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하나인 동시에 모든 것인 사진

사진마을 2018. 03. 06
조회수 2139 추천수 0
 내 인생의 사진책/ 한설희 <엄마>
 
my07.jpg  사진 전문 출판사 눈빛에서 발행한 사진문고 시리즈인 ‘눈빛사진가선’의 출간 종수가 51종이 되었다. 이 책의 특징은 독자들이 손쉽게 사진집을 접할 수 있도록 작고 가볍다는 데 있다. 하지만 책의 함량은 높고 묵직하다. 한 사진가가 일관된 주제로 작업한 작품 50점과 작가의 노트, 그리고 전문가의 해설이 더해져 사진을 어떻게 봐야 할지, 사진의 존재 이유를 대중적으로 열어준 책이다.
 눈빛사진가선과 비슷한 크기의 책은 프랑스에도 있었다. 출판인이자 전시기획자, 영화제작자이기도 한 로베르 델피르(1928~2017)는 1982년에 사진만을 다룬 첫 번째 사진집 시리즈 <포토 포슈>(Photo Poche)를 창간했다. 당시로는 아주 모험적인 사건이어서 사진계의 전설로 회자된다. ‘주머니 속 사진’이라는 의미인 <포토 포슈>의 탄생으로 독자들은 언제, 어디서나 사진을 감상할 수 있게 되었고, 일곱 개 언어로 번역되어 웬만한 서점에서는 이 책을 만날 수 있다.
 <포토 포슈>를 닮은 책, ‘눈빛사진가선’은 그곳에 가야만 볼 수 있는 크고 무겁고 비싼 사진책이 아닌, 주머니 속에 넣고 다니면서 사탕을 까 먹듯이 볼 수 있는 책이다. 최근 ‘눈빛사진가선’의 51번째 책이 출간되었다. 74살 할머니 작가가 촬영한 사진들을 묶은 <엄마>이다.
 <엄마>는 한설희 작가가 2013년부터 작가의 엄마가 돌아가시기 직전인 2015년까지의 기록을 선별한 것이다. 작가의 첫 사진이 발화하기 시작한 것은 2010년이었다. 작가는 아버지의 죽음을 겪으며 비로소 어머니를 다시 보게 된다. 작가의 나이 67살, 엄마는 91살이었다. 67살 딸이 찍은 91살 엄마의 기록은 2011년 사진가들이 제정한 온빛사진상을 받게 된다. 이듬해 봄에는 작가의 첫 번째 개인전 ‘노모’로 이어지고, 딸의 카메라에 익숙해질 즈음, 엄마는 96살의 나이로 눈을 감는다. 작가는 엄마를 처음 촬영할 때 “엄마가 사라지는 순간이 기록의 마침표가 되리라”라고 말했는데, 어느덧 8년이 흘러 작가 나이 74살이 되었다. 곧 겨울이 되면 작가의 엄마가 돌아가신지 2년이 된다.
 <엄마>를 보면서, 사진집을 엮어야 하는 딸이 갖는 두려움에 대해 생각했다. 늘 곁에 있기에 촬영하기 쉬울 것 같지만 ‘가족’을 찍는 일은 녹록지 않다. 언제나 마음만 먹으면 촬영할 수 있고 애써 섭외하지 않아도 간단없이 찍을 수 있는 대상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과연 그럴까. 기실 수많은 사진집 중에서 가족을 담은 사진집은 소수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사진가들이 미학적, 정치적, 문화적, 역사적 이슈를 열망하기 때문에 주변의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들은 묻히거나 버려지기 십상이었다.
 현대의 사진은 빠르게 세상의 모든 것을 포착하고 재현했다. 한설희 작가의 움직임이 귀한 이유가 그동안 볼 수 없었고 보이지 않았던 작은 몸짓들의 근력을 가시화했기 때문이다. 더욱 고마운 일은, 연륜이 쌓여 대가를 이룬 작가가 아니라 다만 ‘할머니 작가가 찍은 할머니 사진들’이라는 것이다. ‘그녀들’의 내밀한 욕망이 은유로, 직설로 표출되며 부드러움과 거?b의 경계가 드러나기도 하고 아득하게 클로my4.jpg즈업되어 기어이는! 가슴 저리게 하는 이 사진들.
  단 하나인 동시에 모든 것인 사진이 있다. 나만의 고유한 사진이면서 모두의 사진이고 무엇으로도 환원할 수 없기에 결코 보기를 다 마칠 수 없는 무한한 사진. 유독 ‘그’ 사진을 오래 바라보면 말더듬이가 되고 눈이 멀게 된다. 엄마가 찍혀 있는 사진들이 그렇다. ‘엄마’ 사진은 정해진 코드가 없기에 읽기가 불가하고, 읽어 낼 수 없기에 감상의 거리도 확보될 수 없다. 자기만의 고유한 엄마를 지시하기 때문에 오직 나만이 알아챌 수 있고, 내가 볼 때 비로소 완결된다. 내 몸과 맘에 꼭 달라붙어 피가 되고 살이 되어 생생하게 현존하므로 사진이 곧 내가 되는 특별한 경험에 이르게도 된다.
  이 글을 쓰는 일 년 전 오늘의 나에게는 엄마를 만질 수 있는 날이 20여일이 남았었다. 그때는 몰랐었다. 엄마가 살아 있는 20일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늘, 항상, 나중에야 알게 된다. 엄마가 나를 낳은 나이에 내 나이가 가까워지면서 비로소 엄마를 이해하게 되듯이, 사랑이 떠난 후 사랑을 알아보듯이. ‘시간의 문’(셔터)을 통과하는 사진처럼, 사라져버리는 삶처럼, 사진이 결정적으로 알려주는 궁극적인 것의 자명함을 <엄마>를 보며 깨닫게 된다.
  최연하(독립 큐레이터)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List of Articles
전시회

