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전기
김전기 작가의 개인전 ‘Borderline’이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B.CUT갤러에서 열리고 있다. 5월 1일까지. 12일(목요일) 오후 7시에 작가와의 대화 시간이 예정되어 있다. 문의 (02-6431-9334)
이번 전시엔 사진이 15점이 걸리고 그보다 훨씬 많은 사진들이 지난해 11월 말 눈빛사진가선 52번째 <보이지 않는 풍경>으로 출간됐다. 김전기 작가와 10일 전화로 인터뷰를 했다. 김전기 작가는 1995년쯤부터 개인적으로 사진을 하고 있었다고 했고 2000년쯤에 강원도로 이주를 했는데 군사시설물들이 눈에 들어오면서 본격적인 사진작업에 뜻을 두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그렇지만 제대로 분단이나 경계를 찍기 시작한 것은 2007년이라고 봐야 한다. 이제 10년 좀 넘었고 경계에 대한 나의 관찰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 그 사이에 대학원에서 사진을 전공했고 다섯 번의 개인전을 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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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2007년부터 지금까지 분단과 경계를 찍어오는 동안 사진이 변하고 있는가?
“처음엔 군사시설, 구조물 등 물리적 시설이 좀 많았다면 지금은 거기에 곁들여진 사람들도 사진에 제법 등장한다. 바뀌고 있는 셈이다.”
-사진에 사람을 집어넣게 된 것은 어떤 계기 같은 것이 있는지?
“금강산관광이 중단되면서 관광과 관련이 있는 마을들이 피폐해지기 시작했다. 어떤 동네는 유령마을처럼 됐다. 정권이 교체되면서 경제와 관련 있는 시설들이 새로 들어섰고 물리적 군사구조물이 필요한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철책이 걷어지면서 사람들이 접근할 수 있는 해안가가 늘어나기도 했다. 기존의 군사시설물이 없어지는 듯했지만 사실은 새로운 형태의 것들이 들어섰다. CCTV나 전망대 같은 형태가 그것이다. 어쨌든 이런 변화가 생겼고 (따라서 내 사진에도 사람들이) 들어가는 사진이 많아졌다.
-사진집 ‘보이지 않는 풍경’에 실린 장소들은 지금은 어떻게 되었을까?
“절반 이상이 없어졌을 것이다. 어떤 곳은 지형 자체가 바뀐 곳도 있다. 분단이란 큰 테마는 앞으로도 계속 끌고 갈 것이다.”
-분단의 흔적이 동해에만 있는 것은 아닐 텐데? 그리고 한국에서 분단을 테마로 찍는 작가가 여럿 있다. 어떤 차별성이 있는가?
“물론 서해안이나 비무장지대에도 분단이 있다. 그런데 일상의 삶과 군사시설이 겹쳐서 맞물려 돌아가는 곳은 동해안 쪽이다. 나의 관심사에 들어맞는 곳이 동해안이다. 나의 사진에 등장하는 시설이나 구조물은 기존의 것이 아니다. 점차 없어지는 것 같지만 여전히 눈속임의 수준에서 남아있다.”
-분단이나 경계 외에 또 다른 작업도 있는가?
“4.3도 보고 있다. 6.25 전쟁의 첫 교전지였던 장소도 찾아본다. 참전군인들을 만나기도 한다. 그 외 찍어오고 있는 것이 또 있다.”
인터뷰를 마쳤다. 김전기의 사진은 철조망, 초소, 버려진 초소, 참호 등과 같은 군사시설이나 그 시설의 흔적이 들어있다. 그 주변에서 동네 주민이나 관광객이 들락날락하면서 부조화스러운 풍경을 새롭게 만들어내고 있다. 지난해 이맘때 엄상빈의 개인전 ‘또 하나의 경계’에 대한 기사를 쓴 적이 있다. 30년 동안 동해안의 철조망과 그 부근을 찍은 엄상빈 작가의 사진에 대해 한 가지의 아쉬움을 전했다. 그 철조망 사진들에 엄상빈 작가만의 관점이 과연 존재하는가에 대한 의문이었다. 1년이 지난 오늘 김전기 작가의 ‘Borderline’ 혹은 ‘보이지 않는 풍경’을 보면서 같은 의문을 제기한다. 그만의 고유성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인가? 누가 찍어도 비슷한 결과물이 나올 사진들이 섞여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책의 앞 부분에 몰려있는 사진들, 그러니까 철책 바로 옆의 야외결혼식장, 해수욕장과 철책, 나포리의 마릴린 먼로 조각상과 경계를 선 군인 등과 같은 사진들로 한 권의 책을 완성했으면 김전기 만의 고유성을 주장하기가 더 명확지 않았을까 하는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다. 책 중간에 등장하는 버려진 군사시설물과 책 끝 무렵에 나오는 노을지는 해변의 서치라이트나 철책 같은 풍경사진과 앞 부분의 부조화스러운 풍경은 같은 풍경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렇지만 역시 지난해 이맘때 썼던 ‘전쟁테마에 대하여’ 에 언급된 다른 작가들의 전쟁테마 관련 사진에 비해 한결 볼거리도 많아지고 서사도 깊어졌다는 것을 인정한다. 고무적이다.
