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허락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곽윤섭 2010. 08. 05
조회수 11186 추천수 0
[미션 강의실 시즌 2] <21강> 삶
희노애락애오욕 ‘칠정’은 벗어야 할 족쇄일까
생로병사의 한 평생, 인생은 일곱 빛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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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지방에 볼 일이 있어 고속버스를 타고 여행을 떠났습니다. 현지에 도착해야 하는 시간을 계산하니 점심을 거를 수 밖에 없어서 고민 끝에 사이다 한 병과 삶은 계란을 챙기고 버스에 올랐습니다. 오래전 초등학교 시절의 소풍 배낭이 기억나서 픽 웃음이 나왔습니다. 낮시간이라 사람이 많지 않은 버스에서 편하게 자리 잡고 점심을 때우려다 문득 셔터를 눌러두었습니다.
 
너무나 진부한 유머가 떠올랐습니다. “삶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삶은 계란”이란 답을 하는 그런 썰렁한 유머 말입니다. 생각만 해도 손발이 오그라드는 유치한 표현이지만 그날 사진을 찍는 순간엔 조금 진지했습니다. 뭐가 그렇게 바쁘다고 밥 한 끼 제대로 못 먹고 동분서주해야 하는 신세가 쓸쓸했습니다. 한편으로는 그래도 할 일이 있다는 것은 다행이라고 위안하면서 사진을 찍고 계란 세 개를 소금에 찍어 맛있게 먹었습니다.
 
 
역사상 최고의 사진전시인 ‘인간가족’의 교훈
 
삶(인생)은 영원한 사진의 테마입니다. 사진 역사상 가장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끼쳤던 사진전시인 ‘인간가족(The Family of Man)‘의 테마 역시 인간의 생로병사였습니다. 사진을 찍는 것은 사람입니다.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 그 자신이며 자신과 주변의 사람들이 태어나고 늙고 병들어 세상을 떠나는 과정이야말로 피할 수 없는 운명이자 테마입니다.

전시회에 등장한 사진들을 거의 그대로 책으로 만든 것이 사진집 인간가족입니다. 전시는 1955년(한국 전시는 1957년)에 열렸으니 제가 직접 볼 기회는 없었고 사진책 ‘인간가족’을 끼고 앉아서 수시로 보고 있습니다. 결혼식을 하는 장면, 임신부의 기도, 아기가 태어나는 순간, 그리고 아이들이 골목에서 노는 광경 등으로 책은 이어집니다.
 
모든 사진들이 소중한 기록입니다만 그 사진엔 대단한 기법이나 특이한 소재나 빼어난 경치가 담겨있진 않습니다. 등장인물 중에서도 유명인사나 아름다운 남녀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인간가족에 들어있는 모든 사진은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장면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그 책을 보고 여러 번 놀랐습니다. 우선 사진 아래에 적힌 사진가의 이름을 보고 놀랐습니다. 카르티에 브레송, 로버트 카파, 유진 스미스, 윌리 호니스, 로베르 드와노 등 누구의 이름을 먼저 불러야할지 가늠하기도 힘든 당대 최고의 거장들이 모두 전시에 사진을 출품했습니다.
 
또 하나 놀랐던 것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무명작가 혹은 생활사진가들의 사진도 당당히 포함되어있다는 점입니다. 사진의 내용이 중요할 뿐, 작가의 명성에 구애받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전시기획자인 에드워드 스타이켄의 의도가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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갖다붙이면 삶의 표현 아닌 건 없지만…

 
이번 테마는 삶(인생)입니다. 삶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 자리를 빌려 철학강의를 할 생각은  없습니다. 저는 그런 이야길 할 자격도 없고 또 잘 알지도 못합니다. 대신 삶이란 테마를 사진으로 옮기는 방법에 대해서는 말씀을 드려야만 합니다. 사람이 하는 모든 행위가, 사람이 사는 그 자체가 인생이므로 사람이 들어있는 사진은 모두 삶(인생)을 표현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간다면 사람이 굳이 들어있지 않더라도 사람이 남긴 인공적인 흔적은 모두 사람과 관계된 것이니 넓게 봐서 삶의 흔적(지난번 테마)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는 “테마로 사진찍기”의 취지에 맞지 않는 궤변이 될 것이고 삼라만상, 우수마발이 모두 테마에 들어맞는다는 억지스러운 주장이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좁혀서 설명하겠습니다.
 
