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마당

 11. 종각(鐘閣)과 불전사물(佛典四物)

 

사찰을 다니면서 나도 모르게 소리 자체에 집중하며 마음이 차분해지는 순간이 있다. 바로 범종(梵鐘) 소리를 들을 때다. 어둑한 새벽녘 절 마당에 뎅뎅 울리는 묵직한 종소리, 낮의 번잡함을 잠재우며 절 마당에 낮게 깔리는 저녁나절의 종소리. 이 소리는 중생들을 일깨우는 부처님의 일승원음(一乘圓音)을 상징한다.
 
 원음의 사자후 같은 이 소리를 들을 때면 잡다한 생각은 잠시 잊고 내 자신이 물아일체(物我一體)로 정화가 되는 듯하다. 범종각에서 시작된 소리의 깊은 파동은 듣는 이들의 마음을 크게 울리고, 그 울림은 산문 밖 세상 만물에게까지 널리 퍼져나간다.
 
 규모가 큰 사찰에서는 대개 별도의 종각이나 종루를 둔다. 중국 사찰처럼 터가 넓고 평지가람인 경우에는 종루(鐘樓)와 고루(鼓樓)를 좌우대칭으로 배치하기도 하지만, 산지가람이거나 장소가 마땅치 않을 경우에는 불전사물을 한 장소에 모아두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범종각은 법당을 중심으로 볼 때 오른쪽, 불이문으로 들어가는 이의 기준으로 보면 왼쪽에 두는 경우가 많다. 이는 불교의 ‘체용설(體用說)’에 따른 것이다. 이 설에 따르면 왼쪽은 본질인 ‘체(體)’, 오른쪽은 작용인 ‘용(用)’에 해당한다. 움직이지 않고, 변하지 않는 ‘체’에 비해 ‘용’은 다양하게 움직이고 작용한다. 따라서 변화하고 움직이는 소리는 ‘용’에 해당하는 오른쪽에 두는 것이 보통이다.
 
 범종은 법고(法鼓), 목어(木魚), 운판(雲版)과 함께 ‘불전사물’이라 불리운다. 이들은 모두 소리를 내는 존재들로 멈춰있을 때는 ‘침묵’하지만, 각자의 인연에 맞는 움직임이 닿으면 ‘소리’를 낸다. 이것은 얼핏 들으면 당연한 얘기지만, 불가의 ‘불이(不二)’를 상징하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즉, 생(生)과 사(死), 성(聖)과 속(俗), 음(陰)과 양(陽), 색(色)과 공(空)이 둘이 아니듯이 소리와 침묵, 정(靜)과 동(動) 또한 둘이 아니라는 것이다.

 

hsy111.jpg » 불전사물이 모여 있는 범종각hsy112.jpg » 범종 타종

hsy113.jpg » 범종 소리를 들으면 몸과 마음이 차분해진다.

hsy114.jpg » 부처님의 사자후와 같은 범종소리hsy115.jpg » 중국의 종루. 고루와 함께 대칭을 이뤄 배치하는 경우가 많다.
 
 


한선영 작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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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치 여행작가, 한국문화재재단 사진작가

대학과 대학원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회사를 다니며 열심히 숫자를 다뤘다.

길치여서 늘 헤매지만 그만큼 많은 생각을 얻을 수 있어서 좋다는 무한긍정주의자다.

‘길은 어디로든 이어진다’는 생각에 오늘도 길 위에서 헤매는 중이다.

저서로 <길이 고운 절집>이 있다.

 

personad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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