눈 속에 내가 있었다

  • 사진마을
  • | 2018.06.27

이규철 개인전 <눈 속에서 참 진을 찾는다>가 7월 5일부터 8월 31일까지 ‘라이카 스토어 강남’에서 열린다. 관람 시간은 10시부터 18:30까지(월...

전시회

보일듯이, 보이지 않는

  • 사진마을
  • | 2018.06.22

차효중 작가의 개인전 <erased INERASABLE> (존재하지 않는 기억)이 거울 강남구 강남대로 강남역 1번 출구 바로 앞에 있는 스페이스22에서 열...

내 인생의 사진책

의미보다 그저 바라봤다, 사진은 그다음

  • 사진마을
  • | 2018.06.19

내 인생의 사진책/ 헬렌 레빗 <A Way of Seeing> 엘리베이터 없는 오래된 아파트의 꼭대기층에 있는 헬렌의 집 현관 앞에서 나는 언제나 숨이...

취재

사진에서 떠오르는 현대사 [2]

  • 사진마을
  • | 2018.06.19

미 문서기록보관청 뒤지다가 ‘1950 Korean War’에 번쩍     한국 근현대 희귀 사진 발굴 박도씨   애초엔 권중희 선생과 함께 백범 암살...

사진책

바람이 나를 이끌었다

  • 사진마을
  • | 2018.06.01

<한겨레> 사회2부 수도권팀 박경만(56·사진) 선임기자가 여행을 통해 삶을 성찰하는 사진 에세이 <바람의 애드리브>를 펴냈다. 30년 경력의 기자인 ...

게시판

희망과 미래 찾는 사진들

  • 사진마을
  • | 2018.05.31

청암언론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주최한 ‘제5회 송건호 대학사진상’ 수상작이 정해졌다. 모두 421점이 경쟁을 벌인 이번 공모전에서 영예의 대상...

취재

아이들 그림에서 바스끼야를 찾았다

  • 사진마을
  • | 2018.05.24

29년 경력의 의류 패션전문가 권오향씨는 지난해 성남의 대표적 복지단체 중 하나인 ‘(사)참사람들’의 무급 이사장이 됐다. 그는 지속 가능한 복...

