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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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지마 여행 2

 

 이번 우와지마 여행은 사연이 있다. 얼마 전 일이다. 구루메 가는 길에 하루미씨의 다루마에 들렀다. 그녀의 어린 시절 바닷가 이야기가 나왔다. 하루미씨 친정이 시코쿠의 우와지마다. 내가 다누시마루 산 밑에서 몇 년 살아봤으니 바닷가에서도 한번 살아보고 싶다는 말을 했다. 말이 씨가 됐다. 친정집이 비어있으니 살고 싶으면 거기 가서 살아 보든가. 이리하여 시코쿠 바닷가 깡촌이 올 여름 휴가지로 정해졌고 현지 점검차 이곳에 오게 된 것이다.
 
 새벽에 일어나 날이 밝기를 기다려 밖으로 나갔다. 동트는 바닷가 풍경은  언제봐도 가슴이 뛴다. 빛과 그림자, 밝음과 어둠의 극명한 조화는 언제나 드라마를 만들어 낸다. 파인더로 어디를 잘라내도 그림이 되는 풍경이다. 부지런히 셔터를 눌렀다 깎아지른 경사를 파내어 만든 계단밭에도 빛이 들기 시작했다. 험산을 깎아 바닷가에서 돌을 하나씩 주워다가 쌓아 만든 땅이란다. 이렇게 드넓은 땅이 바닷가에서 돌을 주워 날라서 쌓았다니….
 
 이집트의 피라미드에 버금가는 유적이다. 지금은 겨우 지역 홍보자료 사진으로나 활용하고 있지만 옛날 사람들의 삶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전해주는 유서깊은 상징물이다. 얼마나 어려웠으면 엉덩이도 돌리기 힘들 정도로 좁은 땅을 밭으로 만들 생각을 했을까. 한 뼘의 땅조차 소중했을 그들의 곤궁한 삶이 절절히 전해온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가난을 모른다.
 
 계단밭까지 한바퀴 돌고 나서 숙소로 돌아오니 아직 8시가 채 안되었다. 잠자리를 정리하고 식당에 내려가니 조촐한 아침상이 차려져 있다. 아침상은 흰밥에 미소시루(된장국)가 기본이다. 거기에 계단밭에서 수확한 감자조림에 아지히라키(반건조 전갱이 튀김)가 곁들여 나왔다. 이곳 명물인 쟈코텐(전갱이 어묵)도 채를 썬 양배추 접시에 함께 올려져 있다. 접시 한쪽에는 큼지막한 선홍색 꽃으로 장식되어 있다. 꽃이나 나뭇잎은 눈으로 맛보는 음식의 상징이다. 조촐한 밥상조차 허투루 내놓지 않는다. 
 
 언제나 느끼는 일이지만 이곳 사람들은 확실히 대화를 즐긴다. 오카미상(여주인)이 오늘 아침도 어김없이 밥상머리에 앉았다. 이곳에 들어오게 된 이야기랑 결혼이야기로 아침 밥상을 풍성하게 해주었다. 그녀는 도쿄출신이다. 스무 살 무렵 도쿄의 수족관에서 일했단다. 남편은 물개 조련사였고 자기는 거기서 함께 물개 쇼를 진행하는 아나운서였다. 둘이 직장에서 한 팀으로 만났던 거다. 함께 일하는 동안 정이 들어 같이 살게 됐고 아이가 생겼다.
 
 이 마을 출신인 남편은 바다를 그리워했다. 그는 어부가 꿈이라 했다. 하루종일 낚시만 하고 살 수 있다면 여한이 없다고 했단다. 주말이나 쉬는 날에 우와지마에 오는 일이 잦아졌다. 그 시절 자기는 몰랐지만 남편은 이곳에 들어올 준비를 혼자 진행하고 있었던 거다. 동네에서 좀 떨어진 외딴 음식점이 팔리게 되어 그것도 사두었던 모양이다. 그러던 어느 날 할 말이 있다고 하더니 고향 우와지마로 들어가자고 하더란다. 당신이 싫으면 도쿄에 남아있어도 된다고 했다. 좀 불편하더라도 오가며 살아도 된다면서.
 