삶을 사진으로 표현할 때 기본적인 조건은 사진에서 인간의 정서를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사람이 가지는 일곱 가지 감정을 칠정이라 부르며 희노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欲)이 그 내용입니다. 풀어보면 기쁨, 노여움, 슬픔, 즐거움, 사랑, 미움, 욕심의 일곱 가지 감정입니다. 그 외의 감정도 있을 것 같습니다만 어쨌든 이런 감정들을 사진에 담아낼 수 있어야 삶(인생)을 테마로 승화시켰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제 삶을 테마로 표현하는 것이 한결 편하게 다가올 것입니다.
 
희(喜)-기쁨: 장난감을 들고 기뻐하는 아이들의 얼굴 표정, 거리에서 월드컵축구를 응원하다 우리 선수가 골을 넣었을 때 춤을 추며 기뻐하는 사람들이 곧 기쁨을 나타내는 사진입니다.
 
노(怒)-노여움: 별로 사진으로 찍고 싶지 않은 순간들입니다만 화를 내는 모습이 해당할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물고 있던 시가를 뺏겨서 분노하고 있던 처칠의 초상사진(유서프 카쉬 작)이 대표적 장면입니다. 텔레비전을 보면 정치인들끼리 분노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거리에서는 정치인들 때문에 분노한 사람들의 시위장면에서도 그런 표정을 읽을 수 있습니다.

애(哀)-슬픔: 사랑하던 가족과 이별하게 되었을 때, 늘 가까이서 지내던 반려동물이 떠나갈 때 사람들은 슬퍼합니다. 눈물을 흘립니다. 사진집-인간가족은 2차대전과 한국전쟁이 끝난 뒤에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전쟁으로 인한 슬픔의 순간들이 많이 포함되어있습니다.
 
락(樂)-즐거움: 결혼식, 결혼식의 피로연이 떠오릅니다. 기쁨과 즐거움의 차이에 대해선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검색해보니 국어사전에선 거의 비슷하게 풀고 있고 실제로 언중들도 혼용하고 있습니다. 다만 기쁨의 눈물이란 표현은 있어도 즐거움의 눈물이란 표현은 쓰지 않으니 두 단어의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어떤 상황이나 자극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으로 나오는 것은 기쁨이며 그 상황을 추스른 후, 어느 정도 절제된 감정이 즐거움이 아니냔 뜻입니다. 그런 기준으로 보자면 큰 동작이 없고 표정에도 변화가 없지만 강태공은 낚시를 즐긴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음식을 즐길 수도 있고 어떤 책이나 음악을 즐길 수도 있겠습니다.
 
애(愛)-사랑: 따로 설명이 없어도 누구나 알 수 있는 감정입니다. 뭘 찍어야 할지도 잘 알고들 있을 것입니다.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 이성 간의 사랑, 같은 직장, 학교, 구성원들끼리의 동료애, 자연과 환경에 대한 사랑 등 여러 가지 장면이 떠오릅니다.
 
오(惡)-미움: 노여움과 더불어 역시 별로 찍고 싶지 않은 감정입니다만 예를 들자면 미운 사람끼리의 감정이 되겠습니다.
 
욕(欲)-욕심: 사람들은 누구나 욕심이 있습니다. 종교인들조차도 욕심을 완전히 버리는 것이 힘들다고 합니다. 청렴하기로 소문났던 전 태국 방콕의 시장 짬롱도 두리안이란 열대 과일에 대한 욕심만은 버리기 어려웠다고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과일이나 음료수를 놓고 다투는 어린 아이들의 모습도 욕심을 찍은 사진이 될 것입니다. 그 외 인간의 탐욕 때문에 벌어지는 여러 가지 현상을 찍는 것도 욕심을 표현하는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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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가족 링크>

-전시의 배경에 관해서
-사진을 찾아볼 수 있는 곳
-유서프 카쉬의 처칠 사진을 볼 수 있는 곳


곽윤섭기자 kwak1027@hani.co.kr 

◈ 금주의  미션 ㅣ 삶을 찍어라
 
이번 테마는 삶입니다. 사람의 삶을 사진으로 표현해봅시다.
인간의 대표적인 일곱 가지 감정으로 설명을 했지만 막상 삶을 찍는다는 것이 어렵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어쩐지 인생이라고 하면 뭔가 고뇌에 가득 차고 비애감이 느껴지는 그런 사진만 떠오를 수 있습니다. 해가 넘어가는 오후, 시장의 구석에서 별로 담긴 것도 없는 수레를 끌고 가는 허리 굽은 할머니가 떠오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넓게 보고 깊게 생각하여 다양한  삶을 발견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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