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서면 아름답지만, 잘못 세우면 독선 ‘두 얼굴’

곽윤섭 2010. 07. 15
조회수 6505 추천수 0
[미션 강의실/시즌2 ]<19강> 질서
순리와 파격은 역사 이끈 두 바퀴
일평생 살면서 줄 몇 번이나 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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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까지, 그리고 그 후로도 오랫동안 대한민국의 고등학교엔 교련수업이란 것이 있었습니다. 군인들이 입는 군복은 아니지만 그와 유사한 느낌의  표범무늬 교련복을 입고 일주일에 한두 차례 군대식 훈련을 받았습니다. 목총을 들고 총검술을 했던 기억도 납니다.
 
교련의 추억, 시위의 추억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훈련은 줄을 지어 행진하는 것이었습니다. “‘오와 열’을 맞춰!”라는 이야길 귀가 따갑도록 들으면서, ‘오와 열’이 틀리면 기합을 받기도 하면서 운동장을 연병장이라고 부르며 돌고 또 돌았습니다. 여러 학생이 모인 곳이니 틀리는 사람은 늘 있기 마련이었고 얼차려를 받는 일이 흔했습니다.
 
“어떻게 니들은 줄도 하나 못 맞추나? 질서없는 놈들.” 교련선생님의 잔소리는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고 질서란 것에 대해 반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줄을 맞춰 걷는다는 것이 싫었다는 말입니다.
 
대학에 들어갔고 군에 입대했으며 어느덧 세월이 흘러 복학했더니 우리 사회는 온통 민주화 물결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 당시엔 누구나 할 것 없이 거리로 나갔습니다. 남대문에서, 서울역에서 시위대를 막으려는 전투경찰과 충돌하기 일쑤였습니다. 최루탄을 쏘기도 전에, 페퍼포그 차가 나타나기만 하면 흩어지려 하는 시민들,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그때 대오를 정비하기 위한 구호가 바로 ‘질서’였습니다. 장단을 맞춰가며 박수를 치며 하나둘씩 따라 외칩니다. “질서, 질서, 질서…….” 겁을 먹던 시위대의 행렬은 다시 제자리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수세에 몰린 전투경찰을 폭행하려는 시민들이 나타나거나 시위대끼리 의견이 갈려서 어수선해질 때도 어김없이 ‘질서’란 구호가 등장했고 대체로 주변은 냉정함을 찾아가곤 했습니다. 질서란 것이 꼭 귀찮은 것, 필요 없는 것만은 아니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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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치기, 날치기, 들치기…

 
이번 테마는 질서입니다. 위에서 난데없이 개인의 경험을 근거 삼아 질서의 사례를 보여드렸습니다만 질서의 사전적 뜻이 궁금해서 찾아봤습니다.
<질서: 혼란 없이 순조롭게 이루어지게 하는 사물의 순서나 차례.>
 
어떤 조사에서 사람들이 일생동안 얼마나 많이 줄을 서는지를 살펴본 적이 있었습니다. 정확한 시간은 기억나지 않지만 꽤 긴 시간을 줄서는데 보낸다고 했습니다. 버스나 지하철을 타기 위해, 물건을 사기 위해, 화장실이나 경기장에 들어가기 위해서 줄을 섭니다. 이런 것은 기초질서라고 부릅니다.
 
대체로 질서는 편한 것, 좋은 것입니다. 자신의 순서를 어기고 새치기를 해서 먼저 들어가면 질서를 깨는 것입니다. 질서가 깨지면 혼란이 오고 많은 사람이 불편과 불이익을 겪게 됩니다. 신호등을 지키고 차선을 지키고 교통경찰의 신호와 교통법규에 따르는 것은 꼭 필요한 교통질서입니다. 불법적인 끼어들기는 얌체 짓이며 사고를 불러옵니다. 곳곳에 질서라는 단어가 등장합니다. 법치국가에선 법질서가 있으며 상거래에선 상질서를 준수해야 합니다. 월드컵 때 거리응원을 하더라도 응원질서가 필요합니다. 
 
 
권위에 끼어든 폭력
 
질서의 원래 뜻과 달리 모든 질서가 다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위계질서 혹은 상하질서란 단어가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구석구석 위계질서가 붙어다닙니다. 학교엔 스승과 제자 사이의 상하질서가 있고 선배와 후배 사이에도 질서가 있습니다. 체육계에도 위계질서가 있고 가요계, 예술계, 정계, 관계에도 위아래 질서란 말이 통용됩니다.
 