전시회

한국적 풍경사진을 위하여

  • 사진마을
  • | 2018.05.18

신문, 잡지에서 사진기자 생활 현직 <퀸> 사진기자 김도형씨 30년만에 첫 개인전 열어... 풍경전문작가 데뷔 선언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했고 졸업...

전시회

"바위가 부처, 부처가 바위"

  • 사진마을
  • | 2018.05.11

이호섭 작가 개인전 <부처의 땅, 남산> 경주 남산에서 3년간 마애불 찍은 사진 알고보니 바위, 알고보니 마애불 이호섭 작가의 개인전 <부처의 ...

전시회

날씨가 말을 걸다

  • 사진마을
  • | 2018.05.08

디뮤지엄, 대형 기획전시 개막 Weather: 오늘 당신의 날씨는 어떤가요? 사진, 영상, 사운드, 설치... 4G영화처럼 마틴 파, 올리비아 비, 예브게니...

사진이 있는 수필

시각적 문맹에서 벗어나려면

  • 사진마을
  • | 2018.05.04

사진이 있는 수필 #23 내가 하겠다고 먼저 나선 적이 한 번도 없는 것 같은데 그야말로 “어쩌다가, 하다 보니” 사진교육을 시작한 지 10년이...

내 인생의 사진책

죽음처럼 불안한 우연의 처연한 신비

  • 사진마을
  • | 2018.05.02

내 인생의 사진책/윤진영 <DECOMPOSER>   이집트의 왕족이나 귀족의 무덤에 함께 묻힌 <사자의 서>에는 ‘진실의 깃털’이라는 흥미로운 심판 이...

취재

죽은 사진기도 그가 손대면 숨쉰다 [1]

  • 사진마을
  • | 2018.05.02

오래된 죽은 사진기도 그가 손대면 숨쉰다 카메라 수리 53년 '달인' 김학원씨 “세상에 못 고치는 카메라 없다… 소리만 들어도 무슨 고장인지 ...

전시회

섬이 바위, 바위가 섬

  • 사진마을
  • | 2018.04.30

유동희, 홍성희씨의 부부 사진전 ‘바위와 섬’이 5월 1일부터 8일까지 서울 중구 명동길 74에 있는 명동성당 1898 갤러리에서 열린다. 전시 오...

사진책

브레송과 카파

  • 사진마을
  • | 2018.04.20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관련기사 역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사진가를 다룬 책 두 권이 한꺼번에 출간됐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을 다룬 책 ‘앙...

전시회

바다와 힘, 그리고...

  • 사진마을
  • | 2018.04.20

김상환 작가의 사진전 <Hidden Dimension>이 서울 은평구 증산동 포토그래퍼서 갤러리 코리아에서 열리고 있다. 지도를 보니 서울 지하철 6호선...

전시회

풍경에서 손금을 읽다

  • 사진마을
  • | 2018.04.20

  사진가 김동진씨의 개인전 <A Landscape-SEOUL>이 서울 충무로 갤러리브레송에서 열리고 있다. 4월 29일까지. 이 작업에 대해 사진평론가이자 ...

전시회

보이지 않는 풍경

  • 사진마을
  • | 2018.04.10

김전기 작가의 개인전 ‘Borderline’이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B.CUT갤러에서 열리고 있다. 5월 1일까지. 12일(목요일) 오후 7시에 작가와의 대...

전시회

정상적인, 비정상적인

  • 사진마을
  • | 2018.04.09

김동진 개인전 ‘또 다른 도시(Another City)’가 서울 충무로 갤러리브레송에서 열리고 있다. 4월 14일까지. 이번 전시는 김동진의 지난해 전시...

내 인생의 사진책

과거 소환해 오늘을 읽고 내일에 말 건다

  • 사진마을
  • | 2018.04.03

내 인생의 사진책/ 박진영 <두 면의 바다> ‘호모 포토그라피쿠스’의 시대다. 우리는 일상 모든 것을 카메라로 기록하고, 소셜미디어를 통해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