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뱃사람이 아니므로 쓰임새를 다 알지 못하지만, 쓸모없이 그곳에 있는 것들은 하나도 없을 터이다. 낡고 기름때 묻은 것일수록 쓸모가 많았을 것이니 지나치게 예쁘기만 한 것들은 가라.
임종을 앞둔 어머니를 편안하게 모시고 싶었다. 어머니 살아생전 마지막으로 잡았던 따스한 어머니의 손이었다. 편안히 모시고자 했으나, 병원을 옮긴 날 돌아가셨으니 어머니는 하늘나라로 가시는 것이 더 편하다 여기신 것 같다.
할아버지와 손주가 한적한 시골 길을 걷는다. 추운 한겨울에도 봄날 같은 날들이 간혹 있다. 올 겨울에도 그들을 만났다. 할아버지는 더 늙었고, 손주는 더 컸다. 그게 삶이다.
지붕개량전문, 낡은 시골집 담벼락에서 함께 쇠락해가고 있다. 시골은 모든 것들이 쇠락의 길로 달려가야만 하는 것인지, 왜 이 나라는 그것을 내버려두는지 의아하다.
1986년 10월 31일 오전 11시, 아마도 그쯤이었을 것이다. 졸업여행, 청평사 오르는 길에 건대에 갇혔던 학생들이 모두 잡혔다는 소식을 들었다. 울며 걸었던 그 길을 30년 만에 걸었다. 세상은 정말 좋아졌는가? 수고하고 땀 흘린 열매들을 누가 다 가져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