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사진가를 다룬 책 두 권이 한꺼번에 출간됐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을 다룬 책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찰나를 역사로’(서해문집, 17,000원)와 로버트 카파를 다룬 ‘로버트 카파: 살아남은 열한 장의 증언’(서해문집, 16,000원). 이 책들은 벨기에 출판사 뒤피(Dupuis)와 세계적 사진가 집단 매그넘 포토스가 공동으로 진행한 사진가 시리즈 중의 하나다. 출판사 서해문집이 한국어로 번역해 이번에 한국 독자들과 만나게 됐다. 5월에는 아프간 소녀 사진과 9.11 사진으로 유명한 스티브 매커리를 다룬 책이 나올 예정이라고 한다.
이 책들은 특이한 형식으로 구성이 되었다. 절반 정도는 그래픽 노블이며 나머지는 사진가들의 작품과 해석이 곁들여져 있다. 회화, 그림, 사진이 모두 메시지를 전달하는 매개체의 역할을 한다면 각각이 더 잘하는 특기가 있는 법이다. 그래픽 노블이 더 능수능란하게 풀어내는 것은 영화에서 서사를 풀어나가는 것처럼 스토리보드에 맞춰 눈에 보이지 않는(사진으로 남아있지 않은) 장면을 연결고리처럼 그릴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 1945년 5월 독일 데사우에서 나치 독일에 협력했던 부역자들을 심판하는 장면을 찍고 있는 순간을 그림으로 그릴 수 있는 것이며 로버트 카파가 총알 세례를 받으며 1944년 6월 6일 프랑스 노르망디 오마하해변에서 역시 총알 세례를 받으며 필사적으로 상륙하는 미 해병대원을 찍고 있는 그 순간도 그래픽 노블로 표현이 가능한 것이다. 한편 사진이 더 잘하는 것은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다. 실제 벌어졌던 현장의 현장성을 뭐로 대체할 수 있단 말인가? 이 책들엔 그래픽 노블과 사진 외에 꽤 많은 분량의 글이 들어있어 역시 글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역할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사진은 현장성이 있어 생생하지만 동전의 양면처럼 모호성도 동시에 따라붙어 있다. 직접적인 사진의 설명과 더불어 사진이 찍힌 순간의 전후 사정과 시대적 배경이 불충분할 때 사진은 곧잘 오독을 불러일으킨다. 사진을 찍은 사람의 의도와 상관없이 사진을 사용하는 사람(매체나 역사가나 비평가)의 의도에 따라 잘못 전해지는 사례를 현대사에서 여럿 찾을 수 있다. 이 책들은 그림과 사진과 글이 적절하게 배치되어 약점이 없다.
»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찰나를 역사로 19쪽.
»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찰나를 역사로 55쪽
» 데사우, 독일, 1945년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매그넘
» 로버트 카파: 살아남은 열 한장의 증언 45쪽
» 미군의 리버티선을 타고 대서양을 건너고 있는 로버트 카파
각각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과 로버트 카파를 다루고 있어 전기처럼 보이고 실제로 그렇다.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성장기를 거쳐 인생의 하이라이트까지 꿰어가는 방식을 피한 것으로 보인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찰나를 역사로’의 경우 브레송이 2차 세계대전에 사진병으로 참전하여 포로가 되고 세 번의 시도 만에 자유를 찾는 과정이 집중적으로 그려져 있고 그가 죽은 줄 알고 유고전을 준비하다가 생환소식을 듣고 급히 회고전으로 바뀌는 뉴욕 모마의 전시에 참가하러 가는 장면까지 묘사되어 있다. 브레송의 인생이력이 어디 그 한 대목밖에 없으랴. 하지만 모든 에피소드를 다 묘사하려면 이런 책을 한 5권은 만들어야 했을 터이니 좁힌 것이다. 그 덕에 더 긴장감이 생생하게 살아난다. 그렇지만 브레송의 다채로운 활동에 대한 아쉬움이 생길 수 있는데 책 후반부에 최소 1년에 1장의 걸작은 남겼다는 브레송의 사진작품 수십 장을 볼 수 있어서 사진집의 기능도 톡톡히 한다.
‘로버트 카파: 살아남은 열한 장의 증언’은 2차 세계대전의 분수령이 되는 노르망디상륙작전에 집중되어 있다. 어떻게 보면 로버트 카파 사진인생의 분수령이 되는 장면이기도 하고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재현해낸 장면이기도 하다. “로버트 카파의 ‘The Magnificent Eleven’(D-Day 최고의 열한 장)이 없었다면 나는 영화로 그 장면을 묘사해낼 수 없었다”라고 스필버그가 말하고 있다.
20세기 최고의 사진가 두 명은 널리 알려진 것처럼 절친한 친구 사이였고 사진가 집단 매그넘을 같이 만들기도 했다. 섬세한 브레송과 자유분방한 카파는 상호보완적인 사이였을 것이다. 그래서 카파가 베트남에서 지뢰를 밟고서도 카메라를 손에서 놓지 않은 채 세상을 뜨자 브레송의 상실감은 엄청났다.
브레송의 책은 실뱅 사보이아가 그렸고 카파의 책은 도미니크 베르티유가 그렸다. 두 책에 들어있는 사진은 각각 브레송과 카파가 찍었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사진, 본문 그래픽노블/서해문집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