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죽은 사진기도
그가 손대면 숨쉰다
카메라 수리 53년 '달인' 김학원씨
“세상에 못 고치는 카메라 없다…
소리만 들어도 무슨 고장인지 안다”
정부 인정 명장 칭호는 없지만
누구나 그를 명장이라 부른다
초등학교 마치고 ‘입 하나 덜려고’
카메라 수리 겸한 시계수리점 점원
어느날 몽땅 분해된 먼지 쓴 카메라
밤새 뚝딱 조립해 수리 인생 시작
3년 동안 만든 중형카메라 KH-1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카메라
카메라 혁명인 라이카UR는 3대뿐
애호가 위해 만든 수집용 복제품
작동하게 개조해 세계적으로 명성
» 카메라 수리 53년의 '장인' 김학원씨가 4월 23일 서울 충무로에 있는 수리점 중앙카메라에서 자신이 직접 깎아서 만든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KH-1을 보여주고 있다.
명장은 대한민국의 고용노동부에서 서류 심사 및 면접을 통해 해마다 각 기술 분야에서 뛰어난 숙련기술을 가진 기술자를 대상으로 선정하는 제도다. 시계수리는 명장이 있다. 그런데 카메라수리부문엔 정부가 선정하는 명장이 없다. 그러나 기계식 카메라를 사용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53년 동안 카메라수리만 하고 있는 김학원(66)씨를 가리켜 명장이라고 부르는데 이견을 제시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지난 4월에 3차례에 걸쳐 김씨를 만나 50여 년 카메라수리 이야기를 들었다.
서울 중부경찰서 앞에 있는 중앙카메라가 김씨의 공간이다. 김씨의 수리점 공간은 조용한 절간과는 전혀 거리가 멀었다. 50년 동안 수리를 해왔으니 쌀알보다 작은 나사, 동전보다 작은 톱니바퀴, 스프링 등과 같은 카메라 부속품과 드라이버, 집게 등 수선연장들을 크기와 용도에 맞게 분류하여 서랍이나 공구함 같은 수납공간에 차곡차곡 칼같이 정리하고 그때그때 꺼내서 쓰고 제자리에 보관할 것이라 예상했으나 아니었다. 1미터 50센티 남짓한 수리대 위에 카메라 부속과 연장이 그냥 쏟아부은 듯 엉켜서 널브러져 있었다. 이건 전적으로 국외자의 생각이었다. 잠시 목례한 뒤 “하던 작업은 마저 하시라”고 하고 그의 작업을 지켜보고 있자니 물 흐르듯 손놀림이 이어졌다. 어제 썼던 연장이 어디 있고 한 달 전에 수리하다 잠시 멈춘 것이 무엇이며 또 어디에 있고 몇 달 전에 들어온 유알(UR) 라이카에 들어갈 손톱에 낄 것 같은 크기의 나사는 또 어디에 있는지 척척 넘어갔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어수선해보였지만 그에겐 저 상태가 체계적인 것이다. 저렇게 혼란스러운 수리대의 삼라만상이 그에겐 질서정연한 우주와 마찬가지란 생각이 들었다. 순간 김씨가 뭘 하나 떨어뜨리는 소리가 났다. 허리를 숙여 수리대 밑을 한동안 두리번거리면서 뭔가를 찾고 있었다. 찾았는지 물었다. 김씨는 “다음에 찾지. 어디 안가. 시경 앞에 있다가 여기 충무로로 옮긴 것이 16년 되었는데 뭐 하나 없어져 봤자 다 이 집 안에 있을 거다”라고 담담하게 답했다.
세 가지 소망 중 하나는 이뤘는데...
