발표도 뜸하고 또 발표의 기회도 잘 잡지 못한 채 외면당하고 있습니다.
전시회를 열거나 사진집을 만들면 이를 적극적으로 소화해줘야 사진가들이 설 땅이 생깁니다. 분명히 현역 사진가들이 한국의 노동현장과 노동자를 외면한다는 것은 문제입니다. 그러나 급격히 성장한 한국사진문화의 밑변에는 수백만 DSLR 사용자를 포함한 천만 생활사진가들이 포진하고 있다는 것에서 문제를 풀어나가야 합니다.
한국 최고의 취미활동으로 성장한 사진을 더욱 풍성하게, 시대를 대표하는 문화의 차원으로 승화시키기 위해선 천만 생활사진가들이 앞장서야합니다. 부디 볼 만한 한국 사진가들의 사진전시장이 꽉꽉 들어차고 그들의 사진집도 꾸준히 팔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곽윤섭기자 kwak1027@hani.co.kr
때론 기쁨 때론 고통, 같은 일도 사람 따라 달라
얼굴 속에 고스란히…‘생활의 달인’에 땀의 지혜

처음 그의 사진을 봤을 땐 사진에 등장한 구성 요소들을 개미떼라고 짐작했습니다. 줄을 지어 묵묵히 언덕을 기어올라가는 모습은 분명히 일개미들의 행렬이었습니다. 그러나 옆에 있는 사진을 보고 다시 그 사진을 보면서 실체를 깨달았습니다. 거대한 금광 계곡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이었습니다. 거기에선 개인의 인격은커녕 존재감조차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거대한 자본의 위력 앞에 기계부품처럼 전락한 숱한 노동현장의 노동자들을 기록한 세바스티앙 살가도의 대표 테마 중 하나인 노동자(Workers)에 실려있는 브라질 금광노동자들의 이미지를 설명드린 것입니다. 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 타임즈에도 노동의 본질적 가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웃기지만 편히 웃을 수 없는 명장면들이 등장합니다. 컨베이어 벨트에서 하루종일 나사못을 죄는 채플린은 전체 공정의 한 부분을 담당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습니다.


동작이 크고 도구가 두드러지면 찍기 쉽다
이번 테마는 노동(노동자)입니다. 생산직이든 사무직이든 모든 형태의 노동은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을 유지시키는 원동력입니다. 원시시대엔 야생동물을 사냥하고 농작물을 재배하여 끼니를 이어나가는 노동이 거의 대부분이었고 가장 중요했습니다만 산업화시대를 거치고 현재의 정보화시대에 이르러 노동의 종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앞으로 더 세분화될 전망입니다. 종류와 상관없이 모든 노동은 유형무형의 재화를 생산한다는 공통점이 있으며 모두 인간의 삶을 위해 필요한 내용들입니다. 위에서 제시한 금광의 노동자나 공장의 노동자와 마찬가지로 가사노동 또한 꼭 필요하고 가치 있는 활동입니다.
‘테마-노동’은 접근하기가 쉬운 편입니다. 일단 주변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사무실에서 하루종일 컴퓨터를 붙들고 씨름하는 IT 업종의 종사자도 노동자이며 점심을 먹으러 간 식당에서 일하는 종업원들도 노동을 하고 있습니다. 노동 혹은 노동자를 사진으로 표현할 땐 쉽고 어려움의 차이가 뚜렷합니다.
사진으로 옮기기 쉬운 노동은 동작이 크고 노동의 도구가 눈에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업종의 노동입니다. 조선소에서 큰 해머를 들고 망치질을 하는 모습, 불꽃을 사방으로 날리며 용접을 하는 모습은 누가 찍어도 그림이 되는 노동입니다. 삽이나 곡괭이를 들고 땅을 파는 장면, 호미나 낫을 들고 잡초를 제거하는 장면은 독특한 도구의 모양으로 인해 노동의 광경이 잘 드러납니다. 소방호스를 들고 화재를 진압하는 소방수, 큰 빗자루를 들고 거리를 쓰는 환경미화원은 그들이 입고 있는 옷 자체만으로도 노동의 의미가 전달되는 경우입니다.

