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 침투 철조망에 오징어

사진마을 2017. 04. 13
조회수 10175 추천수 0


엄상빈 개인전 '또 하나의 경계'

30년간 동해 철조망과 일상 촬영

 

esb08.jpg » 1998, 속초

 


엄상빈 사진전 ‘또 하나의 경계-분단시대의 동해안 1986-2016’이 14일부터 스페이스22에서 열린다. 5월 2일까지. 전시 개막 및 출판기념회가 14일 오후 6시에 전시장에서 열린다. 전시 문의는 스페이스22(02-3469-0822)
 전시 제목에 그대로 들어있는 것처럼 이번 사진전의 내용은 동해안에 가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은 본 적이 있는 해안의 철조망 등 군 시설물과 그 지역 사람들의 모습을 가감 없이 담아낸 사진들로 구성되어 있다. 사진가 엄상빈은 그동안 ‘아바이마을 사람들’, ‘학교이야기’, ‘창신동 이야기’ 등의 사진작업을 통해 분단, 학교 현장, 민중의 삶 등을 발표해왔다.


  나는 고등학교 2학년 수학여행 때 강원도 땅을 처음 밟았고 설악산과 더불어 강원도 동해안도 처음 구경했다. 그때esb0001.jpg » <또 하나의 경계> 표지 생경하게 다가왔던 철조망을 아직 잊을 수 없다. 그 후 기자가 되고 여러 차례 철조망과 조우하게 되었는데 보면 볼수록 무신경해졌다. 나중엔 “동해안에 가면 철조망은 원래 있는 것”이라고까지 생각이 되었고 간혹 철조망이 없는 바닷가를 보면 허전하기도 했다. 이것을 사진으로 찍어서 전시를 하거나 사진집을 만든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는데 오늘 엄상빈 작가의 전시소식을 접하니 탄성이 절로 나오면서 동시에 지루함을 어떻게 극복했을까 싶어 유심히 사진을 살펴봤다. 철조망 1, 철조망 2, 해가 뜬 날의 철조망, 눈이 오는 날의 철조망, 밤의 철조망……. 이런 식이면 곤란하다고 미리 선을 그었다.
 
  기우였다. 철조망이 세워진 동해안에도 사람이 사는 마을이 있고 군부대도 있다. 그러므로 민간인도 있고 군인도 있으며 현지에 사는 사람이 아닌 피서객도 있었다. 오징어도 있고 기타맨도 있었다. 이로써 철조망 사진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뭔지 명확해졌고 눈으로 보는 재미도 가미했다. 1986년부터 30년간 고성, 속초, 양양 등지에서 찍은 이 철조망들과 그 인근의 풍경은 분단의 흔적이 아니라 분단의 상처 그 자체이며 현재진행형이다. 엄상빈 작가는 이 사진을 찍으면서 과거의 기록이 되길 희망했을지도 모르겠다. 해안을 따라 상업지역이 생기면서 철조망을 걷어낸 곳이 늘어났으나 여전히 철조망은 동해안의 상징물로 유력하게 남아있다. 철조망이 필요한지, 필요하지 않은지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esb03.jpg » 1986, 속초 esb04.jpg » 1986, 속초 esb05.jpg » 1987 esb06.jpg » 1990, 양양 esb07.jpg » 1997, 속초 esb09.jpg » 2001, 양양 esb10.jpg

esb01.JPG » 2008, 속초

esb02.JPG » 2016, 양양  


   존 자코우스키의 명저 <사진가의 눈>은 사진을 좀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훑고라도 지나가야할 필독서다. 물론 이 책 안보고도 사진 잘 찍는 사람이 있으니 이 책을 보지 않았다고 해도 자책하거나 딴청을 피울 일은 없다. 어쨌든 이 책은 사진의 다섯 가지 속성 혹은 본질에 대해 짚고 있다.
 
