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스턴 처칠 ⓒ유섭 카쉬
[알고 보면 더 재미있는 카쉬전 2]윈스턴 처칠(1941)
“윈스턴 처칠을 찍고 나서 나의 인생은 바뀌었다.”
유섭 카쉬가 이렇게 고백했을 정도로 처칠의 사진은 그에게 각별한 의미가 있는 사진이다. 카쉬가 처칠을 찍었던 과정은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다.
1941년 처칠은 캐나다 오타와를 방문해 의회 연설을 통해 (2차대전에서) 강력하게 적과 맞서 싸우겠다고 역설했다. 카쉬는 이때 캐나다 수상인 매킨지 킹의 초청으로 처칠을 찍기 위해 연설자 대기실에서 조명과 카메라를 세팅해둔 채 연설이 끝나길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연설이 끝난 처칠과 그 일행이 방으로 들어섰는데 카쉬가 조명의 스위치를 켜자 처칠이 “이게 뭐냐?”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의 기세가 워낙 강해 아무도 선뜻 나서지 못했다. 결국 겁에 질린 카쉬가 처칠에게 다가가 사진 찍을 기회를 달라고 정중하게 청했다. 그러자 처칠은 “왜 나에게 말해준 사람이 없지?”라고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렸다. 그리곤 새 시가를 하나 꺼내 불을 붙인 뒤 연기를 한 모금 내뿜고 나서 “한 장만 찍어보게”라며 사진촬영에 응했다.
하지만, 처칠은 시가를 계속 입에 물고 있었다. 카쉬가 재떨이를 내밀었지만 여전히 내려놓지 않았다. 카쉬는 카메라로 돌아가 모든 것을 점검하고 기다렸다. 한번 더 기다린 뒤 처칠에게 다가갔다. 사전에 미리 계획한 적은 없지만 아주 정중하게 말했다. “용서하십시오. 수상각하” 그리곤 시가를 그의 입에서 뺏어내듯 잡아채버렸다. 그리곤 카메라로 돌아갔다. 졸지에 시가를 빼앗긴 처칠은 마치 그를 잡아먹을 듯 화를 냈다. 카쉬는 바로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셔터를 눌렀다. 하지만 한 순간 적막이 흐른 뒤 처칠은 곧 웃으면서 그에게 다가와 악수를 건네며 한 장 더 찍을 것을 주문하고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으르렁거리는 사자도 얌전한 상태로 사진을 찍게 할 수 있구먼.”
카쉬의 이 처칠 사진은 <라이프>지로 보내져 표지에 실렸다. 곧이어 수많은 신문과 잡지가 앞다퉈 카쉬의 ‘으르렁거리는 처칠’ 사진을 실으면서 이 사진은 2차대전에 임하는 처칠과 영국의 의지를 전 세계에 보여주는 상징적 아이콘이 되었다.
2차대전 당시 미국 최고의 종군기자이며 앵커였던 에드워드 뮤로는 이 사진에서 처칠의 강한 의지를 읽어내고 이런 코멘트를 남겼다. “그때까지 거의 아무도 나서지 않고 있던 마당에… 오 여기 이 인물이야말로 영어를 집합시켜(선동적인 연설로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었다는 비유) 전선으로 내보낸 장본인이다.”
가히 전쟁의 흐름을 돌려놓았다고 할 만한 사진이 된 것이다.
세월이 흐른 뒤, 1988년 카쉬는 ‘사진인생 50년’을 맞아 파리의 한 매체와 인터뷰를 하면서 그때를 회상했다. “사실 처칠 수상을 찍은 에피소드는 언론의 입맛에 의해 극화된 면이 많이 있다. 당시 나는 전혀 계획 없이 즉흥적으로 행동했다. 사전에 그런 계획을 미리 세운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시가를 입에서 뽑은 것은 존경심의 발로 때문이었다. 마치 옷에 묻은 실밥을 떼주는 행동과 같았다. 그런데 처칠이 반응했을 뿐이다. 처칠은 대영제국의 결의를 보여주는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사진을 위해) 모든 것이 딱 들어맞았다. 그리고 그 사진은 곧 세계에서 가장 많이 지면에 실린 사진 중의 하나가 되었다.”

ⓒ 유섭 카쉬
한 장 더 찍을 것을 허락하고 난 다음의 처칠. 이미 표정이 부드러워지고 난 다음이라
카리스마대신 온화한 느낌이 강하다. 처음부터 이 사진처럼 찍었다면 강한 인상을 심어주지 못했을 것이다.
곽윤섭 기자 kwak1027@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