노동의 냄새나는 대상 찾아서 인물과 더불어
벌써 눈치를 챘겠지만 이런 노동을 잘 찍는 방법은 일목요연합니다. 우선 동작이 클 것, 그리고 도구가 잘 보이는 앵글을 잡을 것, 제복이 보이도록 할 것 등에 유의하면 노동(노동자)을 표현하는데 어려움이 없습니다. 사진은 동영상이 아닌 한 장의 정지화면입니다. 그러므로 실제로는 큰 움직임의 노동이 벌어진다고 하더라도 찍힌 사진에서 순간적으로 흐름이 끊어지면 노동이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몇 시간을 쉬지 않고 허리를 굽힌 채 땀을 흘리며 모내기를 하는 농부들을 찍는다고 합시다. 허리를 굽혔을 때는 누르지 않다가 어느 한순간 허리를 펴고 한숨을 돌리는 장면을 찍는다면 완성도가 높아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노동을 찍든 활동의 패턴을 관찰해두는 것이 노하우이며 필수적인 자세입니다. “이 동작 다음엔 이런 동작이 온다”라는 것을 예측하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동작이 크지 않은 일을 하는 노동자들이 더 많은 사회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럴 때는 인물의 주변 환경에 의존하여 노동을 표현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인물을 둘러싼 환경에서 노동의 냄새를 느낄 수 있는 대상을 찾아서 그 대상과 더불어 인물을 담는 것입니다.
선풍기가 돌아가는 사무실, 그날의 노동을 위해 출근하는 노동자들로 가득한 콩나물버스와 지하철도 좋은 소재가 됩니다. 노동자가 벗어놓은 장갑, 땀에 젖은 수건, 작업복 등이 유용한 대상이 됩니다. 더불어 재봉틀, 주방기구 등의 작업환경도 좋은 대상이 됩니다.


얼굴 속에 노동의 흔적 고스란히

지금 서울 한미미술관에서는 워커 에반스(1903~1975)의 사진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에반스는 1930년대 미국이 대공황의 시련을 겪고 있을 때 미국 정부의 농업안정국(FSA)에 고용되어 피폐해진 농민과 노동자를 찍은 다큐멘터리 사진가입니다. 이때 에반스와 더불어 활동했던 작가로는 명작 ‘이민자 어머니(Migrant Mother)’로 유명한 도로시아 랭이 있습니다.
전시장에 걸린 워커 에반스의 작품엔 노동자의 적나라한 표정을 담은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얼굴만 보고 있어도 밑바닥 인생의 노동이 떠오른다는 점에서 여러분의 시각 속에 담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좋은 사진을 반복해서 보는 것이 사진을 잘 찍는 지름길입니다.
사진이 비교적 늦게 전파되었지만 한국이라고 왜 노동의 얼굴이 없겠습니까? 일찍이 1940년대에 벌써 다큐멘터리 기법으로 부두노동자를 찍었던 임석제가 있었고 한국전쟁 이후엔 부산 자갈치시장의 상인들을 찍은 최민식이 있었습니다. 육명심, 윤주영의 작품에서도 일하는 사람들의 강력한 표정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특히 육명심의 작품집 ‘문인의 초상’엔 시인, 소설가 등의 인물이 줄줄 등장합니다. 문인들의 활동을 노동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에 대해선 이론의 여지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인들의 창작 또한 결코 쉽지 않은 지적인 생산활동이란 점에서 권해드릴 수 있는 인물사진집입니다.
치열했던 시대엔 많았는데 지금은 왜 드물까
시대를 조금 건너와 1980~1990년대의 노동현장엔 수십 명의 사진가와 사진기자들이 역사를 기록했습니다. 너무 쉽게 잊히고 있지만 울산의 치열했던 대규모 노동현장을 다룬 사진들은 많이 남아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활동하는 대표적인 다큐멘터리 사진가들 중에서 노동이나 노동자의 얼굴이나 노동 현장을 전문적으로 기록하는 이들은 별로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하나의 사회적 현상으로 자리 잡은 외국인노동자들의 거주공간과 인물을 찍는 사람들도 있고 크고 작은 노동현장의 비정규직 노동자를 다루는 사진가들은 물론 있습니다만 발표도 뜸하고 또 발표의 기회도 잘 잡지 못한 채 외면당하고 있습니다.
전시회를 열거나 사진집을 만들면 이를 적극적으로 소화해줘야 사진가들이 설 땅이 생깁니다. 분명히 현역 사진가들이 한국의 노동현장과 노동자를 외면한다는 것은 문제입니다. 그러나 급격히 성장한 한국사진문화의 밑변에는 수백만 DSLR 사용자를 포함한 천만 생활사진가들이 포진하고 있다는 것에서 문제를 풀어나가야 합니다.
한국 최고의 취미활동으로 성장한 사진을 더욱 풍성하게, 시대를 대표하는 문화의 차원으로 승화시키기 위해선 천만 생활사진가들이 앞장서야합니다. 부디 볼 만한 한국 사진가들의 사진전시장이 꽉꽉 들어차고 그들의 사진집도 꾸준히 팔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곽윤섭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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