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마당

  ‘사오정’ 정인수의 지구촌 여행 ‘가다보니’<1>

  기름은 뚝뚝, 어디가 길이고 어디가 모랜지…

  글쎄, 그때는 그랬다, 가다 보니, 알고 보니…

 ㅎㅍㅇㄹㄶ

여행가 정인수씨의 여행기를 시작한다. 1편에선 정씨 여행기의 준비과정과 인터뷰, 그리고 볼리비아에서 벌어진 첫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다음 편에서 정씨 일행은 볼리비아에서 시위대를 어떻게 뚫고 나왔는지, 또 그 후에는 “알고 보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사연이 이어질 것이다. 정씨는 페이스북을 통해 틈틈이 실시간 여행기를 올리고 있다. 정씨의 페이스북은 www.facebook.com/insoo.kr이며 스마트폰에서 검색어 insoo.kr를 치면 나온다.

먼저 정인수씨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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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s101.JPG » 2015년 5월 정씨(사진 왼쪽)일행이 온두라스 코판유적지 앞에 다다랐을 때 배낭여행자 알폰소가 버스를 보고 다가와 기념사진을 찍었다.

 

 마흔 중반에 회사 망해 그만 둔 김에 여행작가 ‘무한도전’

 “승객으로 탑승해 차장으로”...아내의 차분한 동의가 힘


여행가 정인수씨는 45살을 눈앞에 둔 2013년 말에 근무하던 회사가 문을 닫는 바람에 말로만 듣던 ‘사오정’이 실제상황이 되었다. 막연하지만 오랫동안 꿈꾸던 여행작가의 꿈에 도전하기로 했다. 

 2013년 한 여행작가학교에서 여행을 주도한 임택씨를 처음 만났다. 임씨는 그 학교의 7기생이었고 정인수씨는 10기였다. “46만km를 달렸고 폐차 처분을 앞둔 마을버스로 세계여행을 한다. 5060세대들에게 새 길을 보여준다”, 이런 아이디어는 모두 임씨의 계획에서 나온 것이다. 처음 한국 출발 때는 3명이었다가 중간에 5명으로 늘었고 2015년 4월 파나마부터는 임씨와 정씨 둘이서 여행하고 있다.  2014년 12월 페루에서 시작하여 중남미 10여 개국을 거쳐 2015년 8월 미국 뉴욕까지 마을버스여행의 절반쯤을 마쳤다. 임씨가 배편을 이용해 마을버스를 독일로 보내는 사이 정씨는 비행기 예약 문제로 먼저 한국으로 돌아왔다. 버스가 독일에 도착할 때까지 짬을 내어 한국에서 휴식 겸 재정비를 하고 있는 정인수씨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정씨는 9월에 다시 출국해 10월 5일 현재 독일 브레멘에 머무르고 있다.
 
 2014년 9월 정씨는 부인에게 처음으로 세계여행에 대해 운을 뗐다. 부인은 ‘펄쩍 뛰면서 반대’하지 않고 차분하게 동의했다고 한다. 인터뷰 자리에 같이 나온 정씨의 부인이 말했다. 
 “마을버스를 타고 세계여행을 가는 팀이 있는데 갑자기 한 자리가 비었다는 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 ‘이건 기회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인수씨가 사진공부에 글쓰기 공부를 계속하면서 여행준비를 해왔기에 저는 (애들 아빠가) 그 팀에 합류할 수만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고 생각했다. 사실 직장을 그만두고 평생 직업을 가져야 하는 시기에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갖게 된다는 건 행운이다! 우리가 이제 백 살까지 산다는데. 사실 저라고 왜 겁이 안 났을까? 사춘기에 접어든 애들 키우는 일도, 또 경제적인 문제도, 무엇보다 저 자신이 버틸 수 있을지도…. 하지만 이 모든 것들보다 힘이 아빠(첫째 아들 이름이 정새힘)의 평생 직업(여행가)이 우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말이 그렇지 이제 시작한 지 1년이 다 되어간다. 후회하지 않는지?
 “저희 부부가 십 년 연애하고 결혼해 우리 큰애가 올 삼월에 주민증이 나왔으니 거의 이십 팔 년을 함께 보냈다. 좀 지겨울 때도 됐다(웃음). ‘잘 때만 이쁘다’라고 하는 것처럼 그랬다. 그런데  몇 개월 헤어져 있다 보니 예전에 연애하던 때도 기억나고…. 한번쯤 떨어져 지내 보니 나름 괜찮더라.”
 -2014년 11월에 서울을 떠났다가 이번 8월에 잠시 남편이 한국에 왔다. 남편의 여행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중간에 전화도 오고 페이스북으로 쭉 소식을 전하는 것을 봤는데 초보여행가치곤 생각보다 잘하네?. 꽤 진지하게 하는데?, 세계일주 끝나면 책 한 권 쓰는 게 (남편의) 목적이었는데 그 정도보다 더 많이 건지겠는걸?, 이런 생각이 들더라”

 

jis102.JPG » 출발전, 정씨는 부인과의 약속내용을 버스에 적었다.

