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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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 동네 쿠사노의 하루미씨에게서 전화가 왔다.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데려가도 되겠느냐고. 그러라고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하루미씨의 쥐색 박스카가 도착했다. 차에서 내린 사람들은 젊은 커플이었다. 노랑머리 남자와 키 작은 여학생. 두 사람은 영국 대학생 마크(27)와 영국 유학중인 일본 여학생 사오리(21)였다. 둘은 텐트 하나 둘러매고 규슈를 한 달간 여행하는 중이라 했다.
 
그들은 전날 밤 쿠사노 근처 공원에서 야영을 할 계획이었다. 저녁식사를 위해 하루미씨네 식당에 들렀는데 사정을 들은 그녀가 근처 지인의 빈 방을 소개해줬다. 저녁을 먹으면서 이야기 중에 판화와 오두막 이야기를 듣게 되고 나를 만나고 싶다고 해서 데려왔다는 것이다.
 
마침 판화 선생님 전시회에 가려던 중이어서 함께 가자고 했다. 전시장은 레스토랑과 갤러리를 겸하고 있는 안세이라는 곳이다. 그들은 작품들을 꼼꼼히 둘러보았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판화를 배우고 싶다고 했다. 둘은 일정을 서둘지 않았다. 젊은 사람들이 어쩌면 그렇게 여유롭게 여행을 즐길 수 있는지. 여건대로 누리는 널널함이 좋아 보였다. 
 
오두막에서 마크가 준비한 스파게티로 저녁을 해결했다. 많이 해본 솜씨다. 마크는 요리를 좋아해서 여행 중 식사준비는 거의 그의 몫이란다. 밖에다 텐트를 치겠다는 걸 만류해서 오두막에서 함께 데리고 잤다. 다다미 위에서 셋은 잘 수 있다. 경험으로 보건대 오두막 크기는 혼자 살기 딱 좋다. 가까운 둘은 지낼 만하고 셋은 거의 한계 상황이다.
 
마크는 음악과 일본어를 공부하고 있는 중이다. 사오리는 영화를 공부하고 있는데 작년에 런던에 유학을 갔다가 대학에서 친구소개로 두 사람이 만났단다. 둘은 프랑스에 살고 있는 마크 엄마네서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내기도 했다. 그 후로도 만남은 계속 이어져서 서로 국경을 넘어 오가며 젊은 인연을 쌓아가는 중이다.
 
사오리는 올 일 년 학비를 벌기 위해 일본에 돌아왔다. 런던도 도쿄 못지않게 살인적인 물가라서 학비가 만만치 않게 든단다. 마크가 사오리를 만나러 오고 의기투합한 두 청춘이 규슈를 일주하게 된 것이다. 가난한 대학생들이 택한 방법은 텐트에서 자고 히치하이크로 이동하는 것.
 
한 가지 원칙이 있다. 여행계획은 있지만 그 계획에 연연하지 않는다. 여행 중에 발생하는 돌발 상황들을 자연스럽게 즐기자는 것이다.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여행이 즐거운 것이라며. 그 인연이 꼬리를 물어 나에게까지 오게 된 것이다.
 
국적이 다른 세 사람이 모이니 화제가 다양해진다. 마크는 중국에서 일 년을 머물며 생활한 적이 있다 했다. 중국 젊은이들에게서 느꼈던 일본에 대한 집단 적대감을 이야기했다. 이어서 영국에 대한 스코틀랜드 인의 증오가 이어졌고 인도 사람들의 영국인 혐오도 등장했다. 그것들은 개인이 아니라 국가 과오가 원인이라는데 의견이 모아졌다.
 
2차 세계대전 때 유태인 학살 책임자인 아이히만이 떠올랐다. 재판을 지켜본 한나 아렌트는 그의 죄를 ‘생각하지 않고 명령에만 따랐던 것’이라고 했다. 국가주의 망령에 생각 없이 휘둘린 국민의 위험을 통찰한 것이다. 하지만 미친 전쟁의 시대에 생각하는 개인으로 살라는 건 얼마나 어려운 주문인가. 총부리를 들이대는 국가 권력 앞에 왜소한 개인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었겠는가.
 
아시아를 비극 속으로 몰아넣었던 제국주의 일본에게도 한나의 통찰은 유효하다. 대동아 전쟁은 일본이라는 국가가 생각 없는 국민들을 이용해 저지른 끔찍한 집단 범죄다. 야만의 시대가 빚어놓은 어두운 그림자는 끈덕지게 살아남아서 지금까지도 끝없는 갈등을 반복하고 있다.
 
국가주의 망령은 여전히 활개를 치고 있다. 국가에 의해서 저질러진 전쟁범죄를 이용해 국민들의 분노를 부추긴다. 증오의 대물림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생각 없는 국민들의 생각 없는 증오는 얼마나 위험한가. 지나간 역사에서 깨닫지 못하면 비극은 한없이 되풀이될 것이다. 
 
둘이 좀 더 오두막에 머물고 싶어하는 눈치다. 산행을 함께하며 하루를 더 보냈다. 가을 산은 풍성했다. 머루며 다래며 으름도 따먹고 뱀이 가을 햇볕을 받으며 탈피하는 광경도 오랫동안 구경했다. 떠나는 날 아침을 먹으면서 또 이야기가 길어진다. 당신들은 젊으니 평화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찾아보라고 했다. 그것만이 희망의 씨앗이라고.
 
짐을 꺼내놓으니 작은 이삿짐 수준이다. 큰 짐들을 마크가 둘러매고 앞장섰다. 그들은 큰 길가에 짐을 내려놓더니 왼팔을 뻗고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오래지 않아 승용차 한 대가 멎고 그들을 태운 차가 떠났다. 잘 가라 이쁜 청춘들아. 국경을 허물고 더 넓고 평화로운 세상과 만나거라. 사람과 사람이 국경 없이 만나는 일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유신준 작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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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깝고도 먼 이웃 일본을 깊이 알고 싶어 조기퇴직하고 백수가 됐다.

 

지인의 소개로 다누시마루 산기슭의 오두막을 거처로 정했다.

 

자전거를 벗삼아  보고 느낀 것들을 기록하며 유유자적하게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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