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강가 안개는 자욱한 기억의 흰 벽이다. 어릴 적 넓었던 운동장과 키 컸던 느티나무와 깊었던 강물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산 너머 연분홍 참꽃은 지금은 왜 보이지 않는지, 신비로웠던 머리 긴 소녀의 투명한 시계는 지금도 가는지, 내 앞의 산은 왜 아직도 높은지, 그림처럼. 추억은 왜 아련하게 안개 벽에 그리 쉽게 그려지는지.
새벽 강물은 아직도 수줍은 얼굴의 면경이다. 물은 거칠어도 왜 깊은지, 흐르는 물에 비치는 소년은 왜 또렷한지, 그 얼굴은 왜 아직도 익숙하지 않은지, 깊지도 않은 물에 다리는 왜 떨리는지, 나는 왜 혼자 있는지, 그림자처럼. 지금 나는 왜 이리도 쉽게 드러나는지.
새벽 건너는 흔들리는 다리는 외로움이다. 소녀가 있는데, 잊었던 소녀가 업혀 있는데, 소녀의 온기로 강은 붉은데, 소년의 먼 소망이 발 밑으로 되살아 흐르고 있는데, 내 꿈은 아직 굳은데, 외나무 다리처럼. 가슴은 왜 이리도 떨리는지.
강은 새벽이다.
글·사진 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