 
 둘이 맞장구를 치는 품새를 보니 진지하게 의기투합한 모양이다. 정인수씨에게 물었다.
 -버스여행의 일행은 어떻게 구성되었나?
 “맨 처음 형님(정씨는 임택씨를 이렇게 부른다)이 구상한 것은 5명이었다. 그런데 한국을 출발할 때는 3명이었다가 중간에 5명으로 늘었고 2015년 4월 파나마부터는 임씨와 정씨 둘이서 여행하고 있다. 그러니까 나는 처음에 마을버스 승객이었는데 지금은 (둘밖에 안 남았으니) 버스차장쯤 되려나? (웃음)
 -무슨 준비를 했고 출발 과정은 어땠는가?
 “여행 모임을 통해 ‘마을버스 세계일주’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사람을 만났다. 이들은 3년의 준비기간을 거쳤는데 출발을 불과 한 달 남기고 팀 내부 사정으로 인해 결원이 생겨 내가 급히 합류한 것이다. 동료들은 삼 년 전부터 버스 운전, 간단한 정비 기술, 요리 연습까지 한 상태였으나 나는 한 달 사이에 마음이 급했다. 영어는?, 카메라는?, 예방주사는?…, 떠나는 새벽까지 쌌다 풀다를 거듭했다. 캠핑장비, 사계절 옷, 카메라 렌즈 2개씩, 노트북, 태블릿…, 각종 공용장비를 포함하니 이삿짐을 방불케 했다. 수하물 규정에 맞춰 줄이느라 굉장히 애를 먹었다. 11월 24일 남미로 가는 비행기 좌석에 몸을 파묻자 드디어 실감이 났다. 하지만 이건 시작도 아니었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파란만장한 여행이 시작되었다. 임택 형님이 한국에서 미리 배편으로 보낸 마을버스 ‘은수’(은수란 이름은 은수교통에서 따왔다)를 페루에서 만났다. 볼리비아로 건너온 우리는 12월 26일 아침 일찍 볼리비아 오루로(Oruro)에서 우유니 소금사막으로 출발하려했다. 

 볼리비아에서 합류한 남미여행전문가 박우물씨가 제안을 했다. 포토시(Photosi)로 돌아가면 500km가 넘으니 우아리마을을 통과해서 가면 300km로 단축된다는 것이었다. 다만 돌아가는 길은 포장도로이며 우아리마을코스는 비포장도로라는 설명은 있었다. 우리 일행은 시간절약을 떠올리며 비포장을 택했다. 글쎄, 그땐 그랬다. 호텔에서 근무하는 현지인도 단축코스는 5~6시간이면 주파가 가능하다고 했다. 그땐 그렇게 믿었다.


jis103.JPG » 우유니 100km

 
 출발했는데, 비포장 도로라는 것이 알고보니 사막이었다. 차가 지나간 타이어 자국을 따라가는 것에 다름없었다. 모래가 바람에 따라 물결처럼 울퉁불퉁하여 속도로 내지 못했다. 알고 보니(이후로도 여행은 알고 보니의 연속이었다) 트럭이나 사륜구동차라면 5~6시간에 주파가 가능할 수도 있는 모양인데 우리 ‘은수’는 마을버스였다.

 해가 질 시간이 점점 다가오는데 목적지까지는 삼분의 일도 채 소화를 못 했다. 기름이 떨어지는 게 눈에 보이는듯하니 일행은 모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급한 마음에 지나가는 트럭들에게 기름을 좀 나눠달라고 요청했으나 얻지 못했다. 사실상 지나가는 차라고 해봤자 한 시간에 한 대나 될까. 설상가상으로 모래폭풍을 만났다. 가다가 중간에 민가가 하나 보여 하룻밤 재워달라고 부탁을했으나 우리가 무서웠는지(당연하지) 거절당했다.


jis104.jpg » 지나던 길에 민가에 하룻밤을 제의했으나 우리를 무서워해서 조용히 물러났다.