긍정적인 단어 같지만 남용하다가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대학에선 학기 초마다 신입생들의 군기를 잡는다거나 학교의 전통에 따른다면서 체벌을 가하는 사례가 있습니다. 개그맨들도 몽둥이를 들고 가요계에서도 후배에게 질서를 보여주기 위해 뺨을 때린다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질서를 지키기 위해 폭력이 동원된다면 그때부턴 질서를 악용한다고 봐야 합니다.
 
예로부터 유교사회에선 선후배관계, 선임과 졸병의 관계, 상급자와 하급자의 관계엔 질서가 필요하다는 맹자 말씀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때려가면서 이 질서를 유지하라는 이야기는 없는 것 같습니다. 윗사람은 아랫사람을 사랑하고 아랫사람은 윗사람을 공경하라는 이야기가 있을 뿐입니다. 강한 사람은 약한 사람을 보호하고, 약한 사람은 강한 사람에게 의지해야 한다는 구절도 있습니다. 그런데 유교전통을 철저히 지켜온 우리나라에선 유난히 상하질서를 명분 삼아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질서 독재란 단어도 있습니다. 현존 사회 체제를 지키기 위하여 혁명 운동을 탄압할 목적으로 행사하는 독재라고 합니다. 멀지 않은 과거에 이 땅엔 질서를 명분으로 특정 부류의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해 군대를 동원했던 아픈 역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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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 촉발할 수 있는 장치

질서란 테마를 사진으로 옮기려면 위에서 든 여러 가지 질서의 개념을 두루 활용하는 작업이 됩니다. 추상적인 테마를 사진으로 옮길 땐 어떤 한두 가지만의 개념정의에 머물러선 곤란합니다. 상상력이 부족한 매체라는 소리를 듣는 사진이 살아남기 위해선 사진 속에 상상력을 촉발할 수 있는 장치를 심어둬야 합니다. 줄지어가는 자동차, 금모으기운동을 위해 줄을 선 사람들, 파란불의 횡단보도, 운동장에서 열린 초등학교 입학식 같은 것은 1차적인 질서를 보여줍니다.
 
질서는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러나 군인들이 칼같이 줄을 맞춘 것을 보는 것보다는 불우이웃을 돕기 위해 늘어선 꾸불꾸불한 줄의 질서가 훨씬 정감이 가는 것은 저만의 생각은 아닌 듯합니다. 김수환 추기경이 돌아가셨을 때 명동성당을 향한 기나긴 추모행렬은 건물들을 끼고 돌고 돌면서 긴 장사진을 만들었습니다. 몇 시간을 차분하게 기다리고 있는 그 사진을 보면서 느낀 감동은 ‘아름다운 질서’였습니다.
 
부정적인 질서를 떠올리는 사진도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했던 사례 중에서 위계질서(상하질서)를 악용한 경우가 이에 해당할 것입니다. 질서를 깨는 행위를 담은 사진에서도 우리는 질서의 필요성을 느낄 수 있습니다.
 
위에서 든 사진들은 사진 내용에서 직접 테마가 떠오르는 사례입니다. 이와 달리 외형적인, 2차적인 질서를 보여주는 사진이 있습니다. 단정하고 깔끔한 사진들은 시각적인 질서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케르테츠나 쿠델카의 사진들은 실제 내용에 상관없이 질서를 느끼게 해줍니다. 1900년대 초반뿐 아니라 현재의 사진가들 중에서도 구성요소들의 질서를 강조하는 사람들은 아주 많이 있습니다. 사진공부를 위해서 알렉스 웹이나 르네 뷔리의 사진들을 검색해보시길 권합니다.

곽윤섭기자 kwak1027@hani.co.kr
  
◈ 금주의  미션 ㅣ 질서를 찍어라
 
이번 테마는 ‘질서’입니다. ‘테마-질서’에 대한 여러분들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기대합니다. 제가 제시한 사례와 전혀 상관없어도 좋으니 여러분들이 각자 정의하는 ‘질서’를 담은 사진을 보여주십시오. 사진을 찍을 때부터 테마를 염두에 두고 작업하면 좋겠지만 그게 안 되면 찍은 사진을 검토하면서 꿰어내는 단계에서 테마와 의미를 부여하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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