사진가의 노트
경계에의 사유 - The half of No. 7
소나무 숲 너머 끝없이 철책선으로 이어진 해안의 경계에서 바다색만큼이나 푸르고 행복한 이들을 만났다. 환한 햇살 아래 시원스러운 바닷바람을 맞으며 식장으로 걸어가는 신랑신부, 그리고 함께한 부모 형제와 오랜 친구들의 모습. 또 다른 바닷가에서는 이웃들이 소나무 숲 아래에서 더위를 식히고 있는 한가로운 모습이 너무나 행복하고 평화로워 보인다. 그러나 이들의 행복한 장면 앞에는 불편하지만 평소 무심하게 보아 오던 철책선이 놓여 있다. 바다로의 접근과 조망을 제한하고, 해변의 출입을 통제하는 이 장치는 분단 이후 65년이 흐른 지금도 우리의 일상 속에 굳건히 자리하고 있다.
최근 몇 년 전부터 동해안은 빠르게 변해 가고 있다. 낭만과 여가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북적이며, 해변의 출입을 제한하던 철책선이 걷어지고, 재개발이 한창이다. 경관이 수려한 몇몇 지역은 안보의 이유로 여전히 걷어지지 못한 채 남아 있다. 여름철에는 관광객의 편의를 위해 제한적이지만 한시적으로나마 출입문을 열어 놓는다. 그 사이로 자유를 만끽하듯 바다를 찾는 사람들의 모습에선 불편함이나 군사시설이 주는 긴장감 같은 것은 보이지 않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관심은 경계지점에서 일어나는 여러 현상들 중 분단 상황이 야기한 군사지대와 민간인의 삶이 교차하는 공간의 안과 밖의 현상들에 향하고 있었다. 군사시설의 새로운 형태와 자본의 이데올로기가 교묘하게 뒤섞인 경계의 모습을 보면서, 일상적인 삶과 현대사의 질곡이 겹쳐져 있는 이질적인 영역으로서의 물리적 경계에 대한 의미를 되새겨 보게 되었다.
<보이지 않는 풍경(Invisible Scenery)> 시리즈로 시작된 2007년부터의 작업은 7번 국도와 맞닿은 해안의 경계선 주변에 놓인 군사지대와 일상적인 공간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중심으로 진행하여 왔다. 작업 과정이 깊어질수록 점점 혼재된 경계의 세상에 서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계에서 마주한 텅 빈 부대와 녹슨 철조망, 버려진 이데올로기적 오브제들은 마치 철거가 끝난 후의 재개발 지역과 같은 혼란스러움이 일었다. 그리고 이러한 공간은 어느 누구의 소유도 아닌 것처럼 남아 있어 특정한 개발이나 자본의 논리에서도 벗어나 있으며, 묘한 기이함과 함께 낯선 장소로 다가왔다.
경계로의 작업이 점차 확장될수록, 분단과 경계에 대한 고민은 모호해지기만 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생겨난 여러 가지 의문점들을 풀기 위한 고민의 과정을 거치면서 경계의 이유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게 되었다. 물리적 경계가 조금씩 지워져 가는 세상에서, 경계에 대해 원론적인 고민을 해본다. 지난한 시간 동안 통제 받아 익숙해진 공간에 길들여진 사고와 시선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러나 경계를 의식했던 시선과 행동에는 작은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다. 경계선 주변의 시간은 여전히 더디게 움직인다. 변형되는 물리적 현실은 여전히 낯설며, 의식하고 있는 시선은 새롭게 형성되는 경계를 주시한다. 경계를 위한 장치들은 보이지 않는 어딘가에서 누군가를 경계하고 있다. 그래서 아직은 조금 더 경계에서 서성거릴 이유가 있는 것 같다. 2017. 11. 김전기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사진/B.CUT갤러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