 
 해는 아직 남아있었지만 모래 바람 때문에 한 치 앞이 안 보였고 마을버스 문과 창 사이로 모래가 스며들어와 숨을 쉬기조차 힘들었다. 천으로 코와 입을 막고 숨을 쉬어야 할 정도였다. 모래 위의 타이어 자국도 안 보이니 어디가 길이고 어디가 모래인지 알 도리도 없었다.

 이때! 천운인지 라이트를 켜고 지나가던 SUV 차량이 보였고 무작정 따라갔다. 쫓아가 보니 SUV는 불이 켜진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의견이 분분해다. “저 안에 뭐가 있을지 모르니 위험하지 않겠는가?”, “그거 가릴 때가 아니니 들어가고 보자!” 모래폭풍을 피하기로 하고 들어갔다.
 '....보니'가 늘 나쁘진 않았다. 들어가보니 그곳은 볼리비아 공사인부들의 숙소였다. 사무실과 식당도 있었다. 임택 형님이 기름이 떨어졌음을 호소했더니 사무실 소장이 선뜻 기름을 넣어주었고 하룻밤 쉬다가라고 호의를 베풀었다. 주방장 알렉산더가 소고기 요리와 쌀밥을 저녁으로 대접하는 덕에 감동의 물결이 일었다. 돈도 받지 않았다. 인부들은 침대에서 자라고 했으나 우리 일행 때문에 그들이 불편할 것 같았고, 솔직히 썩 깨끗한 곳도 아니었다. 앉으면 눕고 싶어져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식당 바닥에 매트를 깔고 침낭을 덮고 잤다.


jis106.JPG » 볼리비아 인부들의 숙소

jis107.JPG » 쌀과 고기, 주방장 알렉산더의 특식  

jis108.JPG » 숙소 바닥에 침낭을 깔고 자리를 잡았다.

 
 아침이 밝아와 버스로 가보니 버스에 쌓인 모래가 장난이 아니었다. 다시 한번 간밤의 행운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이 끓어올랐다. 볼리비아 친구들과 기념 사진을 찍고 우유니로 향했다. 사진가들이 반드시 가보고 싶어한다는 그 우유니사막은 어제 밤에 ‘개고생’한 탓인지, 볼리비아 친구들의 호의의 감동이 너무 컷던지, 나는 별 감흥이 없었다. 게다가 건기여서 물도 없었다. 물 없는 우유니사막!(우유니사막엔 소금호수가 있고 반영사진이 멋진 곳이다)

 우유니사막을 둘러본 후에 아르헨티나로 이동하기로 했다. 비포장 도로에 혼이 났으므로 이번에 포토시를 경유하여 포장된 도로로 이동했다. 볼리비아 국경도시 투피사(Tupiza)를 향해 가던 중에 탄광촌인 카타자이나 지역을 지났다. 가면서 보니 카존이란 마을에서 많은 차량들이 거꾸로 돌아나오는 것을 보고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조금 더 가보니 마을을 벗어나 얼마 가지 않은 언덕에서 시위대(!?)가 도로를 막고 차량 통행을 차단하고 있었다. 나무를 부러뜨려놓고 돌을 굴려 바리케이트를 만든 것이다. 물론 우리 일행을 노리고 길을 막은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더 나아갈 수가 없었다. 나중에 보니 정치적 이유로 시위가 열리고 있었다. 우리는 볼리비아 시위대와 경찰 사이에 끼어서 오도 가도 못하는 처지가 되었다. 역시 나중에 알고보니 시위대는 다이너마이트까지 들고 있었던 것이었다. (2편에 계속)

 

10월 5일 정인수씨는 페이스북 메시지를 통해 “독일 브레멘에서 ‘은수’ 수리를 위해 꽤 지체했다. 수리가 끝난 우리 일행은 아우토반을 달려 베를린에 왔고 여기서 파독 간호사와 광부들을 만났다. 드레스덴을 거쳐 체코 프라하로 이동할 계획이다. 현재로서는”이라고 알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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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호광

2015.10.06 06:33:46

헉........ 자리 남나요.^^  눈으로만 동승자가 되겠습니다. 화이팅,! 

송영관

2015.10.11 19:44:30

사진마을에서 여행을 함께 할수 있는 이런 좋은 기회가 있군요.

정인수씨, 앞으로의 긴 여행길을 성원하면서 2편이 무척 기다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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