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생령좌(生靈坐)
천왕문에 들어가 사천왕 앞에 서서 다소곳이 합장을 한다. 위풍당당한 모습에 고개를 숙이는데 사천왕 발밑에 무언가 있다.
‘어라? 저게 뭐지?’
발밑에 깔려 버둥대는 사람, 억울한 듯 사천왕의 다리를 붙잡고 하소연하는 사람, 뭔가 잔뜩 불만인 여자, 비굴하게 매달려 아부하는 관료 등 표정과 모습이 제각각이다.
이들은 나쁜 기운이 사찰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는 수문장에게 딱 걸린 잡인들이다. 사천왕의 저 육중한 발밑에 깔려 있을 정도니 잘못도 어지간히 큰 잘못을 한 모양이다. 수십, 수백 년 전에 만든 것임에도 죄를 짓는 사람들의 행태는 요즘의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흔히 악귀, 마구니로 불리는 이들은 모두 ‘생령좌’이다. 부처나 보살이 앉는 자리는 여러 가지로 장식되는데 장식이나 형태에 따라 연화좌, 사자좌, 방형좌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이 중 ‘생령좌’는 사천왕이나 팔부중상의 대좌에 주로 쓰이는 것으로 악귀를 조복(調伏)시키는 형태로 묘사된다.
생령좌의 등장인물로는 탐관오리, 부정하고 탐욕스러운 양반 등이 많은데, 지역에 따라서는 왜인, 청나라 군졸 등도 보인다. 당시의 학정과 수탈, 전쟁으로 인한 백성들의 피해가 얼마나 극심했을지 짐작되는 부분이다.
끊임없이 바위를 굴려 올려야 하는 시지프스나 지구를 들고 있는 아틀라스처럼 생령좌들의 형벌은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
죄를 짓고도 여전히 뉘우칠 줄 모르는 이들은 생령좌의 자리가 곧 자신의 자리임을 알까?
» 사천왕의 발밑에 깔린 악귀
» 비굴하게 아부하는 관료
» 꽉 쥔 주먹과 표정에 불만이 가득한 여인
» 본인의 억울함만 호소할 뿐 전혀 뉘우치는 표정은 아니다
» 시대에 따라 청나라 군사, 왜구 등이 등장하기도 한다
한선영 작가는
길치 여행작가, 한국문화재재단 사진작가
대학과 대학원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회사를 다니며 열심히 숫자를 다뤘다.
길치여서 늘 헤매지만 그만큼 많은 생각을 얻을 수 있어서 좋다는 무한긍정주의자다.
‘길은 어디로든 이어진다’는 생각에 오늘도 길 위에서 헤매는 중이다.
저서로 <길이 고운 절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