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미인만이 가능한 ‘흰 배경 옆모습’

곽윤섭 2009. 04. 08
조회수 29628 추천수 2
[알고보면 더 재밌는 카쉬전 5]오드리 헵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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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서프 카쉬
 


눈썹연필과 립스틱 하나만으로 충분한 배우

 

카쉬는 1956년 오드리 햅번이 영화 <화니 페이스(Funny Face)>에 출연하고 있을 무렵, 할리우드에 있는 파라마운트의 스튜디오에서 그녀를 찍었다. 영화에서 여러 번 본 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녀와의 만남이 그렇게 충격적이진 않았다고 한다. 카쉬는 그녀의 얼굴에서 섬세하고, 극도로 예민하고 또한 늘 감정적으로 충만해있는 모습을 찾길 기대했는데 그녀는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헵번은 놀라운 집중력을 보여주었는데 그것이 바로 헵번이 성공한 비결이었다. 아름다움이란 것은 삶과 일에 대한 끊임없는 열정과 떼놓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카쉬는 촬영이 끝난 뒤 사진이 인화되고 나면 출판하기 전에 미리 보여주겠노라고 말했다. 통상 그런 관례가 없었는데 햅번을 위한 특별한 배려였다. 그녀는 깜짝 놀라며 기뻐했다. 며칠 뒤, 카쉬가 컬러와 흑백프린트를 들고 그녀의 분장실로 갔을 때 그녀는 머리를 감고 있던 중이었다. 사진을 본 그녀는 영화에서 자신이 자주 보여주었던 그 모습처럼 폭발적인 흥분을 보여주며 기뻐했다.

 

 “얼마나 편한지 모르겠어요. 파운데이션도 안한 상태에서 찍은 사진을 보는 것이 너무 좋아요”라고 그녀는 환호하듯 소리 질렀다.

 

카쉬는 그때 깨달을 수 있었다. 카쉬가 할리우드에서 만났던 다른 배우들과 달리 햅번은 눈썹연필 딱 한 줄과 립스틱만 가지고도 충분히 편안해하는 여배우였다. 그녀의 타고난 아름다움은 화장술을 거의 필요로 하지 않았던 것이다.

 
[동영상] 곽윤섭 도슨트와 함께 보는 카쉬전



이 사진은 세 가지 특별한 점이 있다. 배경이 흰 바탕이며 옆모습을 담았고 조명이 온 얼굴에 고르게 퍼져 있다. 카쉬가 찍은 수많은 사진들 중에서 배경이 희게 처리된 얼굴은 몇 안 된다. 어두운 배경을 쓰는 이유는 얼굴의 주목도를 높이기 위함인데 특별히 아름다운 얼굴인 경우엔 굳이 어두운 배경이 아니더라도 괜찮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옆모습 사진도 흔치 않다. 정면으로 관객과 마주할 땐 인물이 관객과 대화를 하고 교감을 주고받는 기분이 든다. 옆모습은 다르다. 관객은 인물의 눈치를 보지 않고 편하게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는 것이다. 빛의 마술사였던 카쉬가 어느 한 군데에 하이라이트를 두지 않고 얼굴 전체를 균등하게 처리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한두 군데가 특히 아름다우니 봐달라는 것이 아니다. 햅번의 경우를 제하고 나면 카쉬의 두 번째 부인이었던 에스트렐리타의 사진정도가 옆모습에 흰 바탕인 것을 생각하면 미에 대한 극단적 찬사의 표현이라 짐작할 수 있다.

 

역대 미국의 여배우들 중 가장 인기 있는 스타 겸 패션아이콘 중 한 명인 오드리 헵번(1929~1993)은 아카데미, 토니, 에미, 그래미상을 수상했다. 1988년부터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유니세프 친선대사 자격으로 특히 어린이들을 위해 일했고, 민간인에게 주어지는 최고 훈장인 ‘자유 훈장’을 받았다.
 
헵번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은 안네 프랑크의 일기

 

햅번은 좋은 성품을 상징하는 전형적 인물이었다. 품위있고 성실했으며 그녀가 연기했던 많은 역할에서처럼 빈손에서 출발해 영광스러운 자리에 오르는 신데렐라같은 인물이기도 했다. <마이 페어 레이디>에선 엘리자 둘리틀,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선 홀리, <로마의 휴일>선 앤 공주역을 맡았다. 그녀는 벨기에 브뤼셀에서 태어났고 아버지는 영국인 은행가, 어머니는 네덜란드의 남작이었다. 아버지가 나치신봉자였고 때문에 1935년에 부모님은 결별했다. 1939년 가족은 나치점령을 피해 네덜란드로 이주했고 햅번은 그곳에서 발레를 배우기 시작했다. 1940년 독일이 네덜란드를 침공하자 삶의 조건이 위험하고 열악해졌다. 레지스탕스에 가담했던 삼촌과 사촌이 살해당하는 등 이 시기에 그녀는 여러 가지 끔찍한 상황을 목격하게 된다. 그녀는 영양결핍, 빈혈, 호흡곤란등의 질병을 앓았으며 그녀의 가족은 숨어서 살아야 했다. 이런 경험으로 인해 햅번은 안네 프랑크에게 공감을 느끼게 된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전쟁이 났을 때 둘 다 열 살이었고 전쟁이 끝났을 땐 열 다섯 살이었다. 1946년에 어떤 친구가 그 책(안네의 일기)을 건네주었다. 나는 책을 읽었고 그 책은 나의 마음을 갈가리 찢어놓았다. 그 책을 읽었던 많은 사람들이 같은 심정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것이 책으로 보이질 않았다. 내 이야기와 똑같았다. 내가 왜 그 책을 읽기 시작했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다시는 그런 비참한 환경에 처하고 싶지 않다. 그 시절은 나를 너무나 절망 속에 빠뜨렸었다.”

 

1953년에 햅번은 브로드웨이의 무대인 지지에서 주연을 맡았고 성공을 거두었다. 그녀의 첫 주연영화인 로마의 휴일로 아카데미여우상을 받았으며 이 역할을 통해 이른바 ‘햅번룩’이라 불리우는 패션이 인기를 끌게 되었는데 그 패션은 부분적으로는 지방시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지방시는 로마의 휴일에서 그녀를 위해 영화의상을 만들어주었다. 그녀의 마지막 출연은 1989년 스필버그 감독이 만든 <영혼은 그대곁에(Always)>에서 카메오역할이었다.

 

이후 그녀는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열심히 일했다. 굶주린 아이들을 돕기 위해 쉬지 않고 아프리카, 터키, 베네수엘라, 에콰도르, 온두라스 등지로 뛰어다녔다. 그녀는 아프리카의 참상을 보면서 절망했고 가슴 아파했다.

 

“제3세계라는 용어는 온당치가 않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하나의 지구촌 가족이기 때문이다.”
                            *유서프 카쉬 사진집 'Regarding Heroes' 를 참고했습니다.


 

곽윤섭 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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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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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하오의 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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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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