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안된다 생각되면 찍지 말라

곽윤섭 2009. 05. 12
조회수 11078 추천수 0


[사진이 안 되는 사진 ] 뉴스사진과 연출
 
오래전에 <한겨레>에서 뉴스메일 서비스를 시작하던 무렵 제가 ‘사진 뒤집어보기’라는 코너를 운영하면서 글을 올렸던 적이 있습니다. 처음에 다루기 시작했던 화두가 바로 연출사진이었습니다. 예술로서의 사진은 연출을 하든 합성을 하든 상관이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신문지면에서 뉴스로 공급되는 사진은 신뢰가 생명이니 연출을 해선 안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신문지상엔 연출사진이 비일비재했습니다. 그런 관행이 안타깝게 생각되어 몇 차례에 걸쳐 연출사진을 짚어나갔던 것입니다.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벌어지는 쇼
 

연출사진을 찍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마감에 쫓겨서 그렇게 한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5시에 시작될 기자회견인데 마감이 5시라면 사진을 찍어서 송고하는 것이 불가능하니 4시30분에 미리 기자회견을 하는 것처럼 모양새를 만들어 찍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주장은 그림을 잘 만들려는 목적입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를 놔두면 엉성하게 보이므로 드라마를 찍는 PD처럼 자세, 위치 등을 지정해주고 찍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들은 모두 변명에 지나지 않습니다. 시작하지 않은 기자회견이라면 마감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는 마치 벌어지지 않은 사건을 이미 발생한 것처럼 보도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오류입니다. 그림이 안된다면 렌즈나 앵글의 다양화를 통해서 대처해 나가야 할 뿐 상황을 조작하면 안 됩니다.

 

오늘 이야기하려는 것은 사진이 안 되는 사진입니다. 여의도 한국거래소(KRX)에서 수시로 벌어지는 쇼에 관한 것입니다. 사진이 안 되는 사안인데 무리하게 사진으로 형상화시켜려 하다 보니 없는 무대를 만들어내고 배우처럼 연기를 지시하는 것입니다.
 
지난번 강의실코너에서 주가의 오름과 내림을 사진으로 표현하는 것이 어렵다는 이야길 했습니다. 주가와 환율 등 경제의 여러 지표들은 숫자로 표현됩니다. 그래서 기껏 할 수 있는 것이 주가현황판밖에 없습니다. 간혹 투자가들의 표정, 행동 등을 찍어 간접적으로 상황을 전달할 순 있습니다. 제가 입사했던 때부터 한동안 주가와 관련된 사진을 찍으러 나갈 땐 증권사 객장으로 갔습니다. 당시엔 사진기자들의 증권사 객장 출입이 허용되어 있었고 주가가 내려가면 실망하는 모습, 올라가면 기뻐하는 얼굴들을 찍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투자자들이 항의를 했고 초상권문제가 거론되면서 사진기자의 출입이 금지되어버렸습니다. 하루아침에 사진 찍을 대상을 잃어버린 기자들은 망연자실했습니다. 그 와중에도 주식시장은 수시로 끓었다가 식기를 반복했고 신문사에선 그런 사진을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온 궁여지책이 다음과 같은 것들입니다.
 

 

사진기자 주문따라 이리로 저리로
 

1309p101.jpg
객장에 사진기자들이 출입할 수 있던 옛날의 사진입니다.
  
iss47807.jpg
 
 
N_2031105Q2327_YH.jpg

그러나 위의 사진들은 연출이며 사실과 다릅니다. 여의도 거래소의 로비엔 직원이 없습니다. 사무실에 앉아있는 직원을 사진기자들이 불러냅니다. 그 직원들은 노트북 컴퓨터를 들고 나와서 모니터를 켜두고 로비 벽에 걸려 있는 큰 전광판이 배경으로 잘 보이게 자리를 잡습니다. 그리고 연기를 시작합니다. 주가가 오른 날이면 밝은 표정을, 주가가 내린 날이면 심각한 표정을 짓습니다. 걱정스럽게 노트북의 모니터를 보기도 하고 전화를 받기도 합니다. 그 사이 사진기자들의 주문이 이어집니다. “좀 더 왼쪽으로.” “좀 크게 웃으세요.”

사진기자들이 마감을 위해 급히 빠져나가면 이들은 컴퓨터를 닫고 원래 일하던 사무실로 돌아갑니다. 한마디로 쇼를 하는 것입니다. 사진설명을 만약 아래와 같이 쓴다면 별로 큰 문제가 아니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주가가 폭락한 5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의 홍보실 직원들이 기자들의 요청에 따라 전광판 앞에서 심각한 표정을 보여주고 있다.”
“주가가 대폭 오른 5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의 홍보실 직원들이 기자들의 요청에 따라 거래소 로비에 컴퓨터를 들고 나와 웃음을 짓거나 밝은 표정으로 전화를 거는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R01101105_0.jpg


외국의 경우는 어떨까요?  주가변동을 다룬 일본의 사진입니다. 한국의 사진과 비교하면 거의 재미가 없습니다. 한국에서 이런 사진을 찍어온다면 핀잔을 들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진이 일본의 신문지면에서 쓰이는 이유는 뭘까요?  사실(Fact)을 다루는 뉴스사진에서 연출을 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뉴스 사진에서 연출은 절대 금물


사진이 안 되는 상황을 사진으로 표현하려다 보니 생긴 촌극입니다. 문제는 이런 관행이 최근까지도 이어지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지난해 7월5일치 어느 중앙일간지에 실렸던 사진을 기억하십니까? 기자들이 고기를 주문해 먹고 있는 사진을 찍어서 손님이라고 거짓 주장을 펼쳤던 일입니다. 한 인터넷매체가 진상파악에 들어가자 7월8일치 신문에 사과문을 내걸었습니다. 연출은 큰 문제입니다.




download.jpg


생활사진가들이 가족과 친구를 찍는 행위에선 연출도 가능할 것입니다. 재미를 위한 일인데 누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그러나 꾸며서 찍는 사진이 더 어색하게 보이는 것을 어쩔 수 없습니다. 이런저런 포털사이트의 갤러리에 올라오는 사진들 중에서도 생경하게 연출된 사진은 큰 인기를 끌지 못합니다. 꽃을 찍고 꺾어 버리는 일, 곤충을 잡아서 보기 좋은 곳에 두고 찍는 사진 등은 연출을 떠나 도덕적 문제가 있습니다.
하물며 뉴스사진에선 연출은 절대금물입니다. 사진을 찍다 보면 가끔 연출의 유혹이 생깁니다. 그러나 사진이 안 되는 경우는 사진을 찍지 말아야 합니다. 
 


글/곽윤섭 기자
kwak1027@hani.co.kr, 사진/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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