경상북도 점촌 출신인 김씨는 초등학교를 마치고 “입 하나 덜기 위해” 친지가 소개한 대전의 한 시계수리점으로 가게 된다. 당시 사진현상소를 겸하고 있던 그곳엔 시계뿐 아니라 고장 난 카메라도 종종 들어오곤 했다. 숙식을 가게에서 해결하던 어느 날 밤 주인이 퇴근하고 혼자 남은 가게에서 그의 눈에 손님이 맡긴 일제 카메라가 들어왔다. 몽땅 분해가 된 채 먼지가 쌓인 그 카메라를 밤새 조립해버렸다. 작동은 되지 않았지만 김씨의 손재주에 놀란 주인이 수리대를 하나 마련해주고 카메라 수리를 일임했다. 그날로 50여 년 카메라수리 인생이 시작될 것이라곤 김씨도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70년대 초반에 서울로 올라와 동대문을 시작으로 소공동, 영등포, 남대문 앞으로 가게를 옮겼고 2002년부터 지금의 자리에서 가게를 지키고 있다.
그동안 김씨의 카메라수리점을 거쳐간 사람들은 여러 가지 표현으로 그를 기억한다. 못 고치는 것이 없으며 소리만 들으면 어디에 무슨 고장이 났는지 알아차린다는 것이다. 과연 그런지 물었다. 김씨는 “내가 포기한 카메라가 없으니 틀린 말은 아니다. 다른 수리업자들이 못 고치는 것을 김씨에게 보내는 일도 잦았다. 수리를 하도 많이 해서 어떤 기종이 어디가 자주 고장 나는지 알고 있으니 소리를 들으면 안다는 것도 큰 과장은 아니다”라고 조심스레 말했다. 2004년 임재천 작가가 김학원씨를 인터뷰한 적이 있었다. 그때 김씨는 앞으로 하고 싶은 일 세 가지를 꼽았는데 14년이 지난 지금 그 중 한 가지는 확실히 해냈다. 3년 이상 선반으로 직접 두랄루민 덩어리를 깎아 몸통을 만들고 칼자이스의 비오곤 38mm를 개조한 렌즈를 부착해 수제 중형카메라 KH-1(Kim이 손(Hand)으로 만든 1(하나)밖에 없는 카메라)를 만들었다. 6X7 중형이다. 너도나도 탐을 낼 카메라인데 판다면 얼마에 팔 것인지 물었더니 “3년 수작업을 했고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데 글쎄 얼마에 팔 수 있겠어? 하하. 이보다 작은 중형카메라는 없을 것”이라고 김씨가 말했다. 나머지 소망 중 하나는 깨끗하고 잘 정돈된 클래식카메라 전문수리점을 낸다는 것이며 또 하나는 뒤를 이을 사람이 있었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수리 비중을 줄이고 수제카메라 공방을 하면 좋겠으나 먹고살 일이 아득해 손을 쓸 수가 없다. 그리고 젊은 사람들이 어떻게 이 지겨운 일을 하려고 하겠나”라고 아쉬워했다.
대화를 나누면서도 손은 부지런히 뭔가를 만지거나 돌리거나 끼우면서 바쁘게 그러나 차분하게 움직였다. 가끔 손님들이 들어왔다. 중년 남성 한 명은 진주에서 올라왔다고 했다. 오래된 손님임이 한눈에 드러날 정도로 허물없는 대화가 오고 갔다. 한 시간 정도 지나서 온 청년 한 명은 뭔가 작동이 안 된다면서 카메라를 김씨에게 넘겨줬다. 레버를 만져보고 파인더 창을 들여다보면서 2분가량 만지작거리다가 “되는데 뭘”이라고 청년에게 돌려줬다. “어 분명히 작동이 안 되었는데?”라면서 흡족한 표정으로 수리점을 떠났다.
» 김학원씨가 사용하고 있는 카메라 수리대. 부품과 연장이 쌓여있다.