 1. The thing itselfesb0002.jpg » 존 자코우스키, <사진가의 눈>
 2. The detail
 3. The frame
 4. Time
 5. Vantage point
 
 엄상빈 작가의 ‘또 하나의 경계-분단시대의 동해안 1986-2016’을 보면서 위 다섯 가지 본질적 관점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첫 번째는 우리말로 ‘사물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사물이 아닐 수도 있으니 ‘대상 그 자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철조망과 철조망 주변의 사람, 오징어, 바닷가는 그때 그 자리에 분명히 존재했던 것이다. 당연히 사진만이 가지는 힘이자 역사성이다. 기록이다. 두 번째는 세부묘사라고 옮길 수 있다. 철조망과 그 주변에 있는 것들을 잘 살펴보라. 왜 한 장의 철조망 사진으로 모든 이야길 다 할 수 없는지 이해할 것이다. 만약 철조망 1, 철조망 2, 철조망 3…. 식의 대동소이 반복해서 나열하는 유형학이었다면 힘도 없고 내용도 제한적이 되었을 것이다. 세 번째는 프레임이다. 특정한 크기의 네모 안에 대상을 가두었다. 이거 가장 힘들다. 힘들기도 하고 사진가마다 차이를 보인다. 어디서 어디까지 포함할 것인가에 따라 왜곡이 발생할 수 있고 오역이나 오독을 불러올 수도 있으나 사진은 전체가 아니라 부분이란 점에서 프레임의 속성은 벗어날 수가 없다. 아마추어의 사진을 보면 이 대목에서 많이들 무너진다. 엄상빈의 사진을 보면서 저 사진의 오른쪽 모서리 바깥에는 뭐가 있었을지를 상상해보라. 큰 공부가 된다. 네 번째는 시간이다. 셔터를 눌렀던 1986년 어느 날 그 시간대에 존재했던 장면이 사진 속에서 얼어붙어 있다는 이 놀라운 매력이 사진만이 가지는 특성이다. 느린 셔터는 느린 만큼 빠른 셔터는 빠른 만큼의 시간을 사진에 부여한다. 우리는 한 장의 사진 앞에서 125분의 1초라는 시간을 정지상태에서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조금 더 다양하게 찍었어도 좋았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그건 사진가의 선택이고 존중한다. 다섯 번째는 관점이다. 이 대목에서 가장 큰 아쉬움을 느낀다. 엄상빈 작가만의 관점이, 혹은 이 ‘하나의 경계’ 사진들에 들어있는 관점이 있는지 의문이 든다. 그냥 평범한, 동해안에 처음 구경온 관광객의 관점에서 본 철조망처럼 보이는 사진이 꽤 된다. 어떻게 피할 것인가? 혹은 어떻게 강조할 것인가는 본인의 몫이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List of Articles
사진이 있는 수필

마녀와 선녀와 그림자

  • 사진마을
  • | 2017.05.01

사진이 있는 수필1-마녀와 선녀 4월 첫주에 북유럽에 있는 3개국에 짧게 다녀왔다. 헬싱키에서 배를 타고 갈 수 있는 수오멘린나가 여러모로 좋았...

취재

사진의 90%는 아이디어, 작가는 뭣으로 기획하나

  • 사진마을
  • | 2017.04.26

[사진가들이 밝히는 노하우]  유명 사진교육가 필립 퍼키스  “거의 모든 것은 사전 계획  10%만이 물끄러미 바라본 결과물”     인터넷으...

전시회

간첩 침투 철조망에 오징어

  • 사진마을
  • | 2017.04.13

 엄상빈 개인전 '또 하나의 경계' 30년간 동해 철조망과 일상 촬영 엄상빈 사진전 ‘또 하나의 경계-분단시대의 동해안 1986-2016’이 14일부터...

전시회

영화는 없고 제목만 남아

  • 사진마을
  • | 2017.04.10

영화 촬영지가 무대화된 현상에 주목했다 어떤 장소가 영화화되면 정체성 바뀌더라 이경희의 사진에서 정체성이 또 바뀌었다  이경희의 개인전 ...

취재

기본기는 그래도 ‘기본’ 숨은 팁 보태면 ‘쏠쏠’ [1]

  • 사진마을
  • | 2017.04.05

[스마트폰으로 사진 잘 찍기]   망원은 취약, 광각과 접사 강점 사진 번짐 있을 땐 렌즈에 이물질     셀카 땐 볼륨버튼을 셔터버튼으로 ...

전시회

다른 작가 사진으로 전시를 열다 [1]

  • 사진마을
  • | 2017.03.27

사진가 이규철이 소장한 사진으로 사진전 20년동안 1년에 한 작품씩 20작가 사모아 현장에서 작가의 동일한 작품 구입 가능 사진가 이규철의 컬렉...