 일을 다 만들어 놓고 상의를 하자니 음흉한 사람이잖아요.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바깥양반은 그렇게 사는 것이 행복하다고 생각했을거예요. 나도 웃었다. 도쿄에서 태어나 도쿄를 떠나 본 적이 없는 그녀였다. 내키지는 않았지만 그 사람이 좋아하는 일이었다. 사랑이란 상대의 즐거움을 함께 공감해주는 일 아니던가. 결국 이곳으로 들어왔다. 살아보니 살아지더란다. 그녀가 이곳에 와서 제일 먼저 바뀐 것은 걸음걸이다. 바쁠 것이 없는 이곳 사람들은 모두 천천히 걸었다. 그 시절 한때 우와지마 시내에서 바쁜 걸음으로 걷는 사람은 분명 도쿄에서 온 다이카츠마루 부인이라는 소문이 났었단다.
 
 처음에는 음식점과 민숙을 함께 운영했었다. 문제가 생겼다. 어부들은 하나같이 목소리가 크다. 그들이 술 마시는 자리는 언제나 시장바닥이다. 목소리가 큰 것뿐이면 그래도 괜찮다. 그들은 상대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기이야기를 하는 특별한 재능도 있었다. 처음에는 깜짝 놀랐다. 술자리는 항상 벌집 건들어 놓은 곳에 확성기라도 연결해놓은 듯 엄청 시끄러웠다. 시간을 내어 쉬러 온 손님들에게 폐가 되어 안 되겠다고 생각한 그녀는 음식점 쪽을 접었다.
 
 그 시절에는 물고기를 낚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양식하는 사람이 많다. 주로 방어와 도미 양식이 성행하고 있다. 시절이 많이 변했다. 그녀의 재미있는 이야기에 빠져 한 시간이 넘어서야 아침식사가 끝났다. 아침을 먹고 나자 하루미씨네 동네까지 태워다 주겠단다. 이미 일정까지 알고 있다. 산책 삼아 걸어가겠다 해도 고개를 넘으려면 아침부터 힘들어 안된다며 차를 댄다.
 
 어젯밤 묵었던 미즈가우라에서 하루미씨 친정집이 있는 츠노우라에 오려면 높은 고개를 구불구불 넘어야 한다. 소형 왜건차로 고개를 넘어 츠노우라로 넘어왔다. 하루미씨 조카인 야마시타 신지씨가 길목에서 기다리고 있다. 좁은 골목길을 따라 집으로 갔다. 동네 속이다.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집 한 채를 상상하고 왔는데 상황이 좀 다르다. (물론 고기 잡는 아버지와 철모르는 딸도 없다. ㅎ)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서면 해변이 1분도 안 걸리는 곳이긴 하지만 집이 동네 안이라서 그동안의 상상을 벗어난다. 오카미상이 그랬잖아. 살면 살아지는 거라고.
 
 기와를 올린 전형적인 일본식 이층집. 신지씨가 열쇠를 건네주고 돌아갔다. 비워둔 지 3년 됐다고 하는데 깔끔한 편이다. 문을 활짝 열어놓고 대청소부터 했다. 부엌에는 주방기구들이 모두 갖춰져 있다. 냉장고에 2조식 IH전열기까지 없는 게 없다. 깔끔한 욕조는 물론이고 비데 화장실에 대형화면 TV도 갖춰져 있다. 하루미씨가 몸만 들어가서 살면 될거라고 하더니 불편한 것이 하나도 없다. 일단 창문이 가득한 이층 방에 짐을 풀었다.
 
 밖으로 나와 주변을 살펴보기로 했다. 걸어서 동네 끝까지 가는데 10분도 안 걸린다. 한적한 어촌이다. 하루미씨는 주변에 가게가 없을 거라고 했다. 농협이 경영합리화를 위해 작은 농협마트를 모두 없앴다는 거다. 가게가 없으면 곤란하다. 기본적인 생활이 불가능하다. 그게 제일 걱정이었다. 다행히 동네 안에 가게가 있다. 벽지라서 없애지 않고 한군데 남겨둔 거란다. 얼마나 반가운지 얼른 들어가 봤다. JA출장소라고 우리네 농협 하나로 마트 같은 곳이다. 간단한 일상용품에서 식료품까지 없는 게 없다.
 
 몇 가지 반찬거리를 사서 나오는데 직원이 오쿠무라씨네 오신 분이냐고 묻는다. 하루미씨가 이토야마네 시집을 와서 지금은 이토야마라는 성을 쓰고 있지만 본가는 성이 오쿠무라다. 직원이 벌써 내 존재를 알고 있다. 어떻게 아느냐고 물으니까 어제 빈집에 전기랑 수도를 넣어서 누군가 온다는 걸 알고 있었단다. 시골은 빠르다며 웃는다.
 
