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 강의실/시즌2] <24강> 함께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의 공유와 공존 진리
다름도 차이도 서로 인정하면 ‘아름다운 동거’

이번 테마는 ‘함께’입니다. 사진에 등장한 둘 이상의 구성요소들을 보면서 ‘함께’라는 단어가 떠오르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둘이어도 좋고 셋 이상이어도 좋습니다.
‘함께’라는 테마는 아주 쉽게 표현할 수도 있고 어렵게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우선 쉬운 사례부터 들어보겠습니다. 두 명의 연인이 나란히 길을 걷고 있다면 ‘함께’라는 낱말이 금방 떠오를 것입니다. 이때 두 인물이 손을 잡고 있다면 훨씬 빨리 와닿을 것입니다만 그냥 나란히 걷고만 있어도 별 상관이 없을 것입니다.
비슷한 속도로 같은 쪽 바라보기
같은 길을 걷는 이들이라면 걷는 속도가 비슷할 것이며 같은 쪽을 바라볼 것이니 그 자체에서 함께한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사진은 순간의 기록입니다. 그러므로 둘이 함께 같은 속도로 걷거나 달리다가도 어느 한 장면에서 속도의 차이가 났을 때 사진을 찍게 되면 둘의 불일치가 느껴질 터이니 유의해야 합니다.
같은 옷을 입고 있거나 같은 모자나 가방을 들고 있는 것으로도 ‘함께’가 표현됩니다. 경찰복, 유치원생들의 옷을 보면 단체의 개성이 먼저 전해지므로 ‘함께’를 표현하는데 유리합니다. 목사와 수녀는 각각 비슷한 옷을 입습니다. 스님들도 대체로 같은 색, 같은 계열의 옷을 입습니다.
동서양의 종교가 다르고 머무는 곳이 다르다 해도 구도와 구원의 길을 함께 걷는 신앙인이란 점에서 공통점이 강하게 발현됩니다. 브루노 바르베가 찍은 모로코사진들을 보면 순례자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고깔처럼 뾰족한 모자, 수건을 두른 것 같은 모자 등을 함께 쓰고 묵묵히 길을 걷는 순례객들이 인상적입니다.


순례자 의상, 함께 가는 길 묵묵히 표시
‘테마-함께’를 느낄 수 있는 멋진 장면들입니다. 인도 바리나시강가엔 인도 전역에서 몰려온 순례객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습니다. 색은 조금씩 다르지만 몸을 몇 바퀴 둘러서 입는 옷의 스타일은 비슷합니다. 그 행렬에서도 일체감이 보입니다. 단 하루 바리나시강에 몸을 담그기 위해 여러 날 기차를 타고 왔다가 다시 먼길을 재촉한답니다.
플래시 몹이 유행입니다. 이전엔 문자메시지나 이메일로 플래시 몹의 예고를 날렸는데 이젠 더 빠른 미디어인 트윗을 통한 공지가 오고 갑니다. 대표적인 플래시 몹으로 마이클 잭슨 추모 플래시 몹을 들 수 있습니다.
http://www.youtube.com/watch?v=lVJVRywgmYM&feature=fvsr
넓은 광장에서 음악에 맞춰 함께 춤을 추는 수백 명의 춤꾼들이 일사불란하면서 흥겹습니다. 미리 행동각본을 공유하고 율동을 준비한 사람들이 서서히 숫자를 불려나가면서 춤을 함께 합니다. 사전에 무슨 일인지를 알지 못했던 사람들은 처음엔 당황한 표정으로 춤꾼들을 바라봅니다. 이윽고 흥이 생기면 즉석에서 어설프지만 함께 플래시 몹을 즐기기도 하고 춤에 자신이 없는 사람들은 박수로 장단을 맞추며 함께합니다. 신나는 음악이 나오고 발랄한 몸동작이 이루어지는데 짜증을 낼 사람들은 거의 없습니다.
춤꾼들의 일사불란함 속 흥겨움
다만 바쁜 일상 탓에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함께하지 못하는 이들입니다. 한국에서도 플래시 몹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남들 앞에서 갑작스럽게 춤을 추는 것이 익숙지 않은 문화 탓으로 매끄럽고 완성도 높은 플래시 몹 영상은 잘 볼 수 없었습니다.
벨기에에서 벌어졌던 ‘사운드 오브 뮤직’에 맞춰 춤을 추는 남녀노소의 영상도 아주 매혹적이었습니다. 2009년 3월 벨기에 앤트워프기차역에서 200명의 댄서들이 줄리 앤드류스의 도레미송에 맞춰 한바탕 춤판을 벌입니다. 역이란 공간을 생각하면 소란이 일어날 법도 한데 주변을 지나던 승객들은 참다못해 같이 춤을 추기도 하고 발을 굴러 지지를 보내거나 휴대폰으로 이 광경을 찍으면서 즐깁니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음악에 맞춰 같은 동작을 함께한다는 것은 ‘함께’를 보여주는 아주 적절한 광경이었습니다.
http://www.youtube.com/watch?v=7EYAUazLI9k
‘함께’를 조금 어렵게 소화하는 사진을 살펴보겠습니다. 옷도 다르고 동작도 다르지만 ‘함께’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둘 이상의 여러 사람을 묶어주는 매개체가 필요합니다. 어떤 것이 매개체가 될 수 있을까요? 큰 호숫가에 사람들이 띄엄띄엄 앉아있는 사진을 떠올려봅시다. 이들은 호수를 매개체로 주변에 앉아있는 것입니다. 즉, 호수라는 공간을 공유하고 호수와 함께 휴식을 즐기는 것입니다. 등장하는 사람들의 동질성이 사진에 부각되지 않아도 좋습니다.

