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고 있는 반딧불이를 찍을 수 있을까

곽윤섭 2009. 03. 10
조회수 21817 추천수 0

사진이 안되는 사진①
 

사진기자는 여러 가지 상황에서 사진을 찍습니다. 그게 어떤 일이든 일단 하라는 지시가 내려오면 무조건 찍어야 합니다. 그렇게 전천후로 사진을 찍다 보니 사진을 잘 찍게 되기도 합니다만 가끔 부딪히는 벽이 있습니다. 과연 사진이 만능의 무기인가 하는 대목에선 의문스러운 순간이 자주 찾아옵니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다 사진으로 찍을 수 있는 것은 절대 아니란 것입니다. 이는 심령사진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눈으로는 보였는데 사진으로 옮기지 못한 사례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제껏 사진기자를 하면서 가장 아쉬웠던 것 중의 하나는 반딧불이의 집단 서식지였습니다. 미국 미주리주의 작은 실개울 옆 숲이었는데 여름 밤이면 수만 마리의 반딧불이가 날아들어 나뭇가지 근처를 날아다니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당연히 카메라를 꺼내들었습니다. 필름카메라를 세워두고 여러 가지 감도의 필름으로 시도했습니다. 노출시간도 다양하게 주었습니다. 이전에 찍어본 적이 없는 피사체라 참고할 자료가 없었습니다.

 

짧게는 1/15초부터 길게는 1분 넘게 열어두기도 했습니다. 반딧불이들은 한자리에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날아다녔는데, 크리스마스트리의 장식물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더욱 어려웠습니다. 한 장도 못 건졌습니다. 어떤 필름에도 상이 맺히지 않았습니다. 물론 몇십 마리 잡아다가 유리병에 넣고 찍은 사진을 본 적은 있고, 한두 마리를 접사렌즈로 찍은 사진도 알고 있었지만 제가 원하는 사진은 나뭇가지 사이로 밝은 녹색의 불빛을 그리면서 비행하는 반딧불이었습니다. 완벽히 실패했고 근접한 사진도 가지고 있지를 않아서 보여줄 수가 없습니다.

 

환율·증시 상황은 어떻게 표현하나

 

이런 사례 말고도 사진이 안 되는 것은 또 있습니다. 노출도 충분히 나오고 상이 맺히긴 하지만 사진의 대상이 아닌 사례입니다. 환율이 얼마 올랐다거나 주가가 폭등하고 있다는 이야긴 사진으로 표현이 잘 되지 않습니다. 이런 것은 수치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므로 기껏 수치가 표시된 전광판을 찍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러나 전광판의 숫자를 찍은 사진이 늘 새로울 수가 없습니다. 새로운 사진을 위해 몸부림쳤지만 별 재미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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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 부터 10년전, 1996년 10월 이후 처음으로 주가가 800선을 넘어섰던 1999년 4월 28일 서울 명동의 한 증권사에서 시황판을 주밍으로 찍었습니다. 주밍을 한 것은 평범함을 면해보기 위해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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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2월, 이날도 1년 7개월 만에 800선을 돌파했습니다. 전광판만 찍을 수 없어 여의도 증권거래소 홍보관의 전시물을 걸치고 찍었습니다. 연출을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고육지책으로 나온 아이디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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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가 폭등과 폭락이 항상 그림이 안 되는 것은 아니어서 극히 예외적인 사안도 있습니다.
1990년 4월 20일, 주가가 폭락하자 주식투자자들이 떼를 지어 돌아다니며 서울시내 증권사들에 쳐들어가 난동을 피웠습니다. 중구 저동의 한 객장에서 투자자가 의자를 집어던지는 순간을 찍었습니다.

 

2004년 2월19일은 영화 <실미도>가 국내영화 사상 최초로 관객 천만 명 시대를 연 날이었습니다. 전부터 예고가 되기도 했지만 큰 뉴스임이 틀림없었습니다. 이 역사적 뉴스를 사진으로 담아보려고 현장으로 갔지만 찍을 것이 없었습니다. 전광판의 알림 글이 고작이었습니다. 글의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 사진으로 찍어서 보여주는 것은 대체로 효율적이지 못합니다. 강촌역의 표지판처럼 가끔 예외적인 대상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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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 명을 넘어선 역사적인 날이었지만 숫자로 표현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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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들이 자주 찾는 서울 근교의 대표적 관광지입니다. 온갖 낙서들이 역 표지판 자체를 하나의 상징적인 명물로 만들어놓은 사례입니다.


곽윤섭 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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