 점심은 구판장에서 사온 카레면으로 간단하게 해결했다. 처음 보는 IH전열기 쓰는 법을 몰라 한참 헤맸지만 어떻게든 해결됐다. 점심을 먹고 다시 밖으로 나갔다. 신입자에게 주변경계는 필수다. 방파제에서 낚시하는 사람이 보인다. 우와지마에서 온 사람이란다. 낚시를 좋아해서 시간 날 때마다 이곳에 종종 들어온다 했다. 원하는 전갱이는 안 올라오고 엉뚱한 메지나만 자꾸 나와서 그냥 앉아있는 중이라 했다. 곁에 있는 물통에는 젖먹이 손바닥만한 물고기가 몇 마리 한가롭게 꼬리를 살랑거리고 있다. 겉은 거무스름하고 모양은 도미를 닮았다. 맛은 전갱이만 못하지만 저녁 반찬으로 쓸 수 있을 거란다.
 
 저녁에는 하루미씨 사촌 도리이씨 부부가 왔다. 하루미씨가 유상이 살아있는지 어쩐지 살펴보라 해서 왔단다. 반백의 머리에 한적한 바다를 닮은 순박한 인상이다. 먹을게 별로 없을 거라면서 물고기 튀김과 감자샐러드를 싸왔다. 통 감자도 한 소쿠리나 삶아서 왔다. 아직 뜨끈뜨근하다. 밤에 잠 안 올 때 까먹으란다. 감자는 이곳 명물 계단밭에서 수확한 것들이다. 한 개 먹어보니 맛있다. 그들은 곧 돌아갔고 혼자 남았다.
 
 자리를 펴고 누웠다. 이런저런 생각에 머리가 복잡해진다. 어젯밤 잠들기 전에 내일은 무슨 일이 생길 것인가 기대에 쌓여 있었지만 오늘은 형편이 완전히 달라졌다. 일 년 열두 달 파도소리만 들리고 걸어가도 10분이면 끝나는 동네 안에서 도대체 뭘 하며 지낼건가. 다누시마루에서는 심심하면 자전거 타고 이곳저곳에 자리 잡은 온천이라도 골라 다니는 재미가 있었다. 시내에 나가고 싶으면 한 시간 넘게 걸렸지만 구루메에 나가 시내구경도 하고 헌책방에도 들르곤 했다.
 
 이곳에서는 내 주력 교통수단인 자전거가 무용지물이다. 차가 있든가 아니면 걸어야 한다. 버스는 하루 서너 차례가 전부이고 그것조차 아침저녁에 집중돼있다. 자전거 타고 우와지마에 나가는 일은 꿈도 못 꿀 것 같다. 우선 높은 고개를 넘어야 하므로 자전거가 별 힘을 쓰지 못한다. 굳이 타겠다면 우와지마까지 버스로 한 시간이 걸렸으므로 한나절 넘게 걸릴 것이다. 왕복을 따지면 하루종일 걸린다는 무지막지한 계산이 나온다. 막막해진다.
 
 결국 바다와 친해져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물은 좋아하니까 원 없이 수영하며 살아보는 건 별 걱정 없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낚싯대가 있으니 낚시라도 배워볼까. 물가에 낚시대를 펴고 앉아있는 사람들을 보면 왜 저러고 사나 이해를 할 수 없던 사람이 그건 또 가능한 일인가. 해보면 괜찮은 일인지도 모르지. 낚싯대 펼쳐놓고 해변을 들락거리다가 그것도 심심해지면 방파제에 졸고 앉아서 눈먼 물고기 몇 마리 반찬거리라도 장만해 보지 뭐. 일단 한 달 정도를 기한으로 이곳에 와보기로 잠정 결정했다. 버티는 데까지 버텨보다가 안되면 짐 싸가지고 다시 다누시마루로 돌아가면 되잖아. 본시 천하를 내 땅 삼아 천방지축 살아가는 몸 아니던가.

 

 


유신준 작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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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깝고도 먼 이웃 일본을 깊이 알고 싶어 조기퇴직하고 백수가 됐다.

 

지인의 소개로 다누시마루 산기슭의 오두막을 거처로 정했다.

 

자전거를 벗삼아  보고 느낀 것들을 기록하며 유유자적하게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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