띄엄띄엄 있는 이들 호수가 묶어
연말연시가 되면 일몰과 일출을 보러 바닷가로 갑니다. 바다 위의 수평선에 딱 붙들려 있는 해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한해를 정리하기도 하고 새로운 각오를 다지기도 합니다. 바닷가의 사람들은 전국 각지에서 모였을 것입니다. 그들을 하나로 묶어준 것은 태양과 붉게 물든 바다가 함께했기 때문입니다.
한국사람들은 김치를 먹습니다. 주식은 아니지만 반찬으로 김치가 없으면 허전함을 느낍니다. 특히 외국에 나갔다가 1주일 동안 김치 구경을 못하게 되면 평소에 김치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던 이들도 김치생각이 납니다. 한국인은 김치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김치만 달랑 놓고 사진을 찍어서 ‘함께’를 표현했다고 하는 것은 설득력과 완성도가 크게 떨어지는 사진이 될 것입니다. 식탁 위의 김치나 마트에서 파는 김치를 향해 뻗은 손도 좋고 김치를 먹는 모습도 좋겠습니다. 다만 김치, 자체는 테마가 아니고 김치를 매개체로 함께가 떠올라야 테마가 성립이 된다는 것은 잊지 맙시다.
마지막으로 조금 더 어렵게 테마를 소화한 경우를 살펴보겠습니다. 가르치고 있는 수강생들에게 ‘함께’를 테마로 제시했더니 한 분께서 배드민턴 라켓을 휘두르는 장면을 찍어왔습니다. 사람이 한 명 보이고 셔틀콕이 막 상대방에게 날아가는 찰나였습니다. 배드민턴은 둘 혹은 넷이서 하는 경기인데 프레임에 한 명만 등장했다는 것이 묘했습니다. 사진에 보이진 않지만 프레임 바깥에 다른 한 명이 있고 그와 함께 운동을 한다는 뜻이었을 것입니다. 기발한 발상이었습니다.
사진 밖 누군가와 ‘호흡’
인류(호모 사피엔스)는 지구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동식물들 중에 그렇게 빨리 태어난 종이 아닙니다. 은행나무는 2억 년 전부터 지구에 살고 있었으며 악어도 그 무렵부터 있었습니다만 사람은 이제 겨우 몇 십만 년 밖에 안되었습니다. 또한 인류는 가장 개체수가 많은 종도 아닙니다. 그리고 가장 끝까지 살아남을 가능성이 큰 종이라고 확신할 수도 없습니다. 여러모로 봐서 인류는 지구의 주인이 아닙니다.
지구의 다른 종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을 뿐입니다. 지구는 함께 사는 곳입니다. 깨끗하게 쓰고 인류의 후손과 다른 동식물의 후손들에게 있는 그대로 물려줘야 합니다. 대자연을 기록하는 것도 ‘함께’를 의미할 수 있으며 대자연의 여러 생명 중 한 종인 인류가 살아가는 모습을 기록하는 것도 ‘함께’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몇 일전 저를 아는 회원 한 분이 아파트 창틈에서 싹을 피운 이름을 알 수 없는 식물사진을 보내주셨습니다. 우리 모두는 함께 살아가야 합니다.