취재

비구니가 주례 선 사연 [1]

  • 사진마을
  • | 2017.03.23

미국 불교사찰<붓다나라>주지 선각스님, 스님 만들려고 눈독 들이던 당찬 아이로부터 느닷없이 결혼한다고 주례 부탁 받아 황당 출가도 수행이고 결혼...

취재

쿠델카 영화, 체코 와인과 함께

  • 사진마을
  • | 2017.03.22

요세프 쿠델카의 기록영화 ‘슈팅 홀리랜드’ 상영회가 4월 1일에 서울극장에서 열린다. 이번 상영회에선 필스터 우르켈 맥주와 체코의 와...

취재

누구나 찍을 권리, 안찍힐 권리 [4]

  • 사진마을
  • | 2017.03.15

사진에서 초상권이란 동의 없는 언론 보도에 언론중재위 결정·법원 판결 잣대 헌법에 초상권이란 표현 없지만 헌법 10조 ‘행복추구권’ 위반 ...

취재

전쟁 테마에 대하여

  • 사진마을
  • | 2017.03.07

찍는 이유만 생경, 건조하게 존재 전쟁을 둘러싼 구체적 접근 부재 스위스 사진가 마인라트 샤데 'War without War'와 비교분석  임안나 작가의...

전시회

반가운 사진전 소식 두 가지

  • 사진마을
  • | 2017.03.02

한영수선생, 뉴욕 국제사진센터로 진출 하트 사진가 유병완, 광주광역시 사진전 사진전 두 개를 소개한다. 둘 다 사진마을에 소개한 적이 있고 둘 ...

취재

사진에 이야기를 담는 방법

  • 사진마을
  • | 2017.02.28

 사진전공학생 개별 사진 분석-끝 사진전공학생 개별 사진 분석-1 사진전공학생 개별 사진 분석-2 사진전공학생 개별 사진 분석-3 사진전공학생 개...

취재

세부묘사와 상징을 통한 재해석

  • 사진마을
  • | 2017.02.22

사진전공학생 개별 사진 분석-5 개별 사진 분석-1 바로가기 개별 사진 분석-2 바로가기 개별 사진 분석-3 바로가기 개별 사진 분석-4 바로가기 ...

사진책

27년 풍경 속 사람들, 사진 속에 숨은 뜻

  • 사진마을
  • | 2017.02.22

 알레고리로 본 안성용의 <포항 송도> 맞은편 포철 공장·굴뚝 배경으로 조용했던 마을의 변화 ‘왁자지껄’    누군 지폐 문양 팬티 입고 놀고...

취재

사라지는 것, 등장하는 것

  • 사진마을
  • | 2017.02.17

사진전공학생 개별 사진 분석-4 사진전공학생 개별 사진 분석-3 좁히고 분석하고 색칠하라 사진전공학생 개별 사진 분석-2 살아있는 유형학을 주문한...

취재

좁히고 규정하고 색칠하라

  • 사진마을
  • | 2017.02.16

사진전공학생 개별 사진 분석-3   사진전공학생 개별 사진 분석-2 <살아있는 유형학을 주문한다> 사진전공학생 개별 사진 분석-1 <사진 따로 글 ...

전시회

인간과 자연의 반짝 반짝 조우

  • 사진마을
  • | 2017.02.15

미국 스미스소니언사진전 해외 첫 나들이 경이로운 자연, 일상에서 발견한 순간들 벽, 바닥, 통로 공간에 사진 주렁주렁 배치 ‘스미스소니언사진전...

취재

카더라... 진짜...? 아님 말고

  • 사진마을
  • | 2017.02.13

사회관계망 통해 근거없는 '카더라'확산 "수근수근" 성폭력 가해자로 강제 '변신' 당사자 해명 요구에 "실명 올린 적 없으니" 지난해 10월 26일...

취재

살아있는 유형학을 주문한다 [2]

  • 사진마을
  • | 2017.02.10

사진전공학생 개별 사진 분석-2 사진전공학생 개별 사진 분석-1 바로가기 유형학 사진에 대한 입장을 다시 한번 밝히면서 분석을 이어나가겠다. 어...

취재

사진 따로, 글 따로는 곤란 [1]

  • 사진마을
  • | 2017.02.07

사진전공학생 개별 사진 분석-1 사진전공자들의 어깨가 무겁다. 스마트폰 카메라의 성능이 날로 좋아지고 있어서 사람들이 수시로 사진을 찍고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