“이젠 한국의 미스터 김만 가능”
지금 현재 수리하고 있는 카메라는 뭔지 물었다. 김씨는 “이거 지금 오래 붙들고 있는 물건인데 수리라고 할 순 없고 새로 만든다고 해야 할 것이다”라면서 카메라 몸통 껍데기와 부속품으로 보이는 작은 쇳조각 뭉치를 보여줬다. 전 세계 라이카 마니아들이 라이카의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UR 라이카의 복제품이었다. 2016년 연말 김씨는 첫 UR 라이카 복제품을 작동 가능한 상태로 개조하는 데 성공했다. 미국에서 한국 대전으로 이주한 전직 카이스트 교수 조지 퍼스트가 그 첫 UR 라이카의 개조를 의뢰한 사람이다. 기자는 조지와 전자우편과 문자메시지로 네 차례 인터뷰를 했다. 그는 “미국에서 일할 때 오래된 라이카용 렌즈 하나가 있었다. 1990년대 후반부터 라이카에 관심이 있었다. 2003년에 한국으로 이주하면서 그 렌즈도 갖고 왔으며 차츰 바르나크가 만든 최초의 라이카에 대해 알게 되었으며 UR 라이카 복제품을 개조하며 작동 가능한 상태로 만들 결심을 하게 된다. 그런데 이 작업을 할 사람이 없었다. 조금 조사를 해보니 1980년대에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각각 이 작업을 성공시켰다고 하는데 사용 가능하게 개조된 UR 라이카는 좀처럼 찾을 수가 없었다. 카메라 기술자를 찾는 데 몇 년이나 걸렸는데 드디어 서울 충무로의 중앙카메라에서 일하는 김학원씨를 알게 되었다. 그는 신기에 가까운 손재주가 있었다. 이베이에서 UR 라이카 복제품을 하나 사고 상태가 좋지 않은 구식 라이카와 내 렌즈를 김학원씨에게 보냈다. 무려 3개월이나 기다린 끝에 나는 작동 가능한 UR 라이카를 손에 넣게 되었다. 나중에 보니 2017년에 오스트리아의 RAHN 경매시장에서 사용 가능한 UR 라이카 한 대가 3,800유로에 낙찰되었더라. 독일의 카메라장인 롤프 오버랜더가 80년대에 개조한 극소수의 카메라 중 하나였다. 그는 이미 1995년에 세상을 떴다. 글쎄……. 이제 한국의 김씨 말고 이 작업이 가능한 사람이 세상에 또 있을까?”라고 설명했다. 그 후 김씨는 조지의 의뢰로 두 번째 작동되는 UR 라이카를 만들었으며 올해 4월 현재 세 번째 개조작업을 하고 있다. 조지가 전세계인들이 함께하는 라이카 포럼에 마치 라이카 한국특파원 마냥 수십 차례 글을 올려 작동하는 UR 라이카를 자랑했으니 미국의 한 라이카 마니아가 조지의 글에 자극을 받아 김학원씨에게 개조를 의뢰한 것이다. “3개월 만에 해준다고 했는데 이건 정말 카메라를 새로 만드는 일과 같다. 그런데 며칠 전에 외국에서 또 누군가가 부탁해왔다. 지금 손대고 있는 것 말고 제4의 UR 라이카 복제품이 지금 국제우편으로 한국으로 날아오고 있는 중이다. 그래도 4번째 주인은 운이 좋은 편이다. 내가 제3의 작업을 하면서 부속품을 하나씩 더 만들고 있으니 개조 기간이 다소 짧아질 수도 있겠다”라고 말했다.
김씨의 수리점 한쪽 벽엔 예전에 인터뷰했던 신문 기사가 붙어있다. 분명히 김씨에 대한 기사인데 신문에 실린 사진엔 배우 안성기씨가 카메라를 수리하고 있는 장면이 실렸다. 2010년에 개봉한 영화 <페어러브>의 한 장면이다. 영화내용을 보면 결혼도 않고 혼자 살면서 카메라를 수리하는 재주밖에 없는 ‘형만’(안성기 분)이 주인공이다. 감독이 카메라 수리점을 실감나게 묘사하기 위해 수리기술자를 찾다가 김씨를 찾아낸 것이다. 김씨는 가게에 있는 카메라와 수리에 쓰는 도구 등을 들고 스튜디오로 갔다. “내 손이 영화에 출연하게 된 것이다. 물론 얼굴은 안성기씨가 연기했다. 시사회에 갔는데 잠깐 화장실 갔다오니 내 손이 나오는 장면이 지나갔다고 하더라. 결국 난 못 봤다. 하하하”라고 김씨가 말했다. 2008년에는 당시 고등학교 3학년짜리 여학생이 그를 찾아와 카메라장인 김학원씨를 주인공으로 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KH1‘이 만들어지기도 했다고 한다. 나중에 들었는데 그 영화는 세계의 단편영화제 14군데에 출품되어 모조리 후보작에 올랐고 3군데에선 입상했다고 한다.