곽윤섭기자 kwak1027@hani.co.kr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의 공유와 공존 진리
다름도 차이도 서로 인정하면 ‘아름다운 동거’

이번 테마는 ‘함께’입니다. 사진에 등장한 둘 이상의 구성요소들을 보면서 ‘함께’라는 단어가 떠오르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둘이어도 좋고 셋 이상이어도 좋습니다.
‘함께’라는 테마는 아주 쉽게 표현할 수도 있고 어렵게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우선 쉬운 사례부터 들어보겠습니다. 두 명의 연인이 나란히 길을 걷고 있다면 ‘함께’라는 낱말이 금방 떠오를 것입니다. 이때 두 인물이 손을 잡고 있다면 훨씬 빨리 와닿을 것입니다만 그냥 나란히 걷고만 있어도 별 상관이 없을 것입니다.
비슷한 속도로 같은 쪽 바라보기
같은 길을 걷는 이들이라면 걷는 속도가 비슷할 것이며 같은 쪽을 바라볼 것이니 그 자체에서 함께한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사진은 순간의 기록입니다. 그러므로 둘이 함께 같은 속도로 걷거나 달리다가도 어느 한 장면에서 속도의 차이가 났을 때 사진을 찍게 되면 둘의 불일치가 느껴질 터이니 유의해야 합니다.
같은 옷을 입고 있거나 같은 모자나 가방을 들고 있는 것으로도 ‘함께’가 표현됩니다. 경찰복, 유치원생들의 옷을 보면 단체의 개성이 먼저 전해지므로 ‘함께’를 표현하는데 유리합니다. 목사와 수녀는 각각 비슷한 옷을 입습니다. 스님들도 대체로 같은 색, 같은 계열의 옷을 입습니다.
동서양의 종교가 다르고 머무는 곳이 다르다 해도 구도와 구원의 길을 함께 걷는 신앙인이란 점에서 공통점이 강하게 발현됩니다. 브루노 바르베가 찍은 모로코사진들을 보면 순례자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고깔처럼 뾰족한 모자, 수건을 두른 것 같은 모자 등을 함께 쓰고 묵묵히 길을 걷는 순례객들이 인상적입니다.


순례자 의상, 함께 가는 길 묵묵히 표시
‘테마-함께’를 느낄 수 있는 멋진 장면들입니다. 인도 바리나시강가엔 인도 전역에서 몰려온 순례객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습니다. 색은 조금씩 다르지만 몸을 몇 바퀴 둘러서 입는 옷의 스타일은 비슷합니다. 그 행렬에서도 일체감이 보입니다. 단 하루 바리나시강에 몸을 담그기 위해 여러 날 기차를 타고 왔다가 다시 먼길을 재촉한답니다.
플래시 몹이 유행입니다. 이전엔 문자메시지나 이메일로 플래시 몹의 예고를 날렸는데 이젠 더 빠른 미디어인 트윗을 통한 공지가 오고 갑니다. 대표적인 플래시 몹으로 마이클 잭슨 추모 플래시 몹을 들 수 있습니다.
http://www.youtube.com/watch?v=lVJVRywgmYM&feature=fvsr
넓은 광장에서 음악에 맞춰 함께 춤을 추는 수백 명의 춤꾼들이 일사불란하면서 흥겹습니다. 미리 행동각본을 공유하고 율동을 준비한 사람들이 서서히 숫자를 불려나가면서 춤을 함께 합니다. 사전에 무슨 일인지를 알지 못했던 사람들은 처음엔 당황한 표정으로 춤꾼들을 바라봅니다. 이윽고 흥이 생기면 즉석에서 어설프지만 함께 플래시 몹을 즐기기도 하고 춤에 자신이 없는 사람들은 박수로 장단을 맞추며 함께합니다. 신나는 음악이 나오고 발랄한 몸동작이 이루어지는데 짜증을 낼 사람들은 거의 없습니다.
춤꾼들의 일사불란함 속 흥겨움
다만 바쁜 일상 탓에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함께하지 못하는 이들입니다. 한국에서도 플래시 몹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남들 앞에서 갑작스럽게 춤을 추는 것이 익숙지 않은 문화 탓으로 매끄럽고 완성도 높은 플래시 몹 영상은 잘 볼 수 없었습니다.
벨기에에서 벌어졌던 ‘사운드 오브 뮤직’에 맞춰 춤을 추는 남녀노소의 영상도 아주 매혹적이었습니다. 2009년 3월 벨기에 앤트워프기차역에서 200명의 댄서들이 줄리 앤드류스의 도레미송에 맞춰 한바탕 춤판을 벌입니다. 역이란 공간을 생각하면 소란이 일어날 법도 한데 주변을 지나던 승객들은 참다못해 같이 춤을 추기도 하고 발을 굴러 지지를 보내거나 휴대폰으로 이 광경을 찍으면서 즐깁니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음악에 맞춰 같은 동작을 함께한다는 것은 ‘함께’를 보여주는 아주 적절한 광경이었습니다.
http://www.youtube.com/watch?v=7EYAUazLI9k
‘함께’를 조금 어렵게 소화하는 사진을 살펴보겠습니다. 옷도 다르고 동작도 다르지만 ‘함께’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둘 이상의 여러 사람을 묶어주는 매개체가 필요합니다. 어떤 것이 매개체가 될 수 있을까요? 큰 호숫가에 사람들이 띄엄띄엄 앉아있는 사진을 떠올려봅시다. 이들은 호수를 매개체로 주변에 앉아있는 것입니다. 즉, 호수라는 공간을 공유하고 호수와 함께 휴식을 즐기는 것입니다. 등장하는 사람들의 동질성이 사진에 부각되지 않아도 좋습니다.