수리 비법? “응용해서 혼자 쭉쭉”
카메라수리의 비법 같은 것이 있는지, 카메라수리에 필요한 연장은 몇 가지나 되는지 물었다. 김씨는 “기술이라고 딱히 할만 한 것이 없다. 나는 단 한 번도 누구에게 배운 적이 없다. 책도 안봤다. 이 기술은 가르친다고 되는게 아니다. 하나를 이야기하면 응용해서 자기 혼자 쭉쭉 나가야하는데 가르쳐준 것 밖에 안 하면 못 배운다. 기본 원리는 대단히 간단하다. 카메라 기계의 동장은 밀고 댕기고 좌로 돌고 우로 돌리는 것이 전부다”라고 했다. 연장? 아이구. 수리하는 도구는 무지하게 많다. 필요한 연장은 만들어 쓴다. 라이카는 기존의 연장을 못 대게 만들었다. 연장을 대면 상처가 나게 되어 있다. 그래서 내가 규격별로 일일이 만들어서 쓴다. 그러니 못 고치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가게에 선반을 들여다 놓았다”라고 했다.
UR라이카는 무엇인가?
1913년과 1914년 사이에 독일 라이츠사의 기술자 오스카어 바르나크가 만든 최초의 라이카카메라가 UR 라이카다. UR은 독일어에서 원형, 초기 단계의 뜻을 가졌다. 카메라의 역사에서 UR 라이카의 등장은 마치 아날로그 전화기 시대에 스마트폰이 도래한 것 같은 정도로 인식되고 있다. 그전까지 사진을 찍는다는 행위는 삼각대 위에 세워진 거대한 상자 카메라와 한번에 한 장 찍을 수 있는 거대한 판때기 같은 필름을 넣고 보자기를 뒤집어 쓴 채 셔터를 누른다는 것을 뜻했다. UR은 손바닥만 한 크기에다 가벼워서 주머니에 쏙 들어갔다. 또한 영화제작에 사용되던 35mm 필름을 썼기 때문에 교환 없이 여러 장의 촬영이 가능했기 때문에 혁명적인 카메라였다. 이 모델이 점차 발전하여 라이카의 본격적인 상업용 모델이 속속 등장한다.» 바르나크가 만든 UR 라이카. 현재 박물관에 있다. 신속한 촬영이 가능한 라이카를 애용한 사진가들은 손꼽을 수 없을 정도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최소 세대의 UR이 있다. 1913년의 첫 모델은 현재 라이츠 박물관에 있고 두 번째 모델은 사라졌다. 1918년에 세 번째 UR이 만들어졌는데 첫 번째와는 많이 다르다. 예를 들어 첫 번째 모델은 셔터 속도가 한 가지밖에 없었는데 세 번째 모델은 여러 가지 셔터 속도를 사용할 수 있게 만들어졌다. 이 모델 또한 라이츠 박물관에 있다. UR은 상업용으로 만들어진 적이 없다. 1970년대에 라이츠사는 라이카 애호가와 수집가들을 위해 UR 라이카 복제품을 만들었다. UR라이카 복제품은 외형만 UR 라이카와 같고 대부분 작동하지 않게 만들어졌다. (일부 주장에 따르면 작동하는 것도 몇 있다) 현재 200대에서 500대 사이의 UR라이카 복제품이 세계 곳곳에 흩어져있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정확한 숫자는 아무도 모른다. 기사 본문에 나오는 미국인 조지가 라이카포럼에 “작동하는 UR 라이카”를 올리자 댓글이 여럿 올라왔다. 그중에 하나는 다음과 같다. “오스카어 바르나크가 대단히 자랑스러워 할 것이다.”
글 사진 곽윤섭 기자 kwak1027@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