띄엄띄엄 있는 이들 호수가 묶어
연말연시가 되면 일몰과 일출을 보러 바닷가로 갑니다. 바다 위의 수평선에 딱 붙들려 있는 해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한해를 정리하기도 하고 새로운 각오를 다지기도 합니다. 바닷가의 사람들은 전국 각지에서 모였을 것입니다. 그들을 하나로 묶어준 것은 태양과 붉게 물든 바다가 함께했기 때문입니다.
한국사람들은 김치를 먹습니다. 주식은 아니지만 반찬으로 김치가 없으면 허전함을 느낍니다. 특히 외국에 나갔다가 1주일 동안 김치 구경을 못하게 되면 평소에 김치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던 이들도 김치생각이 납니다. 한국인은 김치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김치만 달랑 놓고 사진을 찍어서 ‘함께’를 표현했다고 하는 것은 설득력과 완성도가 크게 떨어지는 사진이 될 것입니다. 식탁 위의 김치나 마트에서 파는 김치를 향해 뻗은 손도 좋고 김치를 먹는 모습도 좋겠습니다. 다만 김치, 자체는 테마가 아니고 김치를 매개체로 함께가 떠올라야 테마가 성립이 된다는 것은 잊지 맙시다.
마지막으로 조금 더 어렵게 테마를 소화한 경우를 살펴보겠습니다. 가르치고 있는 수강생들에게 ‘함께’를 테마로 제시했더니 한 분께서 배드민턴 라켓을 휘두르는 장면을 찍어왔습니다. 사람이 한 명 보이고 셔틀콕이 막 상대방에게 날아가는 찰나였습니다. 배드민턴은 둘 혹은 넷이서 하는 경기인데 프레임에 한 명만 등장했다는 것이 묘했습니다. 사진에 보이진 않지만 프레임 바깥에 다른 한 명이 있고 그와 함께 운동을 한다는 뜻이었을 것입니다. 기발한 발상이었습니다.
사진 밖 누군가와 ‘호흡’
인류(호모 사피엔스)는 지구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동식물들 중에 그렇게 빨리 태어난 종이 아닙니다. 은행나무는 2억 년 전부터 지구에 살고 있었으며 악어도 그 무렵부터 있었습니다만 사람은 이제 겨우 몇 십만 년 밖에 안되었습니다. 또한 인류는 가장 개체수가 많은 종도 아닙니다. 그리고 가장 끝까지 살아남을 가능성이 큰 종이라고 확신할 수도 없습니다. 여러모로 봐서 인류는 지구의 주인이 아닙니다.
지구의 다른 종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을 뿐입니다. 지구는 함께 사는 곳입니다. 깨끗하게 쓰고 인류의 후손과 다른 동식물의 후손들에게 있는 그대로 물려줘야 합니다. 대자연을 기록하는 것도 ‘함께’를 의미할 수 있으며 대자연의 여러 생명 중 한 종인 인류가 살아가는 모습을 기록하는 것도 ‘함께’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몇 일전 저를 아는 회원 한 분이 아파트 창틈에서 싹을 피운 이름을 알 수 없는 식물사진을 보내주셨습니다. 우리 모두는 함께 살아가야 합니다